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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3-05-01 00:00
 조회 : 11,0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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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귀병 두아들 둔 주안나 한파비아노씨
십자가의 길 기도 바치며 고통 감내 하면서............
다른 아이가 걸어서 15분이면 도착하는 등교 길이 두 아들에겐 1시간 30분씩 걸렸다. 한걸음을 힘겹게 떼어놓은 뒤 넘어지지 않으려고 애를 쓰며 몸의 중심을 잡고는 또 한걸음을 떼어놓는 두 아들. 옆에서 마음 졸이며 보조를 맞추는 엄마는 아들 손을 꼭 잡고 가고 싶지만 행여 의지할까 봐 참아야 했다.
두 아들은 슬쩍 부딪쳐도 힘이 없어 잘 넘어졌다. 그리고는 일어나지를 못해 애를 먹었다.동네 아이들은 그런 행동이 재미 있다는 듯 툭 건드려 넘어뜨리고는 박수 치며 좋아했다. 아이들의 놀림에 두 아들의 무릎은 언제나 피멍으로 얼룩졌다.
갈수록 걷기가 힘들어진 아들은 고등학교에 올라간 뒤에는 급기야 휠체어에 의지해야만 했다. 3년 동안 교실이 한번도 1층에 있은 적이 없어 엄마의 고생은 더 심했다. 덩치 큰 아들을 업고 계단을 오르려면 다리가 후들거리고 온 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기도의 힘이 아니었다면 고통을 감당할 수 없었을 게다.
희귀병인 진행성 근이영양증을 앓고 있는 두 아들 한요한(30)씨와 베드로(28)씨가 육체적 한계 속에서도 잘 버텨내며 장성하자 어머니 주안나(58)씨는 이제 아들처럼 고통 당하는 사람들을 위해 활동의 폭을 넓히고 있다.
몇 년전 직장에서 명예 퇴직한 아버지 한파비아노(60)씨는 그동안 두 아들을 뒷바라지 해온 어머니 주씨를 대신해 집안에서 지내는 큰 아들과 직장에 다니는 작은 아들의 손발이 되어주며 교회 활동에 열심이다.
혼자서는 앉거나 눕는 것조차 할 수 없는 큰 아들은 힘 없는 손가락으로 컴퓨터 키보드를 두드리며 어머니가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한국 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홈페이지(www.mdakorea.org)를 관리하면서 인터넷을 통해 전세계를 여행하고 있다. 대학원에서 전자계산학을 전공하고 기능사 자격증 등 12개의 자격증을 갖고있는 둘째는 직장에서 정보처리 일을 하고 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잘 몰랐어요. 큰 아이가 움직이기를 싫어했지만 몸이 약해서 그러려니 했었죠. 그런데 달리기를 잘 못하고 계단 오르는 것을 무서워하는 것을 보고 안되겠다 싶어 큰 아이가 8살 때 병원을 찾았어요. ”
의사는 진행성 근이영양증이라며 10만명 중 한명이 걸릴 수 있는 이 병은 18살을 넘기기가 어렵고 현대의학으로는 치료방법이 없다고 했다. 근이영양증은 염색체의 결함으로 근육을 만드는 단백질 막이 형성되지 않아 전신이 무력해져 가는 병이다.
건강하고 활달해 설마했던 둘째도 형을 따라 9살에 발병하자 주씨는 몸저 누워버렸고 삶의 의미마저 잃었다. 그러나 불쌍한 두 아들을 두고 눈을 감을 수가 없었다. 더 이상 절망 속에서만 지낼 것이 아니라 고통 받는 아들을 위해 나서야겠다고 마음을 돌렸다.
한약, 침, 식품, 기 등 아들에게 좋다는 것을 다해주기 위해 곳곳을 찾아 다니다 사기를 당하기도 했다. 그래도 돈 아까운 줄 모르고 뛰어다니느라 먹고 입고 좋은 집 장만하는 일은 뒷전이었다. 두 아들을 위해 그 동안 아파트 두 채 값은 족히 들어갔다.
하느님께도 매달렸다. 매일 미사에 참여하고 성체조배 등 기도생활과 봉사활동뿐 아니라 반장 구역장으로도 열심히 뛰었다. 그런 모습을 지켜본 본당 수녀의 권유로 부부는 프란치스코 재속 3회원으로 입회해 신앙 생활의 깊이를 더해갔다.
주씨는 자신의 아픔 때문인지 십자가의 길 기도를 즐겨 바쳤다. 한 처씩 묵상하며 나갈 때마다 자신의 처지가 예수님의 십자가상의 고통보다는 가볍다고 위안을 받으면서도 그 울부짖음이 너무 절절하게 와 닿아 몸까지 아파 힘든 적이 많았다. 십자가상에서 내려진 외아들 예수를 껴안고 비통에 젖은 성모님을 묵상하며 인내도 배웠다.
같은 처지의 부모들을 알게 되어 4년전 부모 모임을 만들었다. “우리 부모들은 주변 사람들로 인해 더 큰 상처를 받아요. 겉으로는 ‘그래도 꿋꿋하게 잘 살아간다’고 위로하면서도 돌아서서는 ‘부모가 죄가 많아서 저런 자식을 둔 게 아니냐’는 이웃의 입방아가 우리들을 더 못 박습니다. ”
13명으로 시작한 부모모임이 지금은 전국에 200명이 참여하는 모임으로 커졌다. 지난해 5월에는 이런 자조모임들이 연합회를 꾸리는 것으로 발전해 정부에 의료비 지원 등을 요청하며 치료 연구사업을 위한 지원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 병을 앓고 있는 아이들은 학교 생활도 쉽지 않다. 친구들과 어울려 뛸 수 없는 두 아들은 체육시간엔 교실에 남아 운동하는 친구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아픈 마음을 달랬고 도둑으로 몰릴 때도 있었다. 또한 화장실 가는 일이 불편해 아침에는 물 먹는 것도 참고, 집에서 가능하면 대소변을 다 보고 등교했다.
아이가 감당하기엔 너무 큰 십자가를 바라보는 부모 마음은 미어졌다. 학기초가 되면 주씨는 학교를 찾아가 아이의 상태에 대해 설명하고 교사의 협조를 구했다. 중학교 때는 신자 교장의 배려로 3년간 다행히 1층 교실만 사용했으나 고등학교 때는 달랐다.
‘아이 하나 때문에 1층으로 교실을 옮길 수 없으니 차라리 특수학교에 보내라’고 야속하게 거절해, 1학년 때는 5층, 2학년 때는 4층, 3학년 때는 3층까지 아들을 업고 계단을 오르내렸다. 그런 엄마 덕분에 둘째가 3년 개근을 하고 졸업할 때 온 가족은 끌어안고 목이 터지도록 울었다.
형은 휠체어에 앉아서도 수업을 받을 수 없을 만큼 상황이 나빠 고등학교에 입학한 뒤 자퇴하고 집에서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고 컴퓨터를 혼자 익히며 지내고 있다.
“절망도 했었지만 이상하게 하느님은 원망하지 않았어요. 18살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는 두 아들이 벌써 30살이 되어가고 있고, 초등학교 때부터 걷지 못하는 다른 아이들에 비해 중학교 때까지는 힘들지만 걸어 다녔으니 그것도 하느님의 은총이 아니겠어요.”
부부는 두 아들과 같이 지금까지 잘 견디며 지낼 수 있었던 원동력은 그 동안의 기도와 봉사활동 덕분임을 믿고 있다. 이 사순시기에 부부는 다시 십자가 앞에서 예수님의 고통 속의 사랑을 진하게 체험하기 위해 깊은 묵상에 젖어 들었다. 이연숙 기자mirinae@pbc.co.kr (평화방송에서 옮김)
주안나자매님 한파비아노형제님에 관한 글을 읽어 보시고,혹시 절망을 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남은 삶을 좀더 희망적으로 사셨으면 해서 옯겨봤습니다.이보다는 힘이 더 들지는 않으실테니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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