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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3-04-19 00:00
 조회 : 5,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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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을 거슬러 범한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인간은 하느님과의 사랑의 관계가 깨져버렸습니다.
이 세상에 아무 것도 모든 인간의 죄를 보상할 만한 가치를 가진 존재는 없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사랑의 십자가로서 인간과 하느님 사이에 끊어진 사랑을 다시 맺어 놓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성부의 공의로우신 뜻을 채우시고자 인류의 죄악을 보상하기 위하여 당신의 몸을 속죄의 희생 제물로 십자가에서 성부께 바치셨습니다.
십자가는 한편으로는 인류의 죄악을 속죄하기 위한 정의의 제단이요, 한편으로는 하느님의 자비를 드러내신 사랑의 표상입니다.
십자가의 죽음 없이는 인간은 구원을 받지 못하고, 하느님의 생명을 회복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십자가의 희생적 사랑이 없었던들 인간은 사랑의 공감이 스스로 일어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죽음도 불사하신 십자가의 전인적 사랑이 있기에,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에 매혹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랑은 강요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랑은 스스로 우러나서 주고 싶은 대상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기에는 너무나도 부당한 죄인들이지만, 그리스도는 우리를 당신 사랑의 연인으로 삼으시고, 우리의 결함과 과오를 따지지 않으시고, 우리를 당신의 친구로 삼으셨습니다.
노동자, 어부, 창녀, 세리, 가난한 사람, 병자, 죄인들을 사랑하신 것입니다.
그들이 오히려 교만한 부자나 상류층의 인사들보다 먼저 천국에 들어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이러한 사랑의 매력과 애정의 방법에 목석이 아닌 이상 우리는 벅차오르는 감동과 함께 그분에게 이끌리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진정한 사랑만이 사랑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상대방을 감동시키고 행복하게 해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너희가 나를 택하지 않고, 내가 너희를 택했노라”고 하신 말씀의 참뜻을 우리는 알아들을 수가 있습니다.
사랑을 받을 만한 자격이 없는 우리들을 택하시어 당신의 아가페적 사랑, 즉 희생적이고 헌신적인 사랑으로 흠뻑 취하게 해주심으로써 우리들로부터 사랑의 반사작용이 스스로 일어나게 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사랑은 사랑을 낳는 법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얼마만큼 사랑하고 있는가!
자기가 주님을 사랑하는 그 정도에 따라 그는 주님을 마음의 주인으로 모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주님이 그 생활의 중심이 되시는 것입니다.
주님에 대한 사랑이 깊을수록 주님께 신뢰하고, 온전히 자기 자신을 맡기게 되는 것입니다.
나의 모든 것은 주님의 것이고, 생명도 죽음까지고 성공도 실패도 주님께 맡겨 드리고 주님과 함께 사는 생활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사도 바오로의 말씀과 같이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내 안에 산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생활이 기쁘고 행복하고, 삶의 힘이 든든하게 솟아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인생을 보람 있게 하는 것도 사랑이요, 인생을 꽃피우게 하는 것도 사랑입니다.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만이 사랑의 기쁨을 압니다.
이러한 사랑의 기쁨을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주셨고 또한 가르쳐 주셨습니다.
남을 얼마만큼 사랑하는가에 따라 우리의 신앙은 그만큼 진실 되고 그만큼 보람찰 것입니다.
가진 것이 없어서 별로 이웃과 나눌 수 없는 가난한 생활 속에서도 사랑만은 주님 안에서 가장 풍족하게 함께 나눌 수 있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생활인 것입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은 고통과 희생이 다르더라도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싫어하는 사람을 위하여 십자가를 지면서까지 사랑하기란 매우 어려운 것입니다.
자기가 좋아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더 큰 십자가가 요구되는 것입니다.
사랑은 자기가 좋을 대로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좋을 대로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그러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적 사랑의 모범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십자가 없는 참사랑은 없습니다.
희생 없는 고귀한 사랑은 없습니다.
그러기에 십자가는 참사랑의 저울추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이 크면 클수록, 애정이 짙으면 짙을수록 사랑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무거운 십자가도 피하지 않고 기꺼이 짊어질 수 있는 것이 참사랑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예수임의 고통과 죽음의 희생까지도 감수하신 사랑이 사랑 그 자체로 끝나버리는 것이라면 그러한 사랑의 예는 얼마든지 들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위하여 자기의 소중한 목숨까지 희생시킨 위대한 사람들이 역사상에는 얼마나 많습니까?
이들은 한결같이 고통스러운 죽음을 당했고, 사랑과 충절을 위해서 죽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죽음이 이들의 죽음과 다른 것은 무엇일까요?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이 다른 것은 사랑과 죽음으로만 그쳐버리지 않고 부활의 영광과 영원한 생명에로의 승리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그것을 위하여 고난을 받으셨고 고난을 받으셨기에 사랑을 증거 하셨고, 죽으셨기에 약속하신 대로 부활을 성취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부활이 있기 때문에 그분을 안심하고 구세주로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죽음에 이르는 모진 고난이 있었기에 부활의 영광이 그토록 벅찬 기쁨이요, 값진 행복이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예수와 부활의 그리스도를 믿고 사랑하는 사람만이 참다운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부활의 믿음과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가진 사람답게, 어떠한 처지에서도 그리스도인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당신의 목숨을 내놓으셨습니다.
이것으로 우리가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요한 1서 3,16)
가장 소중한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생명입니다.
그러나 그 소중한 생명을 사랑을 위해서 버릴 수 있다면 그 사랑은 얼마나 고귀한 사랑이겠습니까?
그리스도는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를 위하여 그 소중한 생명까지고 내어 주셨습니다.
이것으로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의 사랑이 얼마나 귀하고 깊은 사랑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오늘밤 자기를 태워 밝은 빛을 비추는 이 부활초는 바로 자신의 목숨을 던져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그리스도를 뜻합니다.
부활초처럼 자기 자신을 불사르지 않고서는 오늘 이 사회의 어두움을 조금도 밝게 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형제들을 위해서 우리의 목숨을 내놓아야 합니다.
누구든지 세상의 제물을 가지고 있으면서 자기의 형제가 궁핍한 것을 보고도 마음의 문을 닫고 그를 동정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에게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고 하겠습니까? 우리는 말로나 혀끝으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진실하게 사랑합시다.”(요한1서 3,16-18)
사랑만이 그리스도를 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그리스도는 천국을 선포하려고 오셨습니다.
천국의 근본은 사랑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그 나라가 임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하고 몇 번이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얼마나 그리스도의 지상 왕국을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가를 생각해 봅시다.
우리는 지상의 그리스도 왕국을 위하여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그리스도 왕국을 위하여 아무 것도 않는 사람은 그리스도 왕국 시민의 자격이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부활하신 영광스러운 모습을 당신 자신이 모든 사람에게 보여주시려고 하시지 않고, 당신을 믿는 사람들의 기쁨에 찬 모습, 확신에 찬 생활, 사랑이 담긴 활동을 통해서 당신을 전달코자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우리를 보는 사람들이 공감을 할 수 있도록 살아가야 합니다.
사랑은 위장할 수 없는 것입니다.
진정한 사랑을 위해서 사는 사람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준다면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을 참되게 이해하고 공감을 갖게 될 것입니다.
-대화후광 신부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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