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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3-07-02 00:00
십자가 도전의 응답
 글쓴이 : 가로등
조회 : 5,450  
<<연중 제13주간 수요일>>

예수께서는 호수를 건너 가다라 지방으로 가셨다.
예수님은 거기에서 무덤에서 사는 마귀 들린 사람을 만나신다.
마귀 들린 사람은 예수께 “하느님의 아들이여, 어찌하여 우리를 간섭하시려는 것입니까? 때가 되기도 전에 우리를 괴롭히려고 여기 오셨습니까?”하였다.
그가 말하는 때는 “메시아의 때”로서 마귀가 정복당하는 때를 말한다.
그러면서 “우리를 쫓아내시려거든 저 돼지들 속으로나 들여보내 주십시오.”하고 간청하였다.
예수께서는 “가라!”하고 명령하셨고, 마귀들은 돼지들 속으로 들어가 돼지 떼는 물 속에 빠져 죽었다.
이러한 소식을 들은 동네 사람들이 나와서 예수님을 보고는 저희 마을에서 떠나달라고 간청하였다.

오늘 예수께서 가신 가다라 지방은 이방인의 지역이었다.
어떤 모습으로든지 하느님을 모르고 예수께서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예수님의 현존 그 자체가 도전이며, 하나의 두려움으로 다가올 수 있다.
마귀 들린 자의 말이나 동네 사람들의 자세를 보면 그것을 알 수 있다.
마귀는 주님의 현존 앞에서 물러가고 예수님 앞에는 이제 하느님의 능력을 체험한 한 인간, 하느님의 자녀가 남아있다.
크나큰 고통을 당했으나 이제 깨끗이 치유된 그 사람을 동네사람들도 보았다.
그런데도 그들은 예수님께 자기들을 떠나가 달라고 간청하고 있다.
그들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모르기 때문에 그분과 함께하는 것이 받아들이기 힘든 도전이었고 두려움이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예수님도 떠나시고 그 일행도 모습을 감추었을 때, 그 자리에는 누가 남아 있는가?
마귀에게서 해방된 그 사람이 남아있다.
마귀 들린 사람을 온전케 해 주는 것은 주님께서 원하시는 일이었고, 그렇게 되었다.
말로 다 표현할 수조차 없는 해방의 사건에도 불구하고 자기 재산의 피해,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죄를 그들은 범하고 있음을 복음은 지적하고 있다.
그들은 결국 예수님께 “떠나 달라”고 말하고 만다.
순간적이고 현세적인 손해에 눈이 어두워 구원을 받아들이지 못한, 예수님께 떠나달라고 했던 동네 사람들의 모습이 우리에게는 없는가?
지금 우리의 삶이 주님께 우리를 떠나달라고 간청하고 있는 삶이 아닌지 잘 살펴보아야 하겠다.

우리는 매 순간 하느님의 뜻 앞에 서 있다.
하느님의 뜻은 십자가의 도전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이 십자가를 어떻게 처리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느냐가 중요하다.
그 십자가가 영광을 줄 줄을 알지만, 그 과정이 두려워 그 십자가를 버려야 할까?
아니면 그 도전에 응답함으로써 영광을 누릴까? [수원교구 조욱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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