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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7-09-20 11:53
 조회 : 5,6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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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대희년을 맞아 로마에서 세계청년대회가 열렸고, 당시 신학생이었던 저는 교황님과 함께하는 마지막 전야 행사에 참가하고자 광장으로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해지는 노을녘 타는 듯한 더위로 피곤에 지친 몸을 끌고 한참을 걸어가고 있을 때 이미 행사는 시작되었고, 20대에 성인이 되신 분들의 이름이 장엄한 음악 속에서 호명되며 행사장 가득 울려 퍼지고 있었습니다. 그때 여타의 성인들의 이름 속에서 성 안드레아 김대건!이라는 이름이 또렷하게 들렸습니다. 그 이름을 듣는 순간,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뿌듯한 기쁨과 감격에 전율을 느꼈습니다. 타향살이에 지쳐가던 저에게 샘솟는 용기를 주는 순간이었습니다. 한마디로 한없이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리고 그분께서 현대의 우리들을 위해 무엇을 하셨는지를 분명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만 스물다섯 살 한국인 최초의 사제, 갓 서품 받은 청년 사제의 꿈은 순교의 칼날 앞에 섰습니 다. 당신은 당신이 할 수 있었던, 하고 싶었던 모든 꿈과 희망, 그 모든 것을 고이 접어 증거자의 꽃으로 봉헌하십니다. 끝이 없을 것 같이 이어지던 한국교회의 기나긴 박해의 칼날도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의 강인한 신앙의 불길을 끌 수 없었습니다. 우리가 자랑스러워하는 순교의 업적은 흔들리지 않는 신앙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업적은 삶으로 드러나는 끝없는 결단의 고백이었습니다. 갖은 문초와 고문 속에서도 자신을 구하려 하기보다는, 사람들로부터 거부당하고 조롱당하며 비웃음을 사는 그리스도를 구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현대를 사는 우리들은 누구를 구하려 하는지를 가슴깊이 헤아리고 반성하게 됩니다. 내 안에서 나는 과연 그리스도를 어떻게 구해드리려 하고 있는지를 말이지요. 순교는 커다란 업적보다는 작은 사건과 일상의 삶 속에서 시작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일상에 얽매어있는 나의 악습에서 벗어나 그리스도의 사랑과 모범을 따르려는 결단과 고백이야말로, 그리스도를 구해드리려는, 목숨을 걸고 우리가 해야 하는 ‘순교’입니다. 이를 통해 ‘순교자’는 갈림 없는 일치의 신앙을 고백합니다. 세상의 그 어떠한 것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고 떼어놓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주는 온갖 유혹과 어려움은 분명 우리를 약하게 만들 수도 있겠지만, 그리스도와 일치하려는 우리 믿음의 결단과 선택을 결코 빼앗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전 세계 교회에 우리 순교선열의 뜨거운 신앙을 자랑합니다. 그것은 분명 세상이 수여하는 그 어떠한 상장과 명예보다 자랑스러운 것입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와 하늘나라의 기쁨과 자랑스러움 안에 우리 자신 또한 함께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한만삼(하느님의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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