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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3-09-15 00:00
 조회 : 5,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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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성 마리아를 천주의 모친이라고 부르며 존경을 드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삶은 이 세상에서 우리들의 생활과 조금도 다름없는 삶을 사셨던 것입니다.
오히려 생활 여건이 우리보다 못한 처지의 목수의 아내로밖에 사람들의 눈에 뜨이지 않은 생활이었습니다.
또한 성자 예수의 모친이시니 영신적으로나 심적으로라도 하느님의 은혜 속에서 천상 기쁨에서 걱정없이 지내신 것처럼 생각하기 쉬우나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분은 루가 2장 35절에서 볼 때, 시메온 노인이 성모 마리아의 장래에 대하여 “장차 예리한 칼이 당신 마음을 찔러 사뭇치리니”하고 예언한 대로, 그분은 고통의 어머니로 일생을 사신 분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기에 성서에 나타나 있는 성모의 고통을 보면,
1) 시메온 노인의 예언을 들어야만 했는가 하면,
2) 에집트로 피난을 가야했고,
3) 12세의 아들 예수를 잃고 찾아 헤매야 했고,
4) 길에서 십자가를 지신 아들 예수를 만나야했고,
5) 아들 예수가 십자가에 죽는 것을 말없이 보아야하는 고통을 받으셨고,
6) 푸념할 수도 없이 죽은 아들을 품에 받아 안아야 하는 고통을 받으셨고,
7) 아들 예수를 장사지내야하는 어머니의 고통을 어찌 우리가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이러한 고통의 어머니 모습을 기념하는 오늘 우리 생활 속에 당하는 고통을 나는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를 비교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고통 없이 지내는 속에서 남의 어려움을 우리는 어떻게 나누고 있다고 하겠습니까?
교회 전례가 우리 죄의 사함을 위하여 예수께서 희생되신 십자가의 신비를 묵상하고 찬미하게끔 하고 있다면 이 십자가의 모습 속에서 잊어서는 안 되는 사실은 바로 성 마리아께서 예수와 함께 당하시는 고통의 모습인 것입니다.
즉 성자 예수의 십자가를 생각한다면 으레 그 일을 도우시며 성모 마리아를 생각안할 수 없기 때문에 오늘 그 축일을 지내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 편에서 볼 때, 또한 마음 든든하게 가질 수 있는 신비가 들어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예수님의 말씀대로 우리가 우리 생활 속에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지고 따른다면 바로 우리가 당하는 십자가의 역경 속에 성모 마리아께서 당신 아들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그 곁을 떠나지 않으신 것처럼 바로 역경 속에서도 우리를 떠나시지 않으시고 고통을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역경을 만나 혼자 괴로워할 것이 아니라 우리를 쳐다보시며 의욕을 잃지 않도록 도와주시는 성모님을 바라볼 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표양이신 성자 예수께서도 그 옆에 어머니가 계셨기에 십자가의 고통 속에서도 그 어머니께서 함께하여 주셨기에 든든한 마음을 가지셨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다가 그 목숨을 다한다 할지라도 어머니이신 마리아께서는 그 품으로 받아 안아주실 것이기에 우리는 세상의 눈으로 볼 때는 그보다 비참할지 모르나, 영신적으로는 피에타상에서 볼 수 있듯이 성모님의 품에 안기는 영광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안에서 든든한 위안을 받을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대화후광 신부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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