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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3-05-03 00:00
[복음]나를 보았으면, 곧 아버지를 본 것이다.
 글쓴이 : 가로등
조회 : 6,660  
<<성 필립보와 성 야고버 사도 축일>>

유대인들은 어떠한 때에도 하느님의 본 모습을 본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것이, 그들의 믿음의 생활 속에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사도 필립보가 예수께 “주님, 저희에게 아버지를 뵙게 하여 주시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하는 간청은 참으로 놀라운 질문이며, 더욱이나 예수께서 “나를 보았으면, 곧 아버지를 본 것이다. 그런데도 아버지를 뵙게 해 달라니 무슨 말이냐? 너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믿지 않느냐?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도 나 스스로 하는 말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면서 몸소 하시는 일이다.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고 한 말을 믿어라. 못 믿겠거든 내가 하는 이 일들을 보아서라도 믿어라.” 하시는 말씀은 참으로 더 더욱 놀라운 말씀이라 하겠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 당시 사람들이 하느님을 보겠다고 하는 것은 감히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요청이었지만, 예수께서는 지극히 단순하게 “나를 보는 것이 곧 아버지를 보는 것이다”라고 일러주시는 말씀은 더욱 놀라운 말씀인 것입니다.
즉, 예수를 보는 것은 하느님께서 어떠한 분이신가를 보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모습이란, 너와 내가 이 세상의 희비애락을 겪으며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바로 “하느님 스스로가 우리 사람의 생명을 취하시어 우리가 겪고 있는 인생을 살고 계신 분이다”라고 말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실을 성서에서 본다면,
1) 예수님의 탄생을 통해, 하느님께서는 평범한 가정에 가족 중의 한 사람으로 들어오시어 사신 것입니다.
그렇게 하심으로써 부모가 무엇이며, 형제와 이웃이 무엇인가를 몸으로써 체험하시는 것입니다.

2) 하느님께서는 사람이 되시어 일하시는 것을 싫어하거나 부끄럽게 여기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나사렛의 목수 노릇을 하시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이 목수 노릇을 하시었기에 보잘것없는 수입으로 먹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곤란한가를 당해보셨고. 일을 해 주고도 제때에 돈을 주지 않는 손님들의 고약함이 무엇인가를 당해보신 것입니다.
또한 하루하루 살아가자면 많은 이웃들에게 당하는 어려움이 어느 정도인가를 겪으신 것이며 알고 계시는 것입니다.

3) 사람이 되신 하느님께서는 마귀의 유혹, 사람들의 무고한 질투와 비방과 천대를 당하심으로써 그러한 것에서 우리가 받게 되는 .쓰라림이 무엇인지도 그 하느님은 겪으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사람이 되신 하느님은 이 세상 나사렛에서 평온하고 안락한 하루하루의 세상 생활을 지내시지 않으셨을까? 하고 생각하지만 공부 안 하는 것보다 공부하기가 힘들고, 책임 없이 살기보다는 책임 있는 위치에서 일하기가 더 힘들고, 무사안일 보다는 헌신적인 생활을 하기가 몇 배 더 힘들듯이, 사람이 되신 하느님은 이 세상살이가 우리보다 더 괴로운 삶이었음을 우리는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그 하느님은 후방에서 명령하는 사령관이 아니라, 높은 자리에서 지시하는 웃어른이 아니라 말단에서 불구자, 병자들과. 죄인들과, 뭇 사람들과 걸으시고 함께 하신 평범한 삶을 살아가신 하느님이셨습니다.
궁지에 몰리시고. 우시고, 비탄에 잠기시고, 갈등을 느끼시고, 불쌍한 사람들을 보고 마음 아파하시며 사람들을 사랑하신 하느님이셨습니다.

4)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십자가에 달리신 하느님 "을 볼 수 있습니다.
온 세상을 통해서 이 사실만큼 믿기 어려운 것도 없습니다.
인간의 죄를 판단하시는 하느님을 생각하기는 쉽습니다.
인간을 저주하는 하느님, 그리고 배반하고 불경하는 사람들을 멸망시키는 하느님을 상상하기란 더욱 쉬운 일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을 위하여, 나를 죄와 벌에서 구원하시고자 하는 사랑 때문에 하느님이 예수님을 통해 십자가를 지시고 못 박혀 죽임을 당했다는 사실은 왜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하겠습니까?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가 내 안에 계시며. 나를 보는 것이 곧 아버지를 보는 것이다.”하시는 말씀을 우리가 받아들인다면, 왜 그러한 사랑, 그러한 하느님의 마음 앞에 선뜻 우리 자신은 따르지 못하는 것입니까?

예수님은 당신이 하시는 말씀이 참되다는 것을 시험해 볼 것을 제자들에게 요구하시기를,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도 나 스스로 하는 말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면서 몸소 하시는 말이다.”하십니다.
“그래도 내 말을 못 믿겠거든, 내가 하는 일들을 보아서라도 믿으라”고 하시는 말씀은, 참으로 놀라운 말씀인 것입니다.
사실 하느님의 참 모습은 육신을 가지신 분이 아니라 영(靈)이십니다.
영이시기에 우리의 마음을, 사람의 생각을 우리 눈으로 볼 수 없듯이 우리 눈으로 하느님의 참 모습을 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볼 수 있는 하느님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신 분이 나사렛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두 눈으로 볼래야 볼 수 없는 하느님을 눈으로 볼려고만 하지 말고. 볼 수 있게끔 우리에게 가까이 오신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의 참된 모습을 찾아봄으로써, 나의 주님이시요 하느님이 나에게 어떠한 분이신가를 더욱 깊이 깨달아 하느님께 가까이 가는 생활을 더욱 잘 하도록 해야 되겠습니다.
 
-대화후광 신부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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