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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3-08-29 00:00
 조회 : 7,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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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잘 모르지만 몇가지 찾아서 올려봅니다.....
* 가르멜회 [ Carmelite ] 란?
가톨릭의 탁발수도회(托鉢修道會).
설립연도 : 1154년
설립목적 : 공동생활, 기도·절식·침묵을 통하여 사랑의 정신에 철저
베르톨더스(?~1195)가 1154년 이스라엘 서북부 갈릴리 지방의 가르멜산에 창설한 것이 그 기원이다. 가르멜산은 이미 구약시대에 대예언자 엘리야와 그의 제자 엘리사가 기도의 장소로 선택했던 곳으로, 초대교회 때도 이들 예언자들의 모범적 생활을 따르려는 열성적인 은수사(隱修士)들이 이곳에 모여들었고, 6세기에는 이미 수도원이 세워졌다.
1226년 교황 호노리우스 3세로부터 정식으로 회칙을 인정받았고 1247년 교황 인노켄티우스 4세로부터 원초적 은수정신과 사도직 실천을 겸비한 탁발수도회로 최종 승인되었다. 이무렵 회칙에 따라 여자수도회도 설립되었다. 15세기에는 회칙이 완화되었으며, 16세기에는 개혁운동이 일어나 개혁을 따르는 맨발 가르멜 수도회와 개혁 이전의 규칙을 따르는 완화 가르멜 수도회로 양분되었다. 한국에 진출해 있는 가르멜수도회는 남녀 모두 맨발 가르멜수도회(개혁 가르멜)에 속한다.
공동생활을 하면서 기도·절식(節食)·침묵을 통하여 사랑의 정신에 철저할 것을 목적으로 한 관상(觀想) 수도회로서, 수도사 가운데는 많은 신비사상가가 배출되었고, 가톨릭의 신비사상에 하나의 큰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16세기 에스파냐가 낳은 아빌라의 성(聖) 테레사(1515∼1582)나 십자가의 성(聖) 요한이 유명하다. 세계 각지에 수도원을 가지고 있으며, 남자수도회는 수천 명, 여자수도회는 1만 수천 명의 회원들이 활동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1939년 프랑스에서 나온 가르멜 수녀 3명이 서울특별시 혜화동에서 처음으로 가르멜 생활을 시작하였고, 수사들은 1974년 8월부터 활동하였다. 2001년 4월 현재 가르멜수녀원은 8개이며, 수사들은 5개 공동체에 48명이, 재속회는 21개 단위재속회에 3,000명이 넘는 회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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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도교 영성과 가르멜의 삶
(*이 글은 2001년 4월 3일 오전 10시 30분에 전국 가르멜 재속회 회장단을 대상으로 한 가밀로 마치세 총장신부님 (P. Camilo Maccise, O.C. D.)의 강연 내용을 재정리한 것입니다.)
가르멜 수도회 가족은 세계적인 수도회 가족입니다. 통계적으로 본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남자 수도자 (수사, 신부) 4,000 명
봉쇄 수녀님 12,500 명
재속회원 40,000 명
세계적으로 가장 재속회원이 많은 나라는 약 4,000 명 이상의 회원을 가지고 있는 인도와, 그 다음 3,500 여명의 회원을 있는 멕시코, 그 다음 3,200 여명의 한국이 세 번째로 재속회원이 많은 나라이나, 인구나 가톨릭신자 수와 비교해본다면 한국이 전세계적으로 1위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리고 가르멜 영성을 따르는 여러 수도회들을 다 포함하여 75개의 수도회가 있고, 100개국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는 가르멜 수도회가 성령을 통하여 교회의 선익을 위하여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영성생활을 할 수 있는가? 즉 영성을 살 수 있는가?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가장 핵심적인 문제 중에 하나입니다.
가르멜 평신도들이 가장 많이 듣는 말 중 하나가 바로 영성이라는 단어입니다. 그래서 먼저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영성에 대해 말씀드리고, 그 다음 가르멜 영성에 대해 이 일반적 영성에 따라 말씀드리겠습니다.
사실 수도회마다 고유한 사명을 성령께로부터 부여받고 있기 때문에 가르멜도 교회를 위해 중요한 사명을 지니고 있습니다. 수도회뿐만 아니라 모든 이들이 선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하며, 여기에서 여러 가지 직무들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직무가 있다는 것은 바로 성령으로부터 다양한 카리스마(은사)를 받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위에서 언급하였습니다마는 카리스마는 다른 이들의 선익을 위한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각자는 고유한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습니다.
굳이 신약성서에서 바울로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고, 예언하고, 방언하고, 해석하며, 치유하는 등의 성령의 은사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탈렌트 혹은 재능 또한 성령의 은사 카리스마입니다.
예를 든다면, 성악· 기악 등의 음악에 대한 탈렌트, 회화· 조각 등의 미술에 관한 재능, 기술· 과학 등의 재능, 꽃꽂이나 장식 등의 재능, 설겆이나 청소 등을 깨끗이 하는 능력 등.
이 모든 탈렌트 즉 재능은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나와 함께 하는 사람들과 인류를 위한 것임을 우리는 항상 명심해야 합니다.
위에서 잠깐 언급하였지만, 교회에는 수많은 카리스마(은사)가 주어짐으로써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한 가족이며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함께 노력하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를 든다면, 기도의 선물, 전례의 선물, 설교의 선물, 양성 또는 교육의 선물, 간호의 선물 등.
모든 은사 하나하나가 모든 이들의 선을 위한 하느님의 선물인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의 가르멜 수도회의 사명은 무엇이며, 교회의 선익을 위하여 어떤 선물, 은사, 카리스마를 하느님께로부터 받았는가? 또한, 수사님들은 어떠한 카리스마를 받았으며, 봉쇄 수녀님들은 또 어떤 카리스마를 받았고, 우리 가르멜 평신도들은 어떤 은사를 받았는가? 하는 질문을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모든 수도회 가족들은 고유한 방법으로 그리스도교적 영성을 살고 증거하여야 한다는 사명을 받았으며, 이를 위한 특별한 은사를 받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음의 세 가지 점에 대하여 한 번 알아보겠습니다.
1) 영성이란 무엇인가?
2) 영성의 기본적 요소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3) 그리스도교 영성의 기본 요소들을 가르멜 영성을 통해 어떻게 살 아야 하는가?
1. 영성이란 무엇인가?
영성이란 구름잡는 것처럼 어떤 허황한 것을 추구하는 것도 아니고, 잘 알지 못하는 것을 모호하게 이야기 하는 것도 아닙니다. 영성이란 보이지 않는 것을 추구하기 위해서 눈에 보이는 것을 보지 않고, 느끼지 않으려고 세상사를 외면한 채 초연한 듯이 눈을 감고 사는 것도 아닙니다. 영성을 살기 위해서 성당에 가야만 하는 것도 아닙니다. 즉, 영성이란 거룩하고 순결하고 선한 것만을 생각하고 실천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고, 영성은 삶의 모든 부분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성은 그리스도와 성령의 인도에 따라 사는 것을 뜻합니다. 삶의 모든 순간과 상황과 사건을 통하여 살아야 합니다. 즉 기도하거나 희생하고 봉사할 때만 영성을 사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닮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응하는 것이 바로 영성입니다.
영성은 젖어드는 것이다.
영성은 내가 느끼지 못하는 가운데, 나의 모든 것을 감싸고 있으면서 내 머리를 적시고 옷깃을 적시어, 서서히 나의 몸 전체를 적셔버리는 습기와도 같은 것입니다. 습기는 눈에 보이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지만 습기가 있으므로 식물이 생기를 얻고 푸르름을 만들어내서 마침내 좋은 열매를 맺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총장님은 영성은 김치와도 같은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음식들이 식탁 위에 올려지던지 간에 김치가 있으므로 해서 그 모든 음식이 맛있을 수가 있으며, 어쩌면 우리에게 삶의 기쁨을 주는 순간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즉 영성은 김치처럼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 맛을 더해 주는 것입니다. 달리 말한다면, 믿음, 희망, 사랑의 삶 안에서 그리스도를 따르면서 성령께 온전히 순응하는 것이 바로 영성입니다.
2. 영성의 기본 요소들
우리가 식사를 준비할 때에 식단을 짜서 음식을 조화롭게 준비한다거나, 한 음식을 만들 때에 거기에 필요한 조리법에 따라 재료을 알맞게 준비하여 적절하게 요리를 하여야만 정말 영양가 있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낼 수가 있습니다.
영성생활도 필요한 재료를 알맞고 적절하게 혼합을 하여야 올바르고 좋은 영성생활을 영위할 수 있습니다.
1) 하느님의 체험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모든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증거하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어떤 것을 증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체험을 하여야 합니다.
법정에서 다루어지는 여러 진술들 중에서, 어떤 사건이나 사고를 그 현장에서 목격한 증인의 증언이 가장 확실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믿음을 통해 자신의 삶 안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하고 이를 증거해야 합니다. 영성생활이란 하느님과의 관계를 어떻게 하면 남남의 관계에서 친밀하고 의미있는 관계로 우리의 삶을 엮어 나갈 수 있는가를 추구하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알기 위해서는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욱 정확하고 올바르게 알 수 있다는 것을 종종 체험하게 됩니다. 흔히 우리는 일정한 시간에, 또 한정된 상황 안에서 어떤 사람을 만나기 때문에 우리는 상대의 진정한 모습이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나의 모든 모습들· 시간들과 상황들· 사건들 안에서 하느님과 함께 하려고 노력해야 하고, 그러한 상황들 안에서 우리도 하느님의 모습을 체험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2) 그리스도를 따름
이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해당되는 것입니다.
복음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따랐고, 또 따르기를 원하였지만 그리스도께서는 이들에게 세 가지를 요구하셨습니다.
가족보다 더 하느님을 사랑하여야 한다.
재물보다 더 하느님을 사랑하여야 한다.
매일 매일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이렇게 그리스도를 따르게 되면, 하느님을 아버지로 체험하게 되고, 이웃을 나의 형제 자매로 체험해야 하며, 이 세상을 하느님과 형제 자매들을 만날 수 있는 공간 즉 장(場)으로 체험해야 할 것입니다. 달리 표현한다면, 이 세상은 사랑 가득한 가정, 집이면서 하느님과 나와 이웃은 한 가족이라는 체험이 요구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려면, 그리스도께서 나에게 가르쳐 주신 복음을 우리 이웃에게 선포하고 증거해야 하며,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사명을 우리의 것으로 삼아 이를 실천해야 합니다.
3) 성령의 요구에 자신을 열어 놓음.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말씀하시고 또 힘과 능력을 주십니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직접 말씀하시는 것보다는 언제나 시간과 사건을 통한 이 세상에서의 우리 삶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령께 언제나 마음을 열어놓는다는 것은 바로 깨어있는다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항상 깨어 삶과 사건 안에서 은밀히 말씀하시는 성령께 온갖 주의를 다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즉 성령께서 지금, 여기에서 이런 상황과 사건을 통하여 원하시는 것이 무엇이며, 나는 어떻게 응답하고 행동해야 할 것인가를 끊임없이 묵상하고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4) 믿음
신앙은 단순히 진리를 믿고 받아들인다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은 어떤 사람이나 존재에게 자기 자신을 온전히 열어 놓고 개방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즉 나의 장점이나 단점 등 모든 것을 하나 숨김없이 보여 드려야 합니다. 또한 믿음은 그 사람에게 자신을 온전히 내어맡기면서 의지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또한, 우리가 기도 중에 아멘(믿습니다) 라고 응답하는데, 이는 상대의 말과 행동을 온전히 받아들이면서, 상대에게 온전히 내 자신을 내어맡김을 동시에 의미하는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복음에서 믿음에 대하여 말할 때, 거의 언제나 아버지나 어머니 품안에 안겨 있는 아기처럼 받아들이고 행동할 것을 그리스도나 사도들은 요구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믿음이란 신뢰를 가지고 하느님 품안에 자신을 내어맡겨 드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믿음이란 하느님과 나와의 연결 끈입니다. 즉 라디오나 전화는 우리가 볼 수는 없지만 멀리 있는 사람의 말을 들을 수 있게 하고, 텔레비젼을 통하여 우리는 멀리 있는 사람을 볼 수 있는 것처럼, 믿음 또한 멀리 계시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볼 수 있게 해줍니다.
5) 희망
희망은 단순히 우리가 사후나 종말에 하느님 나라에서 누릴 수 있는 것을 기다린다는 소극적인 의미뿐만 아니라, 적극적인 차원에서 본다면, 가만히 인내하며 참고 기다림을 넘어서 우리가 간절히 바라는 것을 이 세상에서 미리 성취될 수 있도록 노력함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런 희망을 가진 우리는 이 세상에서의 삶이 보다 참되고 좋은 삶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합니다. 예를 든다면, 사회 정의와 평화 등을 위하여 좋은 뜻과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노력하여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정의와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희망을 통해 힘과 능력을 주십니다.
6) 사랑
그리스도 삶에서 가장 기본적이고 중추적인 요소가 바로 사랑입니다. 우리가 음식 중에서 밥을 먹지 않았다면 배는 부르지만 무언가 빠진 듯 느끼는 것처럼,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 말하면서 사랑이 없거나 실천하지 않는다면, 열심히 주일 미사에 참여하고 기도함으로써 열심한 신자라는 말을 들을 수는 있고 자기 자신도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만, 참된 그리스도인이라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도 가장 중요한 계명은 하느님을 온 마음을 다하여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그리스도교 생활의 가장 중추적이고 핵심적인 것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바로 사랑-애덕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날 그리스도교적인 애덕을 말할 때에 내가 내 이웃 중의 누구를 사랑할 수 있느냐, 내가 봉사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 하는 개인적 차원을 넘어서 사회적인 차원에서 어떻게 이 사랑을 실천할 수 있을 것인지도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합니다. 예를 든다면 환경문제나 사회정의 또는 장애자 문제 등등에도 관심을 가지고 노력해야 합니다. 또한 전 세계의 2/3가 가난과 굶주림과 불의와 전쟁 등으로 고통 당하고 있다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고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7) 기도
여기서 말하는 기도는 내가 하느님께 드리는 기도뿐만 아니라, 특히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기도에 대하여 말하고자 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기도드릴 때에는 하느님을 아버지처럼, 아니 아버지이신 하느님께 기도드려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기도는 희망의 기도입니다. 성서 가장 마지막 말씀이 "주님, 어서 오소서"라는 기도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기도는 모든 인간에게 필요한 것들을 청해야 합니다. 그것이 영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물질적인 것이든 구분하지 않고 필요할 때마다, 도움을 청할 때마다 우리는 기도드려야 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매일 바치는 "주님의 기도"를 보면, 우리가 발을 땅에다 딛고 서서 하늘을 쳐다보는 존재임을 체험하게 해줍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하느님 나라가 이 땅에 실현되기를 기도하고, 하느님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 부분에서는, 모든 이들이 끼니때마다 식사할 수 있게 되기를 기도드리고, 우리가 당신의 도우심을 받아 이웃을 용서할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하고, 우리가 어쩔 수 없는 죄와 악의 세력에서 우리를 구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이처럼 우리는 기도드리면서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을 청하고 영신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 등, 우리 삶에 필요한 모든 것들과 우리 삶과 연관된 모든 것을 하느님께 신뢰하면서 청해야 할 것입니다.
8) 전례와 성사
전례란 한마디로 거행된 하느님의 말씀의 선포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그리스도에 의해서 복음으로 처음 선포되었습니다.
복음을 통하여 선포된 하느님의 말씀은, 하느님께서 먼저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고 계신다는 것과, 하느님께서 먼저 우리를 당신 자녀로 삼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서로 형제 자매라는 것을 일깨워 주셨습니다. 이런 것들을 우리가 받아들이고 살아갈 때 우리에게는 영원한 생명과 영원함 행복이 주어진다는 것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가정에서 전화나 편지, 지금은 e-mail을 통하여 기쁜 소식이 전해지면, 식탁에 둘러앉아, 식사시간에 모든 가족들에게 알림으로써 그 기쁨이 배가되는 것을 우리는 종종 체험하게 되는 것처럼,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의 만찬 상에 둘러앉아, 그토록 기다리던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는 것이 바로 전례의 정신입니다.
그리고 친척 중에 누가 결혼한다는 기쁜 소식을 우리가 들었다면 우리는 혼배미사에 참례할 것을 생각하고 축의금은 얼마나 하고, 또 선물은 무엇으로 할까 생각하고 실천하게 되는 것처럼, 선포된 하느님의 말씀을 우리는 신앙으로 받아들이고 희망으로 실천하며 삶 안에서 다른 이들을 사랑하여야 합니다. 달리 표현한다면, 전례와 성사를 거행한다는 것은 사랑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역으로 표현한다면, 사랑을 실천할 때 우리는 전례생활을 더욱 잘 할 수 있습니다.
9) 복음적 자아포기 (이탈)
복음적 자아포기 또는 이탈은 매일같이 자기 십자가를 진다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극기나 절제와 같은 덕은 어떤 계획에 따라 혹은 의식적으로 하는 것보다는 자연스럽게 행하는 것이 좋습니다. 단식이나 금식 또는 금육 등의 덕도 물론 실천해야 하지만 이러한 복음적 자아포기는 매일의 삶 안에서 실천해야 하며, 매일 매일의 삶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사랑이란 때때로 힘들 수가 있고, 사랑을 행하기 위해선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10) 성모신심
성모신심은 성모님께 우리가 필요한 것을 청하는 것이 아니라, 나자렛에서의 성모님의 삶을 관상하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성모님께서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평범한 일상생활을 영위하셨다는 점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러한 매일매일을 살아가면서 하느님께 언제나 자신을 개방하셨다는 것을 우리는 언제나 명심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웃을 먼저 생각하고 그 필요성에 가까이 다가가시는 모습은 너무나 아름다우신 모습입니다.
성모님의 삶은 우리의 신앙생활과 같습니다. 즉 성모님께서는 하느님의 뜻에 대해 자신을 온전히 열어두고 계셨습니다.
예를 든다면, 엘리사벳 방문, 가나의 혼인 잔치, 사도들과 함께 기도하심 등.
이런 점에서 성모님의 삶은 우리가 모든 점에서 신앙인으로서 본받아야 할 모범입니다.
3. 가르멜 영성이란 무엇인가?
가르멜 영성은 그리스도교 영성의 기본 요소를 바라보고 실천하는 하나의 길이고 방식이며 형태입니다. 즉 생활규칙해설서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가르멜 영성은 고유한 생활방식인 것입니다.
하느님 현존을 체험하는 데에도 여러 가지 형태가 있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든다면, 성서 안에서, 자연 안에서, 이웃 안에서 등등.
한마디로 말하자면, 가르멜 영성 안에 그리스도교 영성의 모든 기본 요소가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위에서 언급한 그리스도교 영성의 순서대로 가르멜 영성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1) 가르멜 영성적인 하느님 체험
사람과 사건과 상황 안에서 하느님 체험이 가능하지만, 특히 우리 안에 계시는 하느님을 체험하는 것을 기본으로 합니다. 즉, 침묵과 고독 안에서 우리 안에 계시는 하느님을 체험하려고 노력하여야 할 것입니다. 예수의 성녀 데레사는 "영혼의 성"에서 우리 영혼을 하느님께서 살아 계시는 거룩한 성으로 표현하셨습니다.
2) 그리스도를 따름
그리스도를 따름에 있어 내가 그리스도를 어떻게 생각하고 바라보는냐에 따라 그리스도를 따른 방법이 달라 질 수 있습니다.
예수의 성녀 데레사는 그리스도를 친구처럼 바라보셨습니다. 나의 삶의 여행의 동반자로 생각하시면서, 이렇게 그리스도 함께 여행하면서 깊은 우정의 친교가 있어야 함을 거듭 주장하셨습니다.
3) 성령께 자신을 개방함.
무엇보다도 먼저 성령께서 우리 마음 안에서 말씀하신다는 것을 항상 인식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인식은 우리를 회개에로 초대하고, 이러한 회개를 통해 우리는 더욱 성령께 유순해지며 성령의 말씀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장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4) 신앙
십자가의 성 요한은 믿음을 어두운 밤이라 표현하셨습니다. 이는 순수한 신앙을 의미합니다. 어떤 징표도 볼 수 없지만 하느님을 따르는 삶을 뜻합니다.
5) 희망
희망이란 하느님이 아닌 모든 것으로부터의 자기 자신의 이탈을 의미합니다.
예수의 데레사 성녀는 하느님만으로 족하다고 말씀하셨고, 십자가의 성 요한은 하느님, 성모님, 이 세상, 모든 성인 성녀께서도 당신의 것인데 그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것이기 때문이라고 역설적으로 자기 자신에 대한 이탈을 말씀하셨습니다. 즉, 하느님이 아닌 모든 것에 대하여 집착하지 않을 때에 우리가 그 모든 것을 올바르게 소유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하느님의 뜻에 따라 이 모든 것을 소유할 수 있게 되며 누릴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6) 사랑
사랑은 모든 사람 안에서 하느님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즉, 가르멜인들이 사랑을 실천한다는 것은 모든 이와 형제적 우정을 나누는 것을 뜻합니다.
예수의 데레사 성녀는 가르멜인들은 모두 한 가족이므로 한 형제자매들처럼 살아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7-8) 기도와 전례
기도와 전례는 거의 같은 맥락에서 설명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가르멜적인 기도와 전례는 한 마디로 하느님과의 우정어린 대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의 데레사 성녀는 기도란 하느님과의 친밀한 우정의 대화라고 말씀하시면서 나를 사랑하시는 하느님과의 대화임을 거듭 강조하셨습니다.
9) 복음적 자아 포기(부정)
사랑 때문에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고 염려하고 위한다면 우리는 진정한 사랑을 할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그 어떤 십자가도 스스로 지려는 마음이 생겨나지 않을 것이고 마침내 다른 사람들에게 많은 십자가를 짊어지게 만들고 나 자신 또한 내 이웃에게 하나의 큰 십자가가 될 것입니다.
에디트슈타인은 '십자가의 학문'이라는 책을 통하여 십자가의 학문은 곧 사랑의 학문이며 사랑의 절정임을 다시 한번 더 강조하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성 요한도 그리스도를 따름은 바로 십자가를 지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기 예수의 데레사 성녀는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사랑이라는 장미꽃으로 십자가를 꾸미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10) 성모 신심
가르멜에서 성모님을 바라 볼 때는 성모님은 언제나 기도하시는 성모님의 모습입니다. 복음에서 우리는 언제나 기도하시는 성모님을 만나 볼 수가 있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우리에게 기도에 대하여 모범을 보여주시고 가르쳐 주십니다.
성모영보 때에; 성모님은 하느님의 뜻이 찾고 하느님의 뜻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를 관상하고 그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뜻을 발견하셨을 때에 당신 자신을 그 하느님의 뜻에 온전히 내어맡기셨습니다.
베틀레험과 성전에서; 복음에 보면 성모님께서도 두 번이나 이해하지 못하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천사들이 목자들에게 나타나 구세주의 탄생을 이야기 할 때에도, 또 아기 예수를 성전에 봉헌할 때에도 성모님은 시몬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 모든 것을 마음에 간직하셨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성모님께서는 빛이 비쳐올 때까지 기다리셨습니다. 즉, 기도와 관상 안에서 항구하셨던 것입니다.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성모님께서 보여주시는 모습은 우리에게 기도란 다른 이들의 영적인 필요성에 대해서만 기도드리는 것이 아니라 물질적인 필요성에 대해서도 기도해야 함을 강력히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미 주님의 기도를 통해서도 알아보았지만, 우리는 하느님의 뜻만이 아니라 또한 일용할 양식을 청해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십자가 아래에서; 고통 중에도 항구하게 기도하시는 성모님의 모습은 우리에게 시시때때로 주어지는 고통과 십자가를 어떤 방법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지 잘 보여줍니다.
다락방에서 (사도 1,14); 성모님께서는 침묵과 고독 중에서 기도하셨을 뿐만 아니라 이렇게 사도들과 함께 기도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이제 당신 이름으로 둘 이상 모인 곳에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모님께서는 신앙인들과 함께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성모찬송 (Magnificat); 이 세상과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고 이루신 구원업적에 대해 하느님께 드리는 찬미의 기도입니다. 가르멜적 기도란 이렇게 청원기도 뿐만 아니라 우리 일상 생활 안에서 발견하는 하느님의 구원 업적과 손길을 느끼면서 주님께 찬미드리는 것입니다.
가르멜 영성에 있어 성모신심이란 바로 성모님께서 우리 기도의 모범이시며, 우리는 성모님의 이런 모습을 닮으려고 노력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결론
이 세상에는 수많은 음식들이 있습니다. 한식, 중식, 일식, 프랑스 음식, 이태리 음식, 인도음식, 베트남 음식등 각 나라마다 고유한 음식들이 있습니다. 같은 쇠고기를 재료로 쓰지만 나라에 따라 삶기도 하고, 굽기도 하며, 끓이기도 하고 생으로 먹을 뿐만 아니라, 첨가하는 조미료도 각양각색이어서 그 맛도 가지가지인 것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교 영성의 10가지 기본 재료를 가지고 요리함에 있어서는 다양하게 할 수가 있습니다. 프란치스꼬 영성이나 예수회 그리고 가르멜은 같은 재료를 고유한 조리법을 가지고 요리를 하여 독특한 맛을 내는 것이고, 신앙인들은 자기 취향과 입맛에 맞는 요리를 선택하게 되는데 우리는 가르멜이란 음식점과 요리를 선택한 것입니다.
우리는 가르멜이란 영성의 맛과 영양가를 살리면서 증거하고 팔아야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바로 그리스도교적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하느님을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 같이 사랑하는 것, 이것이 그리스도교 영성과 가르멜 영성의 핵심입니다.
지금까지 많은 것을 분류하고 이야기했지만, 궁극적으로는 이 두 계명을 어떻게 살고 실천할 것인지 풀어 설명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어떤 젊은이가 유다교의 한 랍비를 찾아가 말하기를 '저에게 율법에 대하여 가르쳐 주십시오. 그러나 3분 안에 요약하여 간단하게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하고 가르침을 청하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그 랍비는 크게 화를 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평생동안 율법을 공부하고 연구하였지만 아직도 율법을 다 알지 못하는 데 이렇게 그런 질문을 하느냐?"
그 젊은이는 다른 랍비를 찾아가 똑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그러자 그 랍비는 웃으면서 말하기를, '3분도 너무 길다. 단 한마디로도 충분하다. 남이 너에게 하는 것들 중 싫은 것을 너도 남에게 행하지 말라'.
수많은 율법을 이렇게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면, 영성도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의 계명!
십자가의 성 요한은 이 생애의 저녁에 우리는 사랑에 대해 심판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영성이란 기도하고 관상해야만 영성생활을 하는 것도 아니고 성당에서만 영성생활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일상생활 안에서 실천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고 싶을 때 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은 우리의 의무이며 책임입니다.
우리가 영성생활을 함으로써 실재에 대한 관상적 시각을 가지게 되며, 모든 상황과 사건 안에서 하느님의 모습을, 그 현존을 발견해 나가며, 모든 이들 안에서 그리스도를 관상할 수 있게 됩니다.
영성이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맡겨 주신 교회의 선익을 위한 우리의 사명을 의미합니다.
최근 20년 동안 가르멜에는 수많은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1982년에 예수의 데레사 성녀 서거 400주년 기념
1991년에 십자가의 성 요한 서거 400주년 기념
1997년에 아기 예수의 데레사 성녀 서거 100주년 기념 및 교회학자 선포
1998년에 에디트슈타인 시성식 등.
그 외 많은 시성식과 시복식이 있었습니다.
이는 교회가 가르멜의 영성 즉 교회 안에의 가르멜의 역할을 인정하는 것이며 또한 가르멜 영성이 교회에 유익하며 고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가르멜 영성을 사랑하고 실천하고 증거함으로써, 하느님의 부르심에, 하느님의 뜻에 응답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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