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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3-04-23 00:00
 조회 : 5,4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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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팔일 축제 내 수요일>>
오늘 복음은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향해 가는 두 사람에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나타나시는 아름다운 장면입니다.
엠마오로 가는 두 사람의 대화는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그들의 삶 전체가 달려 있었던 문제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야말로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실 분이라고 희망을 걸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이미 처형을 당하셨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분이 살아나셨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고 그들은 이런 저런 일들에 대해 대화를 나누며 걸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무엇을 알아들을 수 있습니까?
예수님에 대해서 알고자 할 때 예수님은 우리에게 다가오시고 우리와 함께 걸으시며 머무르시고 우리에게 빵을 떼어주심으로써 당신을 우리에게 드러내 주신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마음 뿐 아니라 실제 행동으로 다른 형제들과 예수님에 관한 말씀과 사정을 얼마나 나누려고 했고 또 알려고 노력했는지 생각해 봅시다.
우리가 그분에 대하여 알려고 할 때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당시 그 두 사람의 마음은 어떠했다고 생각합니까?
그들은 그들 자신의 입으로 “우리는 그분이야말로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실 분이라고 희망을 걸고 있었습니다.”라고 실토했듯이 기대했던 예수님이 처형됨으로써 그들은 희망을 잃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그러한 슬픈 말속에는 아쉬움과 어찌할 바를 모르는 실망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렇게 되었을 때에 예수님께서 오셔서 그들을 깨우쳐 주시자 예수님께 대해서 현세적으로 걸었던 희망과 기대는 이제 새로운 삶의 의미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현세적인 어떤 실의와 실망에 젖어 있을 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면 예수님께서 우리의 삶의 의미를 바꿔 주시지 않겠습니까?
다음으로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과 대화를 가지신 예수님의 태도에서 볼 수 있듯이 예수님은 그들에게 강요하지 않으시고 그들이 들어오시라고, “우리와 함께 묵어 가십시다”라고 불러들일 때까지 기다리십니다.
하느님은 세상 다른 어느 피조물에게도 주시지 않은 가장 위대하고도 또 가장 위험한 선물을 주셨으니 그것은 곧 ‘자유 의지’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도 그리스도를 우리 마음속에 모셔 들이기 위해서 그 자유 의지를 사용할 수도 있고 예수님으로 하여금 내 자신을 그냥 지나쳐 가시게 하는 데 쓸 수도 있습니다.
우리 자신의 판단을 기다리시며 강요하시지 않으시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모셔 들이고서도 예수님을 알아볼 수 없었다고 알려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함께 식탁에 앉아 빵을 들어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나누어 주셨다.
그제야 그들은 눈이 열려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게 되었다는 것이 그들의 고백입니다.
미사 때마다 주님의 빵을 받는다는 것, 그것은 “주님과의 일치”이며 따라서 우리는 다시 한 번 그 순간이 얼마나 신비스러운 순간인가를 묵상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은 이 두 사람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난 기쁨을 체험하게 되었을 때 그 기쁨을 다른 친구들과 함께 나누기 위해서 얼마나 서둘렀는가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즉 예루살렘까지 ‘30리 길을’ 서둘러 되돌아갔던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주님에 대한 체험을 이웃과 나눌 때 완전히 자기의 체험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사도들 중에서 ‘베드로에게 먼저 예수님께서 나타나셨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즉 예수님께서 자기를 세 번이나 부인한 그에게 그러나 눈물로써 회심한 그에게 맨 먼저 나타내 보여주셨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이야기입니까?
예수님께서는 회개하는 죄인에게 자존심을 이토록 회복시켜 주십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마음이며 그분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대화후광 신부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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