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눔터 > 나눔방
|
 |
 |
|
작성일 : 03-06-04 00:00
 조회 : 7,063
|
<<부활 제7주간 수요일>>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죽음을 앞두시고 아버지께 드리는 심각하고도 비장한 기도가 그 내용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이 세상을 어떻게 살 것인가,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무엇을 꼭 찾아 알아야 하고 얻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는 살아 있는 사람들입니다.
살아 있기에 살아 있는 생명으로써 어떠한 삶을 사느냐에 따라 행복과 불행을, 만족과 불안을 이 세상에서 맛볼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이라면 누구나 궁극적으로 불안, 슬픔과 죽음이 없는 삶을 바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삶은 우리 스스로가 원해서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아닌 것처럼, 아버지이신 하느님만이 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이 순간 삶을 주시는 아버지이신 하느님은 예수님의 생애를 통해 분명히 일러주십니다.
‘참되시고 오직 한 분이신 하느님 아버지를 알고 또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 이것만이 ‘사람에게 영원한 삶이 되며 사람에게 영원한 생명이 되리라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안다는 것’은 구약사상에서 독특한 것이었습니다.
잠언 3장 18절에서는 “하느님을 아는 지혜는 붙잡는 자에게 생명의 나무가 되고”라고 했고, 지혜서 15장 3절에서는 “하느님의 힘을 아는 것이 불멸의 근원이다”라 했습니다.
그리고 호세아 4장 6절에서는 “내 백성은 나를 알지 못해서 망한다”고, 아모스 5장 4절에서는 “살고 싶으냐? 나를 찾아오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와 같이 하느님을 아느냐 모르느냐 사느냐 죽느냐 하는 생명이 직결된 문제로 그들은 생활 속에서 알아듣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와 같은 것은 다 안다고 자부하고 있을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되는 것은 우리 자신이 진정 어떠한 모습의 하느님을 알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안다고 하는 것이 단지 지식만으로서의 그것이냐, 아니면 진실한 모습의 하느님이 아니라 비뚤어지고 절름발이 하느님에 대한 이해는 아니냐, 참된 하느님의 모습과는 거리가 먼 자기식대로의 하느님의 모습을 그리고 있지는 않느냐 하는 점을 스스로들 물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참되고 진실된 하느님의 모습은 그분이 보내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만이 제대로 전해질 수 있는 것이며 이렇게 해서 도달된 인식이 아니면 우리에게 참된 생명을 가져다주기란 불가능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분만이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께서 그분을 우리에게 보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를 알기에 힘써야 할 것이며 그리스도를 통해서 좀더 하느님을 온전히 알고 그분의 뜻을 실천함으로써 우리 모든 이의 구원과 영원한 삶을 이룰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대화후광 신부님 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