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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7-03-30 01:06
 조회 : 5,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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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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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깨달은 것 - 푸우 신부님
페페 신부님은 ‘내가 이제야 깨닫는 것은’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랑을 포기하지 않으면 기적은 정말 일어난다는 것,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은 숨길 수가 없다는 것,
이 세상에서 제일 훌륭한 교실은 노인의 발치라는 것,
하룻밤 사이의 성공은 보통 15년이 걸린다는 것.
어렸을 때 여름날 아버지와 함께 동네를 걷던 추억은
일생의 지주가 된다는 것.
삶은 두루마리 화장지 같아서 끝으로 갈수록 더욱 빨리 사라진다는 것.
돈으로 인간의 품격을 살 수 없다는 것.
삶이 위대하고 아름다운 이유는
매일 매일 일어나는 작은 일들 때문이라는 것,
하느님도 여러 날 걸린 일을 우리는 하루 걸려 하려든다는 것.
부모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단 한 번이라도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은 영원한 한이 된다는 것.
우리 모두는 다 산 꼭대기에서 살고 싶어하지만 행복은
그 산을 올라갈 때라는 것.
깨달음을 얻은 이들이나, 인생의 끝자락에 계신 분들은
삶이란 그리 복잡한 것이 아닌데
너무 복잡하고 힘들게 살아왔노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삶은 이런 것이라고 말해도 여전히 현실을 살고 있는 우리는
내가 생각하고 있는 삶이 옳다고 주장하며 살아갑니다.
자신의 것을 놓기란 정말 어렵습니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아무리해도
받아들이려하지 않는 그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아버지의 일을 하지 않고 있다면
나를 믿지 않아도 좋다.” (요한 10, 37)
당신께서 인간이기 때문에 ‘하느님의 아들’이나 ‘신’이라고 하는 것을
믿지 않는다면, 당신께서 하시는 일을 보고서
그 일만이라도 믿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을 보지 말고 그 사람이 행하는 행동을 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하느님이라면 어떨 것이라고 믿는
그 삶을 보여주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내가 그 일을 하고 있으니 나를 믿지 않더라도
내가 하는 일만은 믿어야 할 것이 아니냐?”(요한 10, 38)
의문형으로 쓰고 있는 이 말은 믿으라는 명령입니다.
그 일만은 믿어야하고, 그렇기에 예수님처럼 아버지께서 명한 그 일을
행해야 한다는 명령인 것입니다.
당신께서는 하느님의 성사로서 삶을 보여주십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 일을 믿어야하며,
당신처럼 우리도 그리스도의 성사가 되어
다른 사람들이 우리의 삶을 보고 믿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나 한번 닫혀진 마음을 열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들이 다시 돌을 들어 치려했다거나,
다시금 붙잡으려 했다는 표현을 통해서
요한은 그들은 도무지 마음을 열지 않았다는 것을 드러냅니다.
이제 예수께서는 요르단 강으로 건너가셔서 머무십니다.
요르단 강, 그곳은 세례자 요한이 세례를 베풀던 곳이고,
회개를 외치던 곳입니다. 예수께서 이곳으로 향하신 것은
우리가 당신을 받아들이기에는 회개하고 마음을 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예수를 믿게 됩니다.
우리도 다시 요르단 강으로 향해야 합니다.
묵묵히 그곳을 향해 떠나 다시 우리의 신앙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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