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번 설날을 지내면서
우리 집에선 네 동세(서)가 모여서 전 부치고 만두 빚고 나물 무치면서 섣달 그뭄날 밤 늦게까지 이야기 꽃이 한창이다
설날엔 제사꾼이 손자들까지 20여명이 모여서 차례를 모신다 현관에는 신발이 가득 차서 발 디딜 틈이 없다 차례를 모시고 나선 세배를 마쳐야 공식 행사가 끝나게 된다 점심 때가 되기 전에 시집간 세명의 누이동생들이 애들을 데리고 와서 합류하는데 그리되면 외투는 벗어서 한쪽에 쌓아 놓게 된다
세배를 하는데 세배돈은 돈 버는 애들은 빼고 나머지 애들에게만 준다 덕담으로 세배를 마치고 나서 음복을 겸해서 귀밝이 술을 몇잔씩 하고선 만두 장국으로 식사를 한다 교자상을 세 개를 붙여 놓고선 세대별로 식사를 같이 한다 여기까지 필수적인 행사가 끝나면 군데 군데 둘러 앉아서 이야기 꽃을 피운다 누이동생들은 저희 끼리 애들은 제 또래 형제끼리 둘러 앉아서 끝없는 얘기 꽃을 피운다 가만 살펴 보면 1년에 몇 번씩 제사때 만나곤 하니까 친밀감 있게 얘기 꽃을 피울 수가 있는 것 같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만남의 기회를 갖는 것이 요즘과 같이 바쁘고 복잡한 세상살이에선 커다란 의미가 있는 거 같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4촌끼리 만나는 기회가 과연 몇 번이 되겠는가?
두말할 것도 없이 이렇게 하자면 형제간의 우애가 좋아야 하고 특히 여자 동서지간의 우애와 신의가 좋고 깊어야만 가능하다 나이 들어가면서 허리 아프고 다리가 저리지만 그런 만남을 통해서 얻는 속 깊은 정리에서 우러나오는 우애가 없으면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 요즘 세상 바쁘고 영리한 사람들의 사고방식으론 옛날 사람들의 케케 묵은 사고방식에서 연유하는 전근대적인 관습으로 치부해 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인 거 같다
나도 역시 우리 집의 이런 관습은 내 세대에서 마감하는 걸로 생각하고 있다 우리 내외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차 힘에 부칠 때가 있는 걸 깨닫곤 한다 허물 없이 지내는 친구들과 대화를 할 때면 속에 든 애기를 주고 받는다. ‘다음 세대에 가면 성묘도 자동차로 바로 닿는데가 아니면 가겠나?’
머지 않은 장래엔 명절 연휴가 되면 <콘도>나 해외 유원지에서 제수는 종이 위에 글씨로 써서 놓고 차례를 지내는 시절이 오지 않을는지? 그런 상상이 문득 떠오를 때에는 어딘가 모르게 서글퍼지기도 하는데 이게 다 나이 먹은 탓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2012.1.23. 설날 저녁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