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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3-07-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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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옷에 손을 댄 여자, 살아난 회당장의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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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회 : 5,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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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4주간 월요일>>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회당장이 죽은 자기 딸을 살려 달라고 간청하는 것과 12년 동안이나 하혈병을 앓던 부인이 예수님의 옷단을 만짐으로써 병이 완쾌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여기에서 회당장 하면 유대교의 정통주의의 지주와 같은 위치에 있는 삶이었고 예수님을 경멸하고 미워하는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이었습니다.
어쩌면 그도 그의 딸의 죽음이라는 재난이 없었다면 예수님을 제거하는 것을 바랬을지도 모를 사람입니다.
그는 회당장의 위치에서 자기 딸을 살리기 위해서 약이란 약은 다 썼을 것이고, 의사의 치료란 치료는 받을 수 있는 한 다 받아 보게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헛수고였고, 자포자기한 상태에서 이제 남은 방법이란 자신이 죄인시하던 예수님께, 즉 자기들만이 야훼 하느님을 제대로 섬기고 있다고 자처하면서 이단을 가르치며 죄인들과 어울린다고 비난을 하던 예수님께 매달릴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생각해 볼 때 그 회당장이 예수님을 찾아온 동기는 순수하지 못하다고도 평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신앙심에서 예수님을 찾은 것이 아니라, 그의 딸의 완쾌를 위해 인간적인 방법을 다 해보았으나 이제는 더 이상 할 만한 방법이 없었기에, 더욱이 예수님을 비난하던 위치에서 자기가 아쉬우니까 예수님을 찾아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런 마음자세를 가지고도 당신을 찾는 그를 거절하시거나 책하시지 않으시고 그의 청을 들어주시는 예수님의 마음에 우리는 경탄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하혈병에 걸려 고생하는 부인의 경우도 우리가 판단할 때는 마찬가지라고 하겠습니다.
즉 그 부인을 우리가 외면적으로만 볼 때는, 우리 이웃 중에 믿지 않는 이들이 병의 완쾌나 불행을 피하기 위해서 부적을 몸에 지니거나 만지듯이, 그 부인이 예수님의 옷단에 손을 대는 행위는 같은 미신적인 행위가 아니겠는가 할 수 있습니다.
사실 그 부인 역시 12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당시 유대인들이 부정하다고 해서 멀리하던 하혈병으로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고통을 받아오면서 병의 완쾌를 위해 인간적인 모든 방법은 다 썼을 것입니다.
그런 속에서 이제는 할 수 없으니까 예수님의 옷단이라도 만짐으로써, 즉 일종의 미신적인 방법을 통해서 병의 완쾌를 바랐던 것입니다.
회당장의 경우도, 하혈하는 부인의 경우도 우리가 볼 때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알고 그분을 믿어 구원을 받으려는 순수한 믿음의 행위에서 예수님을 찾은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중에 많은 이들도 어려움을 당해서 성당에 오고 예수님을 찾고 영세를 하는 경우들을 보았고 또 들어 왔습니다.
이러한 동기로 하느님을 찾는 사람들을 우리들은 진정 어떻게 생각하고 또 어떻게 이해하고 있습니까?
그러나 오늘 복음에서 보면 예수님은 바로 그런 동기로 당신을 찾는 사람들도 거절하지 않으셨다는 점을 우리는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당신을 찾는 사람들의 동기가 어떻든지, 찾는 방법이 합당하든지 부적당하든지간에 예수님은 사람들이 삶을 위하여 당신의 도움을 청할 때 거절하시지 않으시고 언제나 받아 주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오늘 복음을 통해서 다시 한 번 깊이 느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보기에 예수님을 찾는 사람의 동기가 참다운 신앙과는 거리가 멀고 의심스럽다 하더라도 그 사람을 비판할 권리가 우리에게는 없다는 것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자세가 좋든 나쁘든 간에 우리가 삶을 위해 당신을 찾을 때 거절하지 않으시고 언제나 받아 주시는 예수님의 너그러우심에 우리는 감사하며 의지해야 하겠습니다.
당신을 찾고 의지하며 매달린다는 이 자세만이라도 은혜를 받기에 넉넉하다는 것입니다.
-대화후광 신부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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