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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3-06-30 00:00
 조회 : 6,3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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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3주간 월요일>>
율법학자 한 사람이 예수님께 말씀드리기를 “선생님, 저는 선생님께서 가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가겠습니다.”라고 하자, 예수님께서는 “여우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 둘 곳조차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뜻은 무엇이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나를 따른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나 아느냐? 나를 따르려면 지금까지 율법학자의 생활 상태로서는 안 되며, 보다 큰 희생을 각오해야 한다.”는 말씀일 것입니다.
예수님과 3년을 함께 다니며 지냈던 마태오는 스승이신 예수님의 모습을 어떻게 보았습니까?
그는 이사야 53장 12절, “많은 사람의 죄를 짊어지고”에서처럼 고난 받는 야훼의 종으로 알아들었기에 여기에서 예수님이 가시는 곳이면 어디까지나 따르고자 하는 율법학자에게 하시는 예수님의 답변도 고난을 전제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그는 “사람의 아들은 머리 둘 곳조차 없다”라는 표현을 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을 따르고자 하는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일시적인 감격에 도취되어 행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순간적인 감격은 얼마 동안 불타오르다가 곧 꺼져 버립니다.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물론 감격적인 것도 있겠으나, 그러나 인내와 함께 항구하게 당신의 수난에 참여하고 실행하는 자세입니다.
마태오 10장 38절,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도 내 사람이 될 자격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또 루가 14장 26절에서는 “누구든지 나에게 올 때 자기 부모나 처자나 형제자매나 심지어 자기 자신마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고 하시며, 마태오 19장 21절에서는 “너의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만일 한 젊은이가 “저는 권투 선수가 되겠습니다.”라고 어느 유명한 권투 지도자에게 말했다고 합시다.
그 지도 선생은 “그래 좋다. 자네가 매일같이 엄한 훈련을 이겨낼 투지와 기술 습득에 정진할 자신이 있는가? 뜻은 좋지만 영광의 길은 고된 피땀과 상처의 길일세”라고 말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당신을 어디든지 따르겠다고 장담하고 나서는 율법학자에게 같은 말을 하셨다고 하겠습니다.
즉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은 순간적으로 감격해서 갈 수 있는 것도 안일한 생활의 길도 아닌 십자가의 길인 것입니다.
그 길은 천국으로 이르는 영광의 길인 동시에 고난의 길이라고 일러주시는 것입니다.
-대화후광 신부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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