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일을 했던 사람들은 굉장히 고통스러웠고 고난의 길을 걸어갔다. 주변인들에게는 멸시와 외면을 당했고 때로는 목숨의 위협까지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 모든 역경을 주님이라는 이름 때문에 이겨냈다. 나도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반신반의한다. 자신도 없고 용기도 없기 때문이다. 그들 중 일부는 나와 같은 생각을 갖았던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활동을 하면서는 흔들림도 있었을 것이고 가끔은 요나처럼 도망치거나 돌아서고 싶은 유혹의 손길도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엔 주님의 대변인으로 우뚝 설 수 있었지! 호세아 요엘 아모스 오바드야 요나 미카 나훔 ...등등의 예언자라는 이름으로 성경 안에서 당당히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지식과 역사는 눈물을 먹고 산다.’는 말처럼 하느님의 이름으로 말하던 그들이 지금은 성경 속에서 우리들에게 눈물을 흘리며 처절하게 절규하며 외치고 있다. 그 당시의 모습그대로. 지금도 나의 귓가에는 그들이 외치던 음성이 들리는 듯하다. 이미 나는 성경경시대회라는 것을 준비하면서 그들의 시대에 동참했었고 그들의 언어로 얘기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봤기 때문이다.
시대가 흘러서 역사는 변해도 역사의 습성은 비슷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구약시대나 신약시대나 현재나 미래나 시각만 다를 뿐 주체로 살아가는 인간이라는 매개체는 같으므로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상황들은 인간중심일 수밖에 없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그냥 주어진 24시간의 일과 속에서 하루하루를 끼워서 살고 있을 뿐이다.
예언서의 예상문제집을 풀어서 내야했기에 그냥 성의 없이 풀어서 냈었다. 그렇게 하다 보니 답을 체크해놓고도 엉뚱한 답을 써놓았고 주관식은 답을 쓰다가 만 것도 있었다. 이렇게 처음부터 나에겐 경시대회 예상문제집이 외면을 당했고 철저히 무관심의 대상이었다. 이러한 모습에 주님은 화가 나셨는지 나를 끌어들이기 시작하셨다. 성경공부 6주 코스(1주에 2시간씩 총12시간)에 동참해보란다. 나는 머리 좋고 경험 없는 남편을 이번 경시대회에 내보내야겠다는 나의 기특한 의도가 있었기에 열심히 수업에 동참했었다. 내가 공부하여 가르쳐주면 되겠지 라는 야무진 생각으로. 그러나 남편은 끝내 허락하지 않았다. 바쁘다는 핑계로. 실제로 남편은 상당히 바빴다. 본업인 일도 해야지 주업인 주님(?)도 모셔야지 짬짬히 벽돌 깨기 게임에 도전해서 점수도 높여야지.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남편은 하루도 쉴 틈이 없었다.ㅋㅋ
2주 동안 27000점 올리느라 정신없는 남편을 보면서 경시대회에 나가야한다고 끝까지 밀어붙이는 것을 못한 것이 지금도 후회스럽다. 나의 가장 큰 단점은 남편의 말을 너무 잘 믿는다는 거다. ㅎㅎㅎ 두고 봐라. 2주 만에 올린점수 나는 1주 만에 3만점 할꺼다.
나이 들어 공부를 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특히 경시라는 거창한 타이틀 앞에서는 상당히 귀찮은 일이다. 일단은 하는 거 없이 일상이 바쁘고 무엇인가에 얽매이는 거 자체가 나에게 주어진 자유에 억압이 가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번 경시대회를 ‘주님을 알아가기 위한 여정으로 삼겠다. 하루에 2시간 이상을 공부하겠다. 적어도 예상문제집중심으로 3번의 숙독과 반복학습을 하겠다.’를 목표로 정했다. 그리고 경시대회 준비한답시고 일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 지금껏 해왔던 일상을 똑같이 하되 나머지 시간들은 주님을 알아가기 위한 시간으로 배정한 것 등이다. 이렇게 하니까 심적 부담이 제법 줄었다. 약간의 긴장과 스트레스는 있었지만 목숨까지 내놓아야하는 예언자들의 절박한 상황이 아니었기에 견딜만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나의 시야가 넓어지기 시작했고 보이기 시작했다. 관심이 생긴 것이다. 모든 것은 관심에서 비롯된다. 단순히 정답을 찾기 위한 행위가 아니라 미로를 찾는 기분으로 구약시대의 예언자들의 삶속으로 들어가 있는 나를 종종 발견하곤 하였다. 그 상황이 너무 재미있어서 화장실도 못가고 4시간 정도를 움직이지도 못한 적도 있었다. 공부하느라고 4시간을 꼼짝도 안 한 것은 내 생애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허리도 아픈데.
몇몇의 주변인들은 나의 두뇌가 대단히 좋은 줄 안다. 절대적으로 그것은 아니다. 이미 나의 반쪽 두뇌는 고등학교 2학년 올라가던 해 초에 주님께서 가져가셨고, 목숨만 가족들한테 남겼다. 딸내미 귀한 집 딸을 거두어 가시기가 우리부모님한테 무척이나 미안해하셨던 것 같다. 역시 주님도 기본적인 양심은 있으신가보다. 그래서 나는 엄청난 고생을 하며 학업에 힘써야했다. 결과보다는 노력의 과정을 더 중요시하는 습성이 아마도 그때 생긴 것 같다.
나의 기억은 이해력과 연상에 의한 것이다. 모든 것을 우선 이해를 하려는데 중점을 두고 그 다음에 그것을 상형화하고 기호화시켜 수차례에 걸쳐서 반복적으로 학습을 하다보니 시간은 걸리지만 내 것으로 만드는데는 최선의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