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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3-06-13 00:00
 조회 : 5,3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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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은 장미 나무 위에 계셨다. 그 모습은 (기적의 매달) 에 그려진 성모님과 비슷했다.
내가 세 번째 물었을 때 부인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부인은 겸손한 자세로 고개를 약간 숙이는 듯 했다.
부인은 두 손을 합장하여 가슴위로 올리더니 하늘을 향해 눈을 올렸다.
부인은 서서히 손을 편 후 나를 향하더니 감격에 떨리는 음성으로
(나는 하자 없는 잉태로다) 라고 말했다. "
순박한 농부의 딸 벨라데따에게는 그 중대한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길이 없었다.
그녀는 빼라멜 본당 신부에게 그 말을 전했다.
본당 신부도 그 때 까지 성모님의 발현을 의심하는 사람의 하나였다.
그러나 그의 의심이 걷히기 시작했다. 그 순박한 소녀가 그 어려운 말을 지어 낼 수는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성모님은 불과 3년 남짓 전에 교황 비오 9세가 선언한 성모 무염시태 교리를 그런 방법으로 추인 하셨다.
" 나는 하자 없는 잉태로다"
이 얼마나 묵시적인 말인가?
그 한 마디 속에는 원조의 법명과 강생 구속 교리도 포함되어 있지 않는가?
그것은 우리들을 각성시키기 위한 그리스도의 계시에 대한 새로운 요약이다.
시기적으로는 세상 사람들이 원천적인 계시를 까맣게 잊어가고 있을 때였다.
프랑스의 정치인들은 루르드의 일을 불안한 눈초리로 지켜보고 있었다.
점점 많아지는 군중들의 수효는 그들의 신경을 예민하게 만들었다.
1879년 . 1830년 . 그리고 1848년 3차에 걸쳐서 프랑스 정부를 뒤엎은 것은 바로 파리의 군중이었다.
1858년 루르드에 모인 군중은 어떤 짓을 저지를지 누가 장담 할 수 있겠는가?
더구나 당시 프랑스를 통치하던 제 3제국의 정정(政情)은 그리 안정되어 있지를 못했다.
당시 프랑스의 정치인들은 거의 모두가 가톨릭 신자임을 자처하였다.
사실 그들은 보통 교우들과 똑같이 주일마다 미사를 참례하고 판공성사를 보고
교무금을 내고 영성체를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성모님의 발현 같은 것은 아예 믿으려 들지 않았다.
그들은 19세기와 같이 인지가 발달한 시대에 그와 같은 일은 있을 수 없다고 믿었다.
그리하여 벨라데따를 심문하고 위협했지만 그들이 바라는 대답을 듣지 못하였다.
나중에는 한때 절도 협의로 옥에 갇힌 일이 있는 그녀의 아버지 까지 위협했으나 결과는 역시 마찬가지였다. 모든 방법이 실 패로 돌아가자 관리들은 동굴 앞에다 울타리를 하고 경찰관을 배치하여 아무도 접근 못하게 했다
그렇게 하면 다시는 시끄러운 일이 없을 줄 알았다. 다시는 성모님이 발현했다는 애기가 없을 줄 알았다.
다음에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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