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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3-06-14 00:00
 조회 : 5,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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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복되신 어머니와 울타리는 아무 관계도 있을 수 없었다.
성모님은 여전히 같은 곳에 발현하셨다.
벨라데따는 동굴 앞에 있는 개울 건너편에 무릎을 꿇었다.
" 나의 눈엔 개울도 울타리도 보이지 않았다.
성모님과 나 사이의 거리도 보통 날과 다름이 없었다. 나는 성모님이 외엔 아무 곳도 못 보았다.
그리고 그날따라 성모님은 훨씬 아름답게 보였다. "
성모마리아 는 미소를 지은 후 벨라데따에게 부드러운 이 별을 고했다 . 그날은 마지막 발현의 날이었다.
그러나 루르드의 이야기는 그날로 써 그친 것이 아니었다. 마지막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루르드 성모> 께 대한 사람들의 신심은 지극하였다. 울타리를 넘다가 붙잡혀 벌금을 물고서도 또다시
울타리를 넘곤 하였다. 사람들은 마침내 루르드에서 얼마 안 되는 비아리쯔라는 곳에서
휴양하고 있던 당시 의 황제 나폴레옹3세 에게 탄원했다
종교적인 사람들과 반종교적인 사람들 사이를 교묘하게 조정할 줄 아는 황제는
그들의 탄원을 받아 들여 울타리를 철거 하였다. 순례자들이 몰려들었다.
루르드가 속해 있던 따르브의 주교는 조사단을 임명하여 벨라데따 의 이야기를 철저히 조사하게 했다.
목격자들은 여러 차례 심문 하고 벨라데따의 이야기를 수십 번 청취하여 작성한 보고서를 검토한 주교는
루르드의 신심을 인정했다. 곧이어 큰 성당들이 세워 지고 병든 순례자들을 위한 병원이 세워 졌다.
오늘날 루르드의 대 성다아은 세계에서 가장유명한 성당의 하나이며 해마다 150만 명의 순례자가 이곳을 찾아든다.
이들 순례자들의 신심은 고무적이다 . 수많은 사람들이 열렬히 기도하는 루르드의 하늘은 온통 기도로 가득한 감을 준다.
벨라데따는 후에 수녀가 되었다. 성모님이 경고한 바와 같이 그 녀는 현세에선 행복하지 못했다
살아있는 " 성인 " 을 보려고 몰려드는 사람들의 호기심. 벨라데따는 겸손치 못하다고 오해한 원장수녀의 엄격함. 그리고 육신을 갉아먹는 폐결핵 등 갖은 고통이 그녀를 괴롭혔다 .
루르드에서 병을 고친 사람의 수효가 수백 명을 헤아렸지만 벨라데따는 그런 은혜도 입지 못했다.
1879년 4월 16일 벨라데따는 <동굴의 성모 >에 마지막 기도를 드리면서 세상을 떠났다.
"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거룩한 마리아여 불쌍한 죄인 나를 위하여 빌으소서.........."
그녀는 1933년 12월 8일 성녀 품에 올림을 받았다.
내일 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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