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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0-08-05 08:35
애경 마리아의 '4살배기 준희의 가정체험' 후기
 글쓴이 : 애경 마리…
조회 : 13,711  
   준희.hwp (62.0K) [2] DATE : 2010-08-05 08:35:22

준희와 함께한 4박5일 전혀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준희와 함께한 후기 한글문서는 상단에 준희.hwp (62.0 KB) 로 첨부합니다.
해성보육원 원장수녀님께서 가정체험을 하고온 준희가 밝은 표정으로 잘 지내고 있다고 합니다.

지금부터 만 8년 전. 가족들의 동의 없이 둘째 형님의 셋째인 5세 된 여아를 데려와서 10여일을 함께 지냈다. 갑작스런 사고로 인하여 중환자실에 입원중인 아주버님 때문에 내린 결정이었다. 당시 내 아이는 딸(안나) 10세, 아들(바오로) 9세였다. 틈만 나면 밖으로 뛰쳐나가서 돌아다니는 조카였기에 안나와 바오로는 쉴 틈이 없었다. 조카는 집 안에서는 내 품에서 떨어지지 않았고 바오로와 엄청나게 싸웠다. 이해심과 배려가 남달랐던 안나는 힘든 기색도 없어 대견하다 싶었는데 잘 때 보니 숨죽여 울고 있었다. 남편이 퇴근하면 상황은 폭풍 전야. 현관문이 열림과 동시에 조카는 현관문을 빤히 쳐다보며 안방 문기둥을 잡고 악을 쓰면서 울었다. 그래서 일하고 들어온 남편은 더 힘들어했다. 어른 남자에 대한 상처가 있었던 듯싶다. 후에 형님의 얘기를 들어보니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었다. 사고 당일 날, 남편은 회식 모임이 있어서 술 한 잔 하고 귀가하던 늦은 시간에 연락을 받고 부랴부랴 달려가서 사건수습을 해야 했었다. 그런데 의료 파업 때문에 수원에 있는 병원에서는 입원이 안 되었고 분당 차병원에 간신히 입원을 시킬 수 있었다. 정해진 면회시간(중환자실에 입원 중인 아주버님을 3번 면회함)과 업무로 인하여 지칠 대로 지쳐 녹초가 된 남편의 몸은 집에서도 편히 쉬지 못하였다. 지금은 기일이 되면 우리가 미사를 드려드린다. 형님은 무교였었고(이제는 개신교 신자가 되었지만)아주버님은 세례를 받은 상태였으므로.

집으로 데려다 준 조카를 2달 후에나 보았는데 아는 체도 안하더라. 아마도 언니 오빠 엄마와 떨어 질까봐 두려웠었나 보다. 한동안은 고민에 빠졌었다. ‘아주버님이 돌아가시면 세 조카는 어찌해야하나’하고. 한 집에서 돌보기엔 너무 벅차고 떨어뜨려놓기엔 안되겠고. 다행히 조카들은 지금 외할머니와 엄마의 품안에서 잘 자라고 있다.

보육원 아이들의 가정체험을 신청하려고 하니 세 조카들의 얼굴부터 떠올랐다. 8년 전의 힘든 기억뿐만 아니라 아빠 없이 자라고 있는 조카들한테 미안함이 앞섰다. ‘이래도 되나...’ 가족들 특히 안나와 바오로에게 조심스럽게 얘기 했더니 안나는 본인이 고2이기 때문에 1~3세로 정해줬고 바오로는 누나만 괜찮다면 자기는 상관없다고 너무나 쉽게 동의해줬다. 엄청 고마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쉽게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16일 금요일. 인천 인하대하교 앞에 있는 해성 보육원에서 준희를 처음 보게 되었다. 그런데 마음이 상당히 불편하였다.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준희는 울면서 나를 째려보며 돌아앉는 것이었다. 가뜩이나 조카들 생각에 마음도 심란한데. 친해져야만 할 아이는 등 돌리고 다른 아이들은 달려드니. 걱정스런 원장수녀님의 눈초리를 받으며 나도 모르게 등을 내밀며 ‘어부바’했더니 준희가 잽싸게 나의 등에 매미처럼 매달렸다. 그때부터 나는 준희가 매미라는 것을 알아차려야 했다.

22일 목요일. 준희를 데리러 갔다. 나를 보자마자 팔을 벌려 나의 가슴에 폭 안겨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호기심이 많다는 원장수녀님의 말씀을 듣고 차를 타고 출발했다. 다른 아이들은 다 자는데 준희만 깨어있었다. 불안해서 안자는 것도 같고 밖의 경치가 궁금한 것 같기도 하고. 나는 밖의 경치를 보며 계속해서 설명을 해 주었다. 성당에 도착한 후 야탑 중앙 도서관에 애들을 데리러 가야 한다는 순주 데레사와 동행하기로 했다. 점심을 함께 먹고 도서관도 함께 가고. 2시간을 함께한 순주 데레사는 입을 딱 벌렸다. 나머지 시간들 걱정된다면서. “형님의 얇은 허리 더 가늘어 지겠네” 였다.

집에 와서도 한참을 못자다가 간신히 1시간 30분정도 재우고 저녁을 먹고 나왔다. 신호등 노래를 하면서 신호등 건너기를 3번 하고 아이스크림도 직접 사게도 하고 맛있게 먹이기도 하였다. 등에 업고 탄천에 내려가니 싫다고 한다. 어두운 것을 싫어해서 그런 것 같다. 준희는 무서움과 두려움과 공포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다른 아이들은 부모들과 할머니와 함께 신나게 놀고 있는데.

집에 와서 씻기고 컵으로 물 담아서 옮기기, 종이배 띄우기, 두 손으로 물 담고 손가락 벌려 흐르게 하기 등의 물놀이를 하게하고 재우려하니 침대 방에선 싫단다. 공간지각능력이 뛰어나서인지 보육원에서의 같은 상황을 만들어 줄 수밖에 없었다. 거실에 커튼을 내리고 이불깔고 그냥 눕는 것. 불안한 심리와 낯선 환경으로 인한 준희는 밤새도록 보채며 잠을 못 잤다. 한밤중 바오로의 샤워소리가 한 몫을 더했다.

23일 오전 6시. 남편과 안나 바오로(절대로 일어나지 못할 시간이지만 준희를 위해서 일어났다)와 준희(새벽5시에 벌떡 일어남)와 나는 치즈케익에(전날 23시경에 안나의 견진대모님이신 권마리아님이 애기가 왔다고 사오 심) 4개의 초를 꽂고 임시로 만든 준희의 생일(진짜는 12월 23일) 축하 파티를 하였다. 남편은 출근을 하고 안나는 학교 가고 바오로는 침대로 원상복귀다. 남편은 안아주고 싶은 준희를 무릎에 앉혀도 보았고, 출근길에는 팔에 안겨서 뽀뽀세례도 받았다. 무척이나 행복했겠지! 생일축하 덕분에.

참고로 준희는 어른 남자에게 비호감적이다. 4박5일 동안 본인이 필요할 때만 내가 있는 상태에서 몇 번 간 정도다. 젊은 남자에게는 더욱더 비호감적이다. 하루에 3번 안아주겠다던 바오로는 한 번도 안아줄 수가 없었다. 아마도 친부에게 큰 상처를 받았던 듯싶다. 그래도 바오로는 행복해했다. 현관문을 드나들 때 준희가 열심히 빠이 빠이를 해줬으므로. 겨울 방학때도 준희를 또 데려오란다.

전날 잠을 설친 준희가 10시가 되자 자려고 하였다가 누나 방에 가서 침대로 올라갔다. 갑자기 나에게 달려들어 뽀뽀세례를 해댔다. 어떤 심경의 변화가 일어났음에 틀림없다. 마음이 좀 편안해졌는지 10여분을 놀다가 거실로 나와서 등을 다독여주니 잠이 들었다. 편안하게.

1시간여 만에 잠이 깬 준희랑(호기심은 대단히 많고 먹는 것 과 자는 것엔 관심이 별로다) 간단한 점심을 먹고 어제밤에 했던 신호등 건너기를 하고, 탄천에서 오리 비둘기, 불어난 물 등을 보며 성당으로 향했다. 준희는 여러 색의 초 중 파란색을 골랐고 500원짜리 동전 2개를 통에 넣었다. 촛불을 켜서 함에 넣으니 잽싸게 후~불어서 꺼뜨렸다. 새벽에 했던 생일축하 촛불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이렇게 아이들의 기억력은 대단하다. 좋은 추억도 이러할진대 나쁜 기억은 더 깊게 더 오래 상처가 되어 뇌에 박힌다) 다시 촛불을 켜고 예수님을 안고 있는 성모님을 향하여 나는 준희를 꼭 끌어안고 준희만을 위해서 준희의 귀에 들리도록 기도했다. 성당에 올라가니 꽃꽂이를 하고 계서서 꽃꽂이를 보여주고 십자가를 보며 저것은 “예수님이야”하고 설명을 하려하니 기겁을 하였다. 어른 남자가 발가벗은 모습으로 축 늘어져 있는 모습이 준희의 눈에 굉장히 무서웠었나보다. 전날 신호등 앞에 있는 하나은행에 가서 설명을 해주고 손을 누르게 하니 아주 재밌어했기에 오늘은 농협에 가서 직접 돈이 나오게 해줬다. 은행의 역할도 설명해주고. 신호등을 건널 때 준희의 손과 내 손은 꼭 잡혀 있었고, 각각의 다른 두 손은 하늘을 향해 번쩍 들려있었다. 다 건넜을 무렵 셔틀버스 기사아저씨가 준희를 향해서 박수소리와 함께 넘버원을 하였다. 준희도 아저씨께 넘버원을 해줬다. 받은 만큼 즉각적으로 되돌려주는 준희. 자유를 누릴 권리와 호기심을 자극할 권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며칠 뒤면 다시 원상 복귀다.

마트에 가서 바구니에 먹고 싶은 것을 담으라고 하니 과자 2개, 바나나 한송이, 요구르트, 요플레 등을 가리킨다. 자장면 담당이던 아줌마는 봉을 잡으려다 놓쳤다. 준희는 자장면을 미니 컵으로 2개를 다 먹어놓고는 아줌마가 아무리 꼬드겨도 싫다고 고개만 흔들어서 결국은 못 샀다. 업고 걸리고 하여 탄천으로 다시 왔다. 건너올 때는 업어서왔지만 건너갈 때는 걸어서 가야만했다. 다리는 결코 무서운 것이 아님을 느끼게 해 주어야 했으므로. 다행히 지나가는 고딩 형아들의 도움으로 두 종류의 과자를 준희의 손에 쥐어주고 걸어서 건널 수 있었다. 다리 중간에서 잠시 정차하여 오리 무리들이 있는 것도 보고 과자도 먹고 요구르트를 마시는 호기도 부려보았다. 준희는 이제 다리에 대한 공포는 해소 되었으리라.

물가 옆에 있는 벤치에 준희랑 함께 앉아서 바나나도 먹고, 나비도 보고, 나비 노래도 하고, 찻길 위에 있는 차들과 오토바이, 공중화장실과 운동하는 사람들, 자전가 타는 사람들도 보게 해줬다. 그러고 나서는 업어서 집에 왔다. 어두웠던 간밤의 분위기와 틀려서인지 제법 적응을 잘했고 많은 사물들과 더불어 존재하는 평범한 꼬맹이 준희였다. 집에 와서 다시 물놀이. 샤워꼭지에서 나오는 물이 신기했는지 이리저리 여기저기 흔들어보고 난리다. 사건 수습을 하고 이매초등학교로 향했다. 야탑 중앙도서관과는 또 다른 분위기. 전날 옥수수, 가지, 고추, 오이, 수박, 참외 등 실물을 보여주고 커다란 수박하나 잘 익었나 통통통 단숨에 쪼개니 속이 보이네 하며 준희랑 함께 수박을 쪼개니 준희의 눈이 번쩍. 그래서인지 준희는 수박을 참 잘 먹었다. 학교 야외에 가지, 고추, 벼, 옥수수 등 여러 식물들이 있길래 식물들을 설명해주고 준희한테 물어보니 장난기가 발동했다. 모든 것을 가지란다. 실실 쪼개면서.

도서관에 들어가서 책을 가져오는데 내용엔 별로 관심이 없다. 책만 뺏다가 다시 꽂는 수준. 또래의 아이들은 책장을 넘기며 엄마가 읽어줄 때까지 보챈다. 바오로는 일주일 내내 ‘엄지공주’, ‘백설공주’였었다. 내가 지겨워서 다른 거 하면 난리였다. 준희는 호기심은 강한데 집중력이 떨어졌다. 그런데 아주 명석한 두뇌를 지닌 소유자다. 노래를 불러주면 내 입모양을 보며 가만히 듣고 있다가 다시 해 보란다. 그러고서는 내가 부르는 노래에 거의 정확하게 따라 부른다. 또한 생활 곳곳에서 느껴지게 행동한다. 이러한 사실을 안나도 인정하며 안타까워한다. 똑똑한 두뇌 잘 자라야지 안 그러면 큰 일 난다고.

낮에는 더워서 아이들이 없어서 밤에 놀이터에 갔다. 역시 나다. 전혀 어울리질 못한다. 매미상태로 그네를 타도, 시소를 타도, 미끄럼틀을 타도 싫단다. 준희는 늘어서 있는 차에 관심을 보이는 것과 ‘무궁화 꽃이 피웠습니다’를 하는 엄마와 아이들의 놀이를 가만히 지켜볼 뿐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전날 탄천에 내려갔을 때보다는 시간이 조금 더 길었다는 것이다. 무엇이 준희를 이렇게 만들었으며 과연 어떠한 일이 준희의 내면에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이 날 밤 준희는 푹 잤다. 그래야 6시간 정도지만.

24일 토요일. 남편의 치과 치료가 있는 날이라서 준희도 함께 갔다(준희의 치아는 관리가 아주 잘 되어있다고 하셨다). 사전에 의사선생님께 동의를 얻었음은 물론이다. 모든 것(정수기 물 받고 컵 꽂기 등)을 해 보는 데에 있어서 준희는 기본이 3번이다. 나의 설명 속에서 치과치료 하는 모습을 보고나온 준희는 미술 학원, 소아과, 계단 등에 관심을 보였다. 소아과실에 양해를 구하고 둘러보고 나서 “준희는 치과 의사 할꺼야? 소아과 의사 할꺼야?” 하고 물으니 두 말 없이 소아과 의사란다. 따뜻한 분위기와 아기가 엄마 품에 안겨 있는 그림을 한동안 주시하더니 꽤나 인상적이었나 보다. 차를 태워준 남편에 대한 생각이 조금씩 바뀌어가고 있는 것을 느낀다. 건물 구조가 어떻게 구성되어있나 둘러보기 위하여 치과문밖으로 나가니 준희도 쪼르르 따라 나가며 나한테 얼굴을 향하고 손가락은 남편을 가리킨다. 선뜻 다가가지는 못해도 아는 사람이라는 뜻일 것이다. 낯선 건물과 환경은 낮이라도 준희를 겁나게 만들었나보다. 매미 그 자세로 원상복귀다.

남편의 동료들 모임이 충청도 청양에서 1박 2일로 있었다. ‘낯선 환경에 왔는데 또다시 낯선 환경에 데려 가야 하나?’를 고민하다가 어차피 짚고 넘어가야 할 벽이라면 지금이 괜찮겠다 싶어 그냥 강행하기로 하여 청양으로 출발했다. 이제는 적응이 되고 안정이 되었는지 차에 탄 지 20여 분만에 ‘쿨쿨’이다. 이틀 전 상황과는 전혀 딴 판이다. 제법 안정된 모습이 느껴진다.

산 밑의 계곡과 큰 건물과 운동장은 준희에게 위기감을 준 것 같다. 본격적인 매미의 시작이다. 과자를 먹으며 어른 남자들의 족구 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공을 차 볼 생각을 안 한다. 같이 해보자고 하여도 싫단다. 이맘때쯤이면 아이들은 공이라면 환장을 하는데도 말이다.

탁구대, 당구대, 배드민턴, 책, 미니골프, 새장안의 새, 어항, 모형 김치와 야채 등 이 있는 건물에 들어서니 아이들이 탁구도하고 당구도하고 배드민턴등도 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 모든 모습들을 준희는 그저 말없이 바라만 볼 뿐이다. 내 몸에 꼭 안겨서.

나는 중3 여학생과 준희를 업고서 탁구를 하였다. 전혀 낯설지 않음을 준희에게 보여주고 싶어서였다. 배드민턴 채랑 공도 손에 쥐어주었다. 만져보고 느껴보라고. 한차례 아이들이 빠져나가자 준희가 내리더니 탁구를 하잖다. 준희의 기가 막힌 발상. 탁구라켓이 짧아서 공을 치기 불편하니까 배드민턴채로 탁구를 하더라. 난생처음 준희 덕분에 나도 배드민턴채로 잠시지만 탁구를 하였다.

준희의 제일 큰 관심은 당구였다. 몇 번 당구공을 만져보았지만 큰 애들로 인하여 제지를 당했었다. 당구대가 비워지자 큐대를 꺼내 달랜다. 구멍에 공을 쳐서 넣는다고 하였더니 공을 구멍 앞에 놓고 큐대로 톡 쳐서 넣더라. 아무리 어린 아이들일지라도 나름대로의 규칙과 생각이 있음을 어른들은 인지해야한다. 준희의 놀이를 지켜보면서 그러한 생각이 더욱 간절했다. 어른들의 틀에 박힌 사고가 아이들의 무한한 창조성을 지배하고 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식사를 끝내고 넓은 홀에서 가족들의 소개 및 조촐한 파티가 이어졌다. 준희는 들어가고픈 호기심은 있는데 선뜻 들어가지를 못한다. 중학교 누나나 형아 들, 유치원생, 초등학생들이 준희가 예쁘다고 놀아준다고 하여도 요지부동이다. 17개월 된 여아는 온 회장을 휘젖고 다니고 있었고 그 뒤를 아이들이 줄줄이 이어 그 아기를 잡으려고 하는 놀이에 ‘준희도 끼면 좋을 텐데’. 나의 생각뿐이었다. 한참이 지난 후에야 단 한 사람과 장난을 쳤는데 알고 보니 준희의 눈이 꽤나 높았다. 온 아이들 중 제일 늘씬하고 제일로 예쁜 여학생이었다. 물론 그 여학생이 준희를 먼저 꼬드겼다. ㅎㅎ

준희에게 자전거를 빌려서 태워주니 핸들 조작을 아주 잘 하였다. 자전거가 멍멍이 캐릭터였는데 멍멍이 입에 과자 봉지를 벌려서 과자를 먹으라고 하면서 준희 입에도 과자 하나를 쏘옥 넣는다. 움직이는 멍멍이는 쳐다만 봤지 만지지도 못하면서. 아무래도 살아있는 생물(준희에게 해를 가하고)과 죽어있는 생물(해를 가하지 않고)의 차이점을 아는 것 같다. 집에서도 안나한테 안약을 달래서 주었더니 잽싸게 뚜껑을 열어서 인형 눈에다 넣더란다. 맆크로스는 입술에 바르는 것이라고 하였더니 준희 입 인형 입에 수시로 발라놓고. 먹는 것에 관심 없는 준희는 그나마 인형으로 인하여 먹일 수가 있었다. “인형 한 입, 준희 한 입 쏘옥~쏙” 이렇게 하면 마구마구 입을 벌린다.

커다란 모닥불을 지펴놓고 캠프파이어를 하였다. 준희가 본 불 중에 제일 큰 불이었을 것이다. 불 가까이에 가서 불은 뜨겁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고 별자리가 설치되어 있는 옥상으로 향하니 싫단다. 어둠을 유독히 싫어하는 원생들의 특성 때문이리라. 여기까지 와서 그냥가면 섭하지. 남편의 도움을 받아서 간신히 갔다 왔다.

바오로의 호된 사춘기로 인하여 못 나갔다가 2년 만에 애를 안고 나타나니 다들 궁금해 한다. 너무 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예쁜 아기 키우는 재미에 푹 빠져서 안 나왔느냐 고.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 “그런데 하나도 안 닮았어요.” “아닌데, 남편 어릴 적 사진이랑 똑같은 되.” 몇몇은 끝까지 캐려고 덤비고 일부는 막둥이로 알고 있다. 준희는 타인들 앞에서는 절대로 “이모” “아저씨”로 (우리들의 호칭) 얘기하지 않았다. 주변인들이 “엄마 힘들어 내려와”라는 말에도 무반응 이었다. 잘 시간이 되어 팬션에 들어왔을 때에서야 “이모” “아저씨”라고 큰 소리로 불렀다. 아~이 무슨 운명이란 말인가? 다행히도 그 날 밤은 낯선 곳 이었어도 준희는 잠을 잘 잤다.

25일 일요일. 아침을 먹고 보니 원목 그네가 있다. 준희랑 나란히 그네에 앉고 남편은 밀어주고 하는 모습이 너무 예뻤나 보다. 꼬맹이들이 왔다가 함께 타자고 하여도 (그네가 제법 넓음) 싫단다. 차를 타고 200m정도 내려오니 염소랑 토끼랑 닭 등 몇 가지의 동물이 있길래 빗방울을 맞으면서도 잠시 머물렀다. 비가 안 왔으면 토끼를 준희 품에 안겨줬을 텐데.

돌아오는 길에 친정 부모님이 계신 시골에 경유하였다. 할머니, 할아버지라는 존재를 준희는 알고 있을까? 악수하자는 할아버지를 경계하더니 나중에서야 친숙해졌는지, 용돈(준희가 받아서는 곱게 접어 주머니에 재빨리 넣었다)의 위력인지 “사랑해요”와 악수까지 하더라. 부모님을 뵙기 전에 남편과 나는 준희를 옆집 애기로 입 맞췄다. 언어의 쓰임새나 명칭에 대해서 정확히 구분 할 줄 아는 준희를 누구냐고 물었을 때 보육원 아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이 애는 누구냐. 애 엄마는 젊겠네. 애는 하나냐?” 등등. 파리채로 열심히 파리를 잡고 과일을 먹으면서도 준희의 귀는 할머니와 나의 대화 내용이었다. 나는 할 수 없이 선의의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준희는 옆집 애기이고 당연히 하나고 엄마는 젊겠지! 여행중이라서 맡겼는데 내일이면 간다.”고 자신만만하게 말을 했다. 이어지는 준희의 즉각적인 반응은 “이모”였다. 아뿔사! 세상에 이런 일이. 기성세대인 우리 어른들, 정말 말조심 해야겠다. 옛말 그른 것 하나도 없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 하물며 뭘 모를 것이라고 생각한 아동들 앞에서 정말로 언행을 가려서 해야 한다.

커다란 고무통에 물이 가득 담겨있었는데 들어가지를 못한다. 한 발만 들락날락. 수영복과 수영모를 입혀서 들어가서 놀게 하려하니 못 들어간다. 집에서처럼 목욕 패션으로 해 놓으면 들어갈까 해서 그렇게 해 놓아도 못 들어간다. 고무통은 똑같고 장소만 다른데. 준희는 굉장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조심성이 대단하다. 물에 안 들어 갈꺼면 옷을 입자고 하여도 싫단다. 그동안 갖혀져 있던 내면의 세계를 마음껏 발산하라고 한동안을 그렇게 놀게 하였다. V자를 그리며 대담한 포즈로 사진도 찰칵. 요 나이쯤이면 누구나 갖게 되는 사진 한 장을 준희도 갖게 되어서 천만다행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내품에 안긴 준희는 5분도 안되어 골아 떨어졌다. 집에 와서 대충 정리를 하고 할아버지가 준 용돈으로 아이스크림과 치킨을 사러 밖으로 나왔다. 밤이 되어 무서울 텐데도 업히지 않고 씩씩하게 걷는다. 알고 봤더니 주차되어있는 차로 가서 빠방타고 어여 가잖다. 이제 밖에 나오면 차를 타고 어딘가를 간다는 것을 확실히 안다. 욕구 충족이 안 되니 업으란다. 아이스크림과 치킨(한 마리를 더 주셨다)을 가지고 집에 왔다. 치킨이 되는 동안 준희는 매송중 야구부의 야구하는 모습과 형아 들의 축구하는 모습을 업힌채로 한동안을 지켜봤다. 준희도 집에 가서 공 가지고 와서 아저씨랑 형아랑 하라고 했더니 대답을 안 한다.

독서실 간 바오로도 오게 하여 치킨과 과일 밥 등의 식사를 하였다. 준희는 세입의 치킨을 먹고는 밥을 찾았다. 역시나 준희한테는 낯선 음식이었다. 식사를 마친 준희는 안아 달라고하며 보채기 시작하였다. 준희를 먹이느라 정신이 없었던 나는 저녁식사도 거르고 준희를 안아줬다. 준희는 단순히 내 품안에 안기는 수준이 아니다. 쇼파나 의자에 앉으면 안 되는 거다. 설거지도 샤워도 의자위에 준희를 앉혀놓고 잽싸게 해야 했다. 도대체 어떠한 사연이 있었길래 한 시도 몸에서 떨어질 생각을 하질 않나? 하는 의구심만 들게 하는 준희였다. 놀이도 혼자서는 거의 하려들지를 않았다.

변화가 있다면 밖에 나간다고 하면 외출복을 정확하게 양말까지 신던 아이가 못한다고 입혀달라는 거다. 일반 아이들처럼 어리광이 늘었다. 잘 먹던 요플레도 먹여달란다. 나와 안나와 준희만 있으면 준희는 왕이 된다. 얼굴에 장난기가 배어나온다. 그리고 목소리가 커진다. 기쁨의 함성인지 소리를 마구 질러 안나가 머리아파서 죽는 줄 알았단다. 이런 준희의 모습은 남편의 귀가와 더불어 사그라지고 바오로가 오면 더 사그러진다. 왜일까?

자연스러움이라는 것은 상당히 중요하다. 씻고 나온 나의 모습에 준희는 관심을 보였다. 옷을 갈아입어도 관심을 보였고 속옷에도 관심을 보였다. 처음 보는 것에 대한 호기심이 많은 나이인데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는 준희의 현실은 보이지 않는 억압 그 자체다. 그래서 훗날 원생들의 분노가 사회와 국가 혹은 잘사는 개인을 상대로 폭발하나보다.

준희와 나는 목욕 패션으로 들어가서 한동안을 함께 놀았다. 컵으로 서로 물을 끼얹기도 하고 큰 세수 대야와 작은 세수 대야, 큰 고무통에 옮겨 앉으면서 말이다.

자야할 시간임에도 준희는 못 잤다. 밤새도록 칭얼거리며 울었다. 내일이면 간다는 할머니한테 한 말을 이해했기 때문이리라.

26일 월요일. 가기가 싫었는지 9시가 다 되어도 준희는 일어나질 않는다. 9시40분이면 나가야하는데. 일어나자마자 ‘빠방 어여 가자’고 했더니 일사 천리다. 준희는 며칠 만에 본 승재와 장난도 치고 반기면서도 내가 승재를 아는 체 하고 승재가 나를 반기는 것에는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승재를 밀쳐내는 거다. 나는 순전히 준희만을 위해서 존재해야하는 것이다. 독점욕. 공동생활에서 오는 공허함의 역기능의 소산물이다. 그러면 순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단지 침묵만이 그 자리를 메우고 있을 뿐.

두 번의 탐방 끝에 낯설지 않은 성당 건물. 바오로 홀에서는 여름 신앙학교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노래와 율동이 신난다. 준희는 들어가지는 못하고 변함없이 내 품에 안겨서 그저 바라만 볼 뿐이다. 보좌 신부님께 강복을 받고 차를 타기 위해서 밖으로 나오니 촛불 함을 가리킨다. 며칠 전 준희의 촛불이 거기에 있음을 기억해 낸 것이다. 조금의 여유가 있었다면 또 한 개의 준희 촛불을 밝혀 줄 것을. 아쉬움만 남는다.

큰 버스를 보기만 했지 타보기는 처음인 준희. 큰 버스 탔다고 좋아라하면서도 시무룩하다. 어디를 가는지 아나보다. 아침에 ‘무엇이 무엇이 똑같을까’라는 새로운 노래를 해줬다. 숟가락, 젓가락, 나의 신체와 준희 신체를 가리키면서. 그랬더니 그것만 해달란다. 그러고는 쿨쿨. 보육원에 가서도 선생님들한테 가려고 하질 않았다. 머뭇하더니 잠깐 갔다가 다시 내 품으로 와버렸다. 다른 아이들이 선생님들의 뒤를 따라서 들어가는 모습을 보더니 준희도 내 품에서 벗어났다. 뒤도 안돌아보고 체념 한 듯 그냥 간다. 다행이다. 어찌할 방법이 내게는 아직은 없으므로. 눈가에 눈물이 핑 돌았다. 그러나 남편과 바오로 말마따나 펑펑 울지는 않았다. 우리 엄마 분명히 준희 보내면서 펑펑 울을 것이라고 했는데. 남편은 “조금만 울어” 였다.

준희를 데려다주고 집에 오니 안나가 와 있었다(월수금은 5시30분경에 오는데). 감기 증상이 있어 드링크를 한 번 만 데워 준 기억밖에 없는데 기어이 일이 터진 것이다. 얼굴이 벌개져서 열이 오른다. 부랴부랴 드링크를 데워서 먹이고는 함께 자리에 누웠다. 바오로와 사촌 동생들한테 치여 동생들을 안 좋아하는데 내가 봐도 안나는 대단한 인내력을 가지고 준희에게 자상했다. 동생 같았으면 한 방 먹였을 정도로. 그러면서도 엄청 이뻐하고 귀여워했다. 자는 모습을 찍어 친구들에게 우리 준희 엄청 귀엽다고 자랑했으니. 다행히 한 잠을 자고난 안나는 거뜬했다. 엄마의 사랑이 뭔지. 엄마의 위대한 사랑을 안나는 온몸으로 체험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많이 입 밖으로 내는 소리가 ‘사랑’이란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으로 만져지지도 않고 귀에 들리지도 않는대도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온 몸으로 느낀다. 살아있는 모든 생물들은 사랑을 갈구하고 사랑을 하며 살아간다. 아무리 써도 고갈되지 않는 사랑. 지금부터라도 퍼내어 쓰는데 온 힘을 주력해야겠다.

남편은 준희를 안아주려고 무던히도 애썼지만 생각만큼 준희의 마음이 열리지 않았다. 바오로의 자는 모습은 준희가 무서워하지 않게 되었다. 세탁기가 놓여 진 공간너머 창문만 열면 바오로의 방이었기에 빨래를 하는 세탁기를 구경시켜주고 자고 있는 형아 모습 보자면서 자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세탁기 안에는 더러워진 옷만 들어가고 준희는 절대로 들어가면 안 된다고 설명을 해 줬음은 물론이다. 안나도 최선을 다해서 준희의 존재를 인정해줬고 사랑해줬다.

가족이라는 것은 공동 책임이다. 난 4박5일 동안 최선을 다했기에(준희를 위해서 일부러 한 것은 아니고) 보육원에 들여보내면서도 펑펑 울지는 않았나보다. 지금도 준희는 내 마음속에 가족으로서 살아있다. 나의기도 중에, 미사 중에. 마음속으로 지향하는 가족 중 준희도 반드시 포함시킨다. 한 공간에서 함께 생활하지는 못하지만 이미 나는 영적인 엄마로서 자리매김하였다. 언젠가는 준희도 이러한 사항을 이해할 날이 오겠지! 아니면 말고.

남편은 정말 특이한 유년기를 보냈다. 그러면서도 준희를 보면서 전혀 불행하지 않고 오히려 행운아였다고 고마워한다. 바오로는 대학생도 아니면서 대학생들 흉내를 내느라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났었는데 준희 때문에 귀가 시간이 조금은 빨라졌고, 샤워를 하고 싶어도 준희가 깰까봐 포기할 정도다. 대단한 발전이고 배려다. 엄마 아빠의 소리는 잔소리였지만 준희의 존재는 위대하였다. 준희를 신경 쓰느라 감기 걸린 안나에게 관심을 가질 시간이 없었는데, 준희를 보내고 보여준 나의 작은 관심과 사랑이 안나를 통해서 엄마의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되었다. 큰 사람도 이러할진대 무럭무럭 자라나는 준희 또래야말로 엄마의 사랑이 절실히 필요할 때다. 낯빛과 행동과 사고의 차이가 사랑을 먹고 자란 아이와 그렇지 못한 아이는 현저하게 나타남은 진리다. 우리 모두 이 진리에 동참해봄은 어떨까? 아이와 한 공간에서 함께 생활하지는 못해도 지속적인 관심과 사랑과 기도를 해주는 멘토 역할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싶다. 다시 말하면 이모, 고모, 할머니, 할아버지 등의 역할놀이 말이다.

나는 이 부분만큼은 확신에 찬 주장을 하련다. 남편과 바오로가 그 증거다. 물론 한 공간에서 생활하였다는 것이 다른 점이기는 하지만. 남편은 10년, 바오로는 2년. 보이지 않을 듯 하던 바닥을 드러내 보였다. 내 힘으로 하기에는 어찌할 방법이 없었기에 주님의 힘을 빌렸다. 빽도 좀 빌리고. 지금은 두 남자가 그저 바라만 봐도 예쁘다. 정말 대 성공이다. 나도 내가 이렇게 변할 줄 전혀 몰랐으니까.

준희를 보내고 나는 달란트에 대해서 생각해봤다. 각자가 받은 달란트가 있는데 과연 나의 달란트는 무엇이지? 자문해보고 또 자문해봤다. 기도 지향중 일부는 나의 것이었는데 나는 주님의 작은 궁전으로서 주님을 닮은 사람으로, 주변인들을 관용과 사랑으로 대하고 나를 통해서 행복하고 긍정적인 삶을 살 수 있게 해 달라고 감히 청하고 있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니 앵무새처럼 입만 나불거리는 내 자신을 본다.

14처의 십자가 길을 하면서도 나의 일부는 앵무새였다. 실천하지 않는 사랑. 실천하지 않는 성서는 죽어 있는 활자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8월2일 월요일엔 오로지 준희를 위해서만 성체 조배했다. 이미 모든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는 남편은 나의 결정만을 기다리고 있다. 어떠한 결정을 하든 함께 하겠다고. 고마우면서도 얄미운 그대다. 총자루를 나한테 쥐어주고 방아쇠를 당길지 말지를 선택하라니. 갈등과 번민과 고민속에서 며칠을 보냈지만 참으로 행복했다. 우울증에 걸릴 시간조차도 없다. 허리 싸이즈 얇아지면 어떠하랴? 아직은 생활하는데 지장 없다. 더위조차도 도망칠 위기에 있다.

한 올의 실오라기가 한 사람의 수치심을 드러내는 부끄러움을 가리워 주듯 나의 작은 손길과 눈길과 음성이 준희의 상처를 보듬어주고 안아주기를 꿈에서나마 그리워본다. 현실을 받아들이기에 아직은 나의 용기가 부족하므로.


천민식마리… 10-08-05 09:12
 
유해성 시몬형제님의 글을 읽고 기회되면 용기내어 저도 한번 시도해볼까 굳게 맘 먹었는데 애경마리아 자매님글을 다 읽는순간,  아! 저는 아직도 멀었구나를 스스로 깨달았습니다. 군생활도 못하셨을 자매님께서 어떻게 그런 비유를 하셨습니까? "총자루를 나한테쥐어주고 방아쇠를 당길지 말지 선택의 비유, 그에따른 갈등과 번민! 백미입니다.
축복받은 준희~형제,자매님 은총가득~. 넘 잘읽고 갑니다. 천민식마리노 올림
주임신부 10-08-07 23:03
 
이와 같은 쟝르의 글은 "육아일기"에 해당하지 않나요? 그런데 그냥 육아일기라고 평하기에는 아쉬움이 너무나 많이 남을 것 같아요? 어떻게 이런 글이 작성될 수 있는 것인지... 함께 한 4박 5일 내내 필기구를 달고 다니셨나요? 아무튼 준희라는 이름의 예수님은 복도 많으신 분 같아요? 시몬 형제님과 마리아 자매님, 안나와 바오로로 구성된 가정에 주님의 축복이 늘 함께 하기를 기도하겠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애경 마리… 10-08-09 16:56
 
장문의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늘 주님의 은총 충만하소서. 장문의 글을 쓸 수밖에 없었던 이유 첫째, 생각보다 아이들의 상태가 훨씬 더 심각하다는 것을 준희를 통해서 알리기위함이었고 둘째, 신앙인으로 나를 점검해보는 자기통찰의 시간을 갖어보는 것도 상당히 좋았다라는것 세째, 나의 조그만 관심이 한 사람의 인생을 빛으로 이끌 수 있다면 함께 동참해보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음을 밝힘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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