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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3-06-12 00:00
 조회 : 5,8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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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작은 시내를 건너기 위해 몸을 굽혀 신을 벗으려는 찰나였다.
갑자기 폭풍이 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깜짝 놀라 허리를 펴면서 앞을 쳐다보았다. 개울 건너편에 있는 동굴 속에 서 황금빛의 구름이 이는듯하더니 곧 이어 아름다운 부인의 모습이 보였다.
그 때의 일을 벨라데따는 이렇게 말하였다.
"부인은 곧 나를 쳐다 보고 미소를 지으면서 가까이 오라고 몸짓을 했다.
꼭 어머니 같았다. 나는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 나는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을 못했다.
그래서 눈을 비벼도 보고 감았다가 다시 떠 보기도 했다. 그러나 부인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서
나를 보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나는 꿈이 아님을 믿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묵주를 꺼내 손에 들고 무릎을 꿇었다.
부인은 고개를 끄덕여 잘 한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자기도 오른 팔에 늘어뜨린 묵주를 양손으로 옮겨 잡았다."
벨라데따가 묵주 신공을 올리면서 하나 하나 묵주알을 넘길때마다
부인도 자기 손에든 묵주 일을 넘겼다
그리고 영광송을 벨라뎃다와 같이 합송했다. 북주의 기도가 끝나자 부인은 다시 바위 안쪽으로 들어갔다 .
이렇게 말하다. 성모님이 발현 하셨다는 뉴스가 전파되자. 많은 사람들이 루르드의 동굴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성모님을 보는 것은 벨라데따 뿐이었다 . 다른 사람들은 그저 컴컴한 동굴밖에 볼 수 없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벨라데따의 모습을 봄으로써 성모님의 발현을 알았다. 성모님이 발현 하면 곧 탈혼 상태에 들어갔다. 거의 모든 사람들은 벨라데따의 이야기를 믿었다.
그러나 관리들과 지성인이라 자처하는 소수의 사람들은 이를 비웃었다.
그리고 그 소수의 사람들은 소란을 피웠다. 2월 1일 목요일은 성모님이 세 번째 이 발현하신 날이었다.
성모님은 그 날 벨라데따에게 이렇게 말 씀 하셨다 . " 너는 앞으로 2주 동안 매일 이곳에 오너라 . 나는 너에게 이 세상의 행복은 약속 못하지만 다음세상의 행복은 약속하마 ....
"벨라데따는 죽을 때까지 성모님의 이 말씀을 가슴속에 간직했다.
여섯 번째 발현 때 성모님은 슬픈 표정을 하시면서 "죄인들을 위해 기도하라" 고 말씀 하셨다.
그러나 성모님은 곧 표정을 고쳐 미소 지으셨다. 라. 살레뜨에서 성모님은 내내 통곡을 하셨다 .
그러나 루르드에서 는 간혹 슬픈 표정을 하시기도 했지만 자주 자주 미소를 지으셨다 그 차이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아마도 성모께 대한 신심의 증가와 무염시태 교리의 선포가 주요 원인 이었을는 지도 모른다.
여덟 번째 발현 때 벨라데따는 두 무릎으로 성모님이 서 계신 동굴 앞 장미나무 잇는 곳까지 기어갔다. 그녀는 무릎걸음을 옮길 때마다 허리를 굽혀 걸음 한 후 몸을 돌려 사람들을 향하여 "통회하라 ! 통회하라 !" 하고 외쳤다.
아홉 번째 발현 때 성모님은 벨라데따 에게 우물 자리를 잡아주셨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까지 백여 년을 두고 많은 병자를 낫게 한 저 유명한 루르드의 우물이다.
2우러 26일 금요일 . 성모님은 이렇게 말씀 하셨다. "죄인들을 위하여 머리를 숙여 당에 키스하라." 벨라데따는 얼른 그렇게 했다. 그것을 본 대부분의 사람들도 똑같이 그렇게 했다.
3월 2일 성모님은 당신이 발현하신 곳에 성당을 지으라고 말씀 하셨다. 성모님은 또한 그 곳에 많은 사람들이 참배하기를 바란다고 말 씀 하셨다 3월 25일은 성모영보 축일 이었다.
그날 따라 벨라데따는 자기 앞 에 서 부인의 이름이 무엇인지 알고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사람들은 그 부인이 바로 성모님 이라고들 말했다. 그러나 벨라데따에게는 그저 <부인>일 뿐이었다.
그리하여 소녀는 부인에게 이름을 물었다. 부인은 미소를 지을 뿐 대답이 없었다. 소녀가 세 번째 물었다 그 때의 일을 벨라데따는 이렇게 말 하였다.
황금빛 구름도 부인을 따라 자취를 감추었다.
위의 일이 얼어난것은 1858년 2월 11일 프랑스의 서남쪽에 자리 잡은 루르드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였다. 성모님은 그 후 모두 열 아홉번에 걸쳐서 벨라데따에게 발현하셨다.
루르드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처음 알게 된 이래 그 때까지 조금도 흔들림이 없이 신앙생활에 충실했다.
그들은 로마 제국과 반달족 그리고 아리우스와 알비겐 등 이민족과 이단자들의 박해를 극복했다.
소위 종교 개혁이라는 거센 물결이 밀어닥쳐 인근의 인근의 많은 주민들이 가톨릭에서 프로테스탄(개신교)으로 개종할 때 루르드 주민들은 그들의 신앙을 굳건히 지켰다.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 전 프랑스가 흥분과 열광의 도가니 속에 빠져 들어갈 때 그들은 냉정함을 잃지 않았다.
19세기에 접어들어 지식인과 자유주의자들이 하느님을 거스려 일어난 반란에도 그들은 동요하지 않았다 .
그들은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으며 특히 성모 마리아 공경에 그러했다. 성모님이 루르드를 택하신 것은 결코 우연한 것이 아니였다.
< 내일 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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