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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3-06-27 00:00
 조회 : 5,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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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성심 대축일>>
“누구는 마음이 좋다!” 또 “누구는 마음이 고약해서 가까이 갈 수도 없다!” 할 때, 그 “마음”이란 공부하는 책에서나 나오는 말이거나, 제품을 만들어내는 기술적인 용어가 아니라, 살아서 움직이는 우리 모두의 제각기 다른 살아있는 모습인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이란, 한 인간의 성품의 샘이고, 행동의 바탕이고, 그 사람의 사람됨을 말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그러기에 어떤 사람의 마음을 안다는 것은, 바로 그 사람의 인격과 품위를 안다는 것이 되겠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각자의 마음씨는 어떠하며, 어떤 마음을 바라고 있습니까?
아마 내게 실수가 있을 때 상대방은 나에게 용서해 주는 마음, 아량이 넓은 마음을 바라고, 어려움이 있을 때는 이해해 주는 마음, 힘들 때는 도와주는 마음을 베풀어주었으면 할 것입니다.
그리고 교만한 마음보다는 겸손한 마음을, 거친 마음보다는 부드럽고 온화한 마음을, 좁은 소견에 이기심 가득 찬 마음보다는 무엇인가 헌신적이고 봉사해 주는 마음을, 사랑이 메마른 각박한 마음보다는 없는 속에서도 오고갈 수 있는 정이 가득 찬 열린 마음을 더 바랄 것입니다.
그렇게 바라는 마음에 예수님은 우리에게 무엇이라고 하십니까?
남에게 바라기 전에 자신이 바라는 대로 남에게 먼저 해 주라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그렇게 하라고 명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은 어떠하십니까?
예수님은 당신의 마음을 마태오복음 11장 29절에서 표현하시기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의 영혼이 안식을 얻을 것이다” 하셨습니다.
즉 예수님 마음은 온유하고 겸손하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은 요한복음 4장 34절에서 보면, 성부께 대해서는 절대적인 순명으로 나타내십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의향대로 행하심이 당신의 음식이라고 하시면서 죽기까지 아버지의 뜻을 따르셨던 것입니다.
또한 그러한 마음이 우리 인간에 대해서는 “잃은 자를 구원하기 위하여”(루가 9,10), “생명을 해하러 오지 아니하고, 오직 구하기 위하여”(마태오 18,11), “심판이 아니라 오직 생명을 주기 위하여”(요한 12,47), “양들로 하여금 생명을 얻고 또 풍성히 얻도록 하기 위하여 자신을 바치시면서”(요한 10,10) 우리를 대하시는 마음입니다.
99마리의 양을 버려두시고,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아 헤매시는 마음이시며, 탕자를 찾으시며 조건 없이 기꺼이 맞아들이시며 기다리시는 마음이며,(루가15장) 또한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의 일흔 번까지도 용서하시고자 하시는 마음이며,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초대하시는 아버지의 마음인 것입니다.
사실상 예수님은 당신을 찾고 회개하늘 죄인을 항상 따뜻하게 사랑으로 대해 주셨던 것입니다.
죄악 중의 막달레나를, 탐관오리 중의 자캐오를 그렇게 대해 주셨고, 나임의 과부의 어려운 처지를 보고 동정의 눈물을 흘리셨고, 당신의 마음을 외면하는 예루살렘을 향하여서도 눈물을 흘리셨으며, 십자가의 수치스러운 죽음을 통해서 당신 목숨까지 우리 죄의 대속물로 내어주신 마음이며, 성체 성사 안에서 이제는 인간의 모습이 아니라 밀떡과 포도주 형상으로까지 당신 자신을 낮추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에게 내려오시고, 그 안에서 우리를 기다리시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예수님과 함께 지냈고, 그 말씀들을 듣고 봄으로써 예수가 누구인가를 체험한 사도 요한은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라고 힘 있게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은 사랑 자체이시기에 우리는 어떠한 처지에서도 예수님 앞에 안심할 수 있고 다시 힘을 가질 수 있고, 새로운 삶을 찾고 받을 수 있고,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마음은 어떠한가를 다시 한번 살펴보며,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마음을 우리도 가지고 다른 이들에게 베풀어야 하겠고, 그러한 마음으로 우리를 대해 주시는 예수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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