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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3-05-04 00:00
 조회 : 5,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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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3주일>>
“그 두 사람도 길에서 당한 일과 빵을 떼어 주실 떼에야 비로소 그분이 예수시라는 것을 알아보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루가 24, 35-48).
오늘 복음을 보면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믿기까지는 어려움이 있었음을 알게 됩니다.
그들 앞에 나타나신 예수님을 ‘유령’으로 착각하는 제자들도 있었다고 하니 말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답답해 하셨을 예수님께서 당신을 표현하고 드러내신 방법은 많은 말이나 설명이 아니라 단순한 행동, 즉 표지를 통해서였습니다.
빵을 떼어 주신 다거나, 음식을 함께 나누는 것이었습니다.
그 표지가 많은 말보다 더 큰 효력을 발휘했습니다.
찰리 채플린의 희극영화 <거리의 등불: 시티 라이트>을 아십니까?
부랑자인 찰리가 번화가를 거니는데 자동차로 길이 막힙니다.
찰리는 하는 수 없이 꼬리를 물고 서있는 고급 차의 이편 문에서 저편 문으로 건너갑니다.
때마침 저편 길바닥에는 꽃 파는 아가씨가 있어 막 차에서 나오는 찰리에게 꽃을 사달라고 하지요.
그녀는 눈 먼 소녀였습니다.
찰리는 비상금으로 가지고 있던 은화를 소녀의 손에 놓고 가버립니다.
꽃 파는 소녀는 찰리를 돈 많은 신사라고 생각합니다.
꽃 파는 소녀에게 호감을 가진 찰리는 그녀를 도울 생각으로 돈을 빌립니다.
마침 갑부를 알게 되어 그한테서 받은 돈 천 불을 꽃 파는 소녀에게 건네주었지만, 챨리는 그 일로 도적의 혐의를 받고 체포되어 형무소에 가게 됩니다.
찰리가 감옥에 있는 동안 소녀는 그 돈으로 치료를 받아 눈을 뜨게 되고 자기 엄마와 함께 꽃가게를 차려 행복하게 살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감옥에서 나온 찰리가 거지차림으로 그 앞을 지나가다 발을 멈춥니다.
그러나 소녀는 찰리를 알아볼 수 없었습니다.
소녀는 자기에게 돈을 준 이는 부자 신사라고만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가게 밖에서 떠날 줄 모르는 찰리에게 이번에는 그 소녀가 얼마간의 잔돈을 집어 가지고 옵니다.
찰리의 손에 돈을 놓는 순간, 소녀는 깜짝 놀랍니다.
감촉의 기억이 되살아난 것이었습니다.
“아, 당신이었군요!”
이내 소녀에게 쥐어진 찰리의 손, 자기가 지난날에 한 일을 들켜버린 부끄러움과 눈을 뜬 그녀를 바라보는 기쁨이 한데 얽혀 눈물 섞인 웃음으로 소녀를 바라보는 찰리...
거짓 없는 인간에게서만 볼 수 있는 웃음과 눈물이었습니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가 예수님을 알아 본 것 또한 주님께서 그들에게 친히 빵을 떼어 주실 때였다고 성서는 전해줍니다.
예수님과 함께 했었던 많은 기억들 가운데 “빵을 떼어주는 것”과 “함께 음식을 나누는 일”이 은연중에 제자들의 마음에 가장 크게 자리했었나 봅니다.
사실 우리들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기억하는 것은 저희들의 마음을 움직였던 그 감동의 순간, 체험의 장이 있기 때문입니다.
말은 우리의 기억에서 쉽게 사라지지만 그 감동과 체험의 빛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고 마음 안에 자리 잡습니다.
살아 계시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우리 가운데 오셨는데 정작 우리들이 그분을 못 알아본다면 문제입니다.
왜 못 알아 뵙는 것일까요?
‘시티 라이트’라는 영화에서 찰리로부터 받은 사랑의 체험이 한 소녀의 삶을 구원했듯이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이 우리 안에서 관계를 맺고 꽃피지 않는다면, 다시 말해 우리 안에 깊은 하느님 체험이 없다면 그분이 다시 오신다 하더라도 그분을 알아 뵙기란 불가능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나를 사로잡았던 그 체험의 장을 통해서 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부터라도 언젠가 그분이 나의 마음을 두드릴 때 “아! 당신이었군요.”하고 서로의 만남에 대해 확인할 수 있는 주님과 나만의 관계를 가꾸어 나가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대화후광 신부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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