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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3-04-07 00:00
[복음]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 없는 사람이…
 글쓴이 : 가로등
조회 : 8,142  
<<사순 제5주간 월요일>>

간음죄라고 하는 것은 당시 유대 율법상 ‘우상 숭배, 살인’과 함께 3대 범죄 중이 하나로서 그러한 죄를 범했을 때는 즉시 죽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어떠한 죄를 졌을 때 사형에 처하느냐, 마느냐 하는 것은 죄의 성질에 따라 얼마간의 차이는 있었으나 율법은 간음죄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사형을 단언하고 있었습니다.
레위기 20장 10절에서는 “이웃집 아내와 간통한 사람이 있으면, 그 간통한 남자와 여자는 반드시 함께 사형을 당해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고 신명기 22장 24절에서는 “둘 다 그 성읍 성문 있는 데로 끌어내다가 돌로 쳐 죽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복음에서 보이는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의 견해는 법적으로 볼 때 전적으로 옳았던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은 예수님 앞에 왜 이러한 문제를 갖고 왔을까요?
여기에는 예수님이 사람들 앞에서 그 여자를 돌로 쳐 죽이는 형에 해당된다고 결정을 내리신다면 예수님은 사람들 앞에서 ‘이웃을 사랑하여 불쌍히 여기는 분이시다’라는 명성을 영구히 상실하게 되고 ‘죄인들의 벗’이라는 말은 이제 끝장이 날 것이라는 속셈이 들어 있었습니다.
또한 사형 선고를 한다면 즉시 로마법과 충돌이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배국인 로마법에는 일반인은 누구도 사형선고를 한다든지 집행하는 권한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율법학자들은 이런 답변을 받아내어 예수님을 로마법의 범죄자로 만들 속셈이었습니다.

그리고 만일 예수님께서 그 여자를 용서해야 한다는 결정을 내리신다면 예수님은 모세의 율법을 깨뜨리는 것을 가르칠 뿐 아니라 간음죄를 조장하는 자라고 몰아칠 판이었습니다.
이런 것들이 그들이 예수님을 빠뜨리고자 했던 함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지혜로이 그들의 간교함이 그들 자신에게로 되돌아가는 방법을 쓰심으로써 그들을 물리치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먼저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무엇인가 땅 위에 쓰셨다고 했는데 왜, 도 무엇을 쓰셨겠습니까?
성급하게 판단을 내리지 않으시고 대책을 하느님께 물으셨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예수님께서 즉시 대답하지 않으심으로써 율법학자, 바리사이파 사람들 자신이 더 심하게 그들의 요구를 되풀이함으로써 자신들의 잔인성을 더 깊이 스스로 생각하게끔 시간을 주셨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아마도 그들의 그 불유쾌하고 호색적인 표정과 그 쌀쌀하고 냉혹한 표정과는 반대로 수치심에 차 있는 여인의 표정이 엇갈리는 순간에 예수님은 눈을 감아 버리시고자 했는지도 모릅니다.
가장 뜻 깊은 해석은 예수님은 스스로 몸을 굽히시고 손가락으로 땅 위에 고발하는 그들의 죄악을 쓰셨다고 봅니다.
즉 그 여자를 비난하고 있는 자들의 지난날의 죄상을 쓰심으로써, 그들 자신의 죄악들을 기록함으로써 그들이 자각하게 하셨다고 봅니다.

아무튼 율법학자와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계속해서 답변을 요구했고 마침내 그 답변을 듣습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 없는 사람이 먼저 저 여자를 돌로 쳐라!” 다시 말해서 “여자를 돌로 쳐도 상관없다! 그러나 너희들 자신이 전에 그와 같은 짓을 하고자 했던 일이 한 번도 없었다고 하는 사람의 경우에 한한다”라는 말씀이셨습니다.
그러자 한순간 침묵이 흘렀습니다.
얼마 안 되어 고발자들은 서서히 그 자리를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과 그 여자만 남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에 대하여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말하기를 “거기에는 감당하기 어려운 고민, 깊은 동정심이 남았던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여인에게, “너의 죄를 묻던 사람은 아무도 없느냐?”하고 물으셨습니다.
“아무도 없습니다.”라고 그 여인이 대답하자 예수님은 “나도 네 죄를 묻지 않겠다. 어서 돌아가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 짓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오늘 복음 말씀 앞에서 무엇을 생각해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과연 이웃의 잘못을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과연 우리는 남을 얼마나 성급히 판단하고 있습니까?

이제 끝으로 예수님의 신조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과오가 없는 자만이 남의 비판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태오 7장 1절의 “남을 판단하지 말아라. 그러면 너희도 판단 받지 않을 것이다”하는 내용과 7장 3-5절의 “어찌하여 너는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제 눈 속에 들어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하는 말씀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2) 과오를 범한 자에게 먼저 동정을 베풀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도 “하느님의 은혜가 아니었다면 그곳에 잡혀갈 자 나였다. 그 죄에 떨어질 자 나였다.”라고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러한 그를 어떻게 도와줄까 하고 그 길을 찾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3) 이 말씀은 제2의 기회를 주신다는 것이며 이에는 예수님의 동정심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은 냉대와 조소와 심판의 자세를 보였지만).
또한 새로운 삶에로의 부름이기도 합니다.
즉 “괜찮다! 염려할 것 없다. 그대로 살아가라.”가 아니고, “그릇되었으니, 가서 바르게 살아라.”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은 인간을 믿어 주심을 알 수 있습니다.
“너는 아무리 해도 구원받을 수 없는 존재가 아니라 다시 범죄만 않는다면…”하시며 사람을 믿고 신뢰해 주시는 하느님의 마음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끝으로 경고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느님 앞에 설 때까지 우리는 모두 미완성이라는 것, 그러기에 그때까지 모두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화후광 신부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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