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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3-04-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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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내 말을 잘 지키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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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회 : 11,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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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5주간 목요일>>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주장하시는 것은 당신의 말을 지키는 사람은 누구라도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이 말씀은 듣고 있던 유대인들이 놀라지 않을 수 없을 만큼 대단히 충격적이었으므로 그래서 그들에게는 정신 나간 어이없는 말로 들려졌습니다.
사실상 현실로 보아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다 나이가 차면 죽게 되고 또 불의의 사고나 병으로 죽게 되는데…
그러니 그 말은 상식과 현실을 기만하는 사기꾼의 말로 들려졌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말을 들은 유대인들은 예수님께 “이제 우리는 당신이 정녕 마귀 들린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소. 아브라함도 죽고 예언자들도 죽었는데 당신은 ‘내 말을 잘 지키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는다’고 하니 그래 당신이 이미 죽은 우리 조상 아브라함보다 더 훌륭하다는 말이오?
예언자들도 죽었는데 당신은 도대체 누구란 말이오?”하고 대들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예수님이 생각하고 말씀하시는 ‘죽음’은 육체적인 생명이 육체적인 사망으로 당하는 죽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말은 듣는 상대가 누구인가에 따라 같은 말이라도 다르게 이해되고 다르게 사용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상대하는 사람들은 아브라함과 예언자들을 자유롭게 들먹거릴 수 있는 야훼 하느님을 아는 유대인들이었습니다.
그러기에 문제는 사람이 영원히 죽느냐, 영원히 죽지 않느냐보다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하실 수 있는 분이 누구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유대인들은 예수님께 “당신은 누구란 말이오? 당신은 누구이길래 ‘내 말을 잘 지키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라는 말을 자신 있게 하는 것이오? 당신에게 그렇게 해줄 능력이 있다는 말이오?”하고 대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러한 질문에 대해서 “너희가 자기 하느님이라고 하는 (분이) 나의 아버지이시다”라고 당신의 신분을 분명히 밝히십니다.
즉 예수님은 그들이 알고 있는 하느님은 당신의 아버지이시기에 당신의 말씀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죄악의 벌인 삶의 종말로서 그 누구도 해결 못하는 죽음을 해결해 주실 수 있고 또 그렇게 해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 당신의 말씀을 받아들여 지켜 나가는 사람은 하느님과의 관계에 들어가는 것이기에 거기에는 시간과 영원의 구별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과의 관계에 들어간 사람은 다른 사람들처럼 죽음으로써 삶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현세의 삶에서 육신의 죽음의 문을 지나 하느님의 생명인 새로운 삶으로 옮겨간다는 것입니다.
사실상 이러한 문제는 인간의 입장에서 볼 때 현실로 보여 지는 것이 아니고 느껴지는 것도 아니므로 하느님께서 당신 말씀대로 약속하신 자에게 이루어 주신다는 신앙이, 믿음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하느님께서 그렇게 따르는 이들에게 베풀어주시는 은혜이지 자격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여기에서 중요한 선언을 하십니다.
‘참된 영광’은 그들이 하느님이라고 알고 부르고 있는 당신 아버지께로부터 오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참된 영광’이란 무엇이겠습니까?
죽음은 죄의 벌이요 죄로 인한 수치의 결과입니다.
그러나 그 반대로 영광이라는 것은 참다운 영원한 삶입니다.
현세적으로 볼 때 어떤 영광이라는 것은 참다운 영원한 삶입니다.
현세적으로 볼 때 어떤 영광이라도 죽음 앞에서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영광이라는 것은 들어 높임을 받는 것으로서 자기가 자신을 칭찬하는 자화자찬도 있겠고 다른 이들로부터 어떤 영예를 받을 수도 있는데 그렇게 되고자 노력만 한다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닙니다.
또 이 세상은 출세하고 공적을 세운 사람에게 영광된 예우를 베풀기도 합니다.
그러나 ‘참된 영광’은 하느님만이 내려주실 수 있는 것이요, 영원한 삶으로 갚아 주시는 영광만이 참다운 것이 되는 것입니다.
현세의 시간이 내리는 판결은 영원히 내리는 판결과는 다릅니다.
바로 그러한 참된 영광, 영원한 삶을 주시는 분이 그분의 아버지이신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당신 신분을 밝히시면서 당신에게 있는 고유한, 즉 누구도 할 수 없는 두 가지 점을 밝혀 주십니다.
그러한 아버지를 당신만이 알고 계시다는 점과 알고 계신 그분의 말씀을 당신은 지키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기에 당신도 당신의 말씀을 지키는 사람을 당신의 생명에 참여시키신다는 것입니다.
지금껏 어느 누구도 예수님처럼 하느님을 안 자가 없으며 앞으로도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을 ‘안다’는 것은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들이며 결국 아버지와 아들은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아들로서 예수님은 아버지에게 보고 들은 바를 그대로 우리에게 전해 주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하느님이 어떠한 분이신지를 알 수 있을 따름인 것입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다시 한번 놀라운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은 내 날을 보리라는 희망에 차 있었고 과연 그날을 보고 기뻐하였다”는 말씀이 그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이 생존해 있었을 때 장차 이 세상의 구원자 메시아에 대한 예시를 보았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결국 예수님의 말씀은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은혜로 그 후손 중에 장차 메시아가 나리라는 예견을 했는데 너희는 사실을 믿고 있다. 그런데 그 아브라함이 본 예시 가운데 보고 안 그 말이 바로 나의 날이며 그 메시아가 바로 ‘나’인 것이다”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에 대해서 그러한 신앙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고 “당신이 아직 쉰 살도 못 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단 말이오?”하고 되물었습니다.
여기서 50세라고 하는 것에는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50세라고 하는 것은 민수기 4장 3절에서 볼 수 있듯이 그들의 직분으로부터 퇴위하는 나이였습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너는 아직 젊고 아직 장년기의 나이로서 자기 직분을 그만두고 쉴 나이도 아직 되지 못한 주제에 어찌하여 아브라함을 보았다고 할 수 있느냐? 미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냐?”하고 따지고 들은 것입니다.
여기에서 예수님께서는 참으로 놀라운 말씀을 하십니다.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나는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다.”
예수님은 여기서 당신은 시간에 구애됨이 없이 존재하셨다는 신적 본성을 밝히신 것입니다.
분명히 성서에서도 “베들레헴에서 나셨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여기서 하신 “나는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다”는 말씀은 육신을 취하신 예수님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 안에 살아 계신 하느님의 존재를 밝히시는 것입니다.
시간을 초월해서 존재하시며 “언제나 나는 살아 있다”고 말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한 분 계십니다.
그분은 생명의 원천이시며 영원하신 하느님뿐이십니다.
그러기에 여기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예수님 안에 있는 생명은 하느님의 생명이며 영원하신 하느님이 인간의 시간 안에 들어와 계시다는 당신 자신의 신분에 대한 계시인 것입니다.
그분은 단지 이천 년 전에 이 세상에서 살다가 죽어간 한 인간 예수이신 것만이 아니라 사람이시오 하느님이신 예수님, 시간에 제약받지 않고 영원히 계시며 언제나 우리에게 오시고 언제나 우리와 같이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를 죄로 인한 죽음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시고 우리를 당신의 영원한 영광의 나라에 초대하시고 당신 말씀을 받아들여 믿음으로 지켜 나가는 이들을 영원한 삶으로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한 하느님을 우리도 알게 하심을 하느님께 감사드립시다.
언제나 살아 계시며 우리를 알고 계시는 하느님께서 당신을 믿고 따르고자 하는 우리들에게 도움이 되어 주시고 믿음의 부족으로 당신의 말씀을 온전히 따르지 못하는 우리들에게 힘이 되어 주시기를 청하면서….
-대화후광 신부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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