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터 > 나눔방

 
작성일 : 03-08-18 00:00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글쓴이 : 가로등
조회 : 5,213  
<<연중 제20주간 월요일(마태 19,16-22)>>

오늘 복음에서 돈 많은 젊은이는 예수님께 나아가 무엇을 청했습니까?
그는 ‘영생’을 청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알고 있는 영원한 삶이란 자신의 만족과 함께 하느님을 함께 누리고자 하는 평안이었습니다.
즉 “제가 무슨 선한 일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겠습니까?” 하는 질문은 마치 숫자 계산이나 하듯이 율법을 지킴으로써 하느님 앞에 신망을 얻어 그 대가로 영원한 삶을 받을 것이라는 생각이 잠재되어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는 율법을 잘 지킴으로써, 하느님 앞에 선행을 쌓음으로써 그 대가로 영원한 삶을 받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그 말을 들을 때 그것이 무엇이 나쁘냐 하면서 믿음의 생활은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할지 모릅니다.
사실 우리가 계명을 지킨다든지 선행을 하는 것도 그 부자 청년만큼이나 하고 있는지도 문제일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그렇게 해가지고는 그리스도를 따른다고 할 수 없다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그 젊은이에게 명하신 바는, “너의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라. … 내가 시키는 대로 하고 나서 나를 따라오너라.”였습니다.
이 말씀을 글자 그대로 따를 때 진실로 복음의 말씀대로 사는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소유물이라 해도 자신의 안락과 평안을 위해서 쓸 때 그것은 이기주의에 떨어지고 맙니다.
그렇게 재물을 사용할 때는 자신이 그 재물에 매이게 되지만, 만일 자신의 재물을 남을 돕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고 사용한다면 그 재물은 그의 면류관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재산이 많은 그 젊은이는 예수님 앞에서 그렇게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젊은이는 심한 괴로움을 안고 예수님 앞에서 돌아서야만 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 젊은이의 비극은 그 자신의 재물을 가지고 이웃에게 봉사하기보다는, 사람을 섬기기보다는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재물을 더 사랑했던 데에 있습니다.
사람보다 재물을 더 사랑하거나 그것을 지키기에 마음을 쓴다면, 의례히 예수님께 등을 보이지 않을 수 없으며, 재물을 마음껏 누리면서 하느님을 동시에 섬긴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무엇인가 둘 중에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데, 결국 재물을 포기할 수 없을 때 오늘 복음의 젊은이처럼 괴로움을 가지고 예수님을 떠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오늘 복음의 말씀입니다.
 -대화후광 신부님 글-   


 
   
 






본당 알림터 나눔터 그림터 믿음터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양현로 170 (이매동 106-1 번지)
Tel: 031-703-4437  Fax: 031-707-6950  Email: bdpaul@casuwon.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