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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3-07-15 00:00
성인의 열성(삼존경/ 겸손)
 글쓴이 : 가로등
조회 : 10,162  
<<7월 15일 성 보나벤투라 주교학자 기념일>>

성 토마스와 더불어 교회 신학계의 쌍벽(雙璧)이라 불리는 성 보나벤투라가 남겨놓은 업적은 중세기는 물론 현대에 이르기까지 찬란히 빛나고 있습니다.
이 2대 신학자는 그 저서와 제자들이 많음에도 서로 손색이 없으며, 토마스가 그 가르침이 상명하고 심원한 의미에서 천사적 박사라고 불린다면, 보나벤뚜라는 오히려 경건하고 사랑이 흐르는 면에서 세라핌적 박사라고 불리어집니다.
또는 성 토마스가 논리적(論理的)이라면, 성 보나벤뚜라는 오히려 심리적(心理的)이어서 그 문장의 감미하고 미려함은 비할 바가 없습니다.

두 분은 다 수도자입니다.
그러나 성 토마스가 성 도미니꼬회의 영향을 받아왔음에 반하여, 성 보나벤투라는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꼬회의 영향을 받았고, 이 두 사람이 그들 수도회의 제2의 창립자라는 명칭을 받을 만큼 그들은 바른 언행으로 사람들의 거울이 되었습니다.

보나벤투라가 중부 이탈리아의 발레오레지에 탄생한 때는 1220년 아씨시의 프란치스꼬 생존시였습니다.
영세 본명은 요한입니다.
어릴 때엔 큰 병에 걸려 생명이 위독하였으므로 신심이 두터운 그의 어머니는 그를 성 프란치스꼬에게 데리고 가서, 만일에 완쾌되면 장래에 수도원에 보낼 서약 아래 성인께 기도와 강복을 청한 결과 즉시 쾌유되었다고 합니다.
성인도 대단히 기뻐하여 “오, 보나벤투라(기쁜 일이여)!”라고 외쳤습니다.
이 때부터 그의 이름을 “보나벤투라”라고 불렀고, 그가 17세 때에 그의 어머니는 서약대로 그를 수도원에 보내었습니다.

수련을 끝마친 후 보나벤투라는 우선 올비에트에서 일반 학문을 연구하고 그 뒤 파리대학에 유학하여 그 수도회의 성학자 알렉산델 할레스 교수 밑에서 3년간 공부했습니다.

그는 20세에 신품을 받았고, 그 후 얼마간 그 수도원에서 교편을 잡았으나, 26세의 아직 젊은 몸으로 파리대학 교수의 영예로운 직책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그해 성 토마스도 같은 대학의 교수가 되었습니다.
이리하여 두 사람은 서로 친구가 되어 거룩한 적수로서 서로 격려하고 연구하여 중세기 신학의 기반을 확립함에 전력하였습니다.
이쯤 되니 각국에서 청년 학생들이 그들의 학덕을 흠모하여 서로 앞을 다투어 그들의 슬하에 운집하게 되었고, 그들의 명성은 그들 주위를 위압하게 되었습니다.

높은 나무는 바람에도 세차게 부딪히는 법입니다.
그들의 명성이 떨치자 질투를 부리는 사람들은 그들을 비방하고 수도회를 공격하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이런 이들에게 대하여 성 보나벤투라는 유화하고 온순한 어조로써 수도회의 존재 이유와 필요성을 설유하고 반박한 결과, 그렇게도 시끄럽던 잡음은 씻은 듯이 없어지고 다시는 그런 존재가 나타나지 않게끔 되었습니다.
성인이 사람들의 찬양을 받게 된 것은 위의 사실로도 나타난 바와 같이 그 학식의 풍부함보다도 그 두터운 애정에 더욱 기인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그는 교수로서의 직무를 완수하는 동시에 다수의 서적을 저술하였는데, 어떤 날 성 토마스가 방문하여 “당신에게 제일 유익하였던 책은 무엇입니까?”하고 질문하니 보나벤투라는 “내가 제일 많이 배웠고, 또 배우고 있는 책은 바로 이것입니다.”하고 십자가를 가리켰다고 합니다.

성인은 파리 대학에서 교수로 8년, 1257년에 열린 프란치스꼬회의 총회 석상에서 관구장과 기타 요직 전원의 추대를 받아 36세로서 그 회 총장에 취임하였습니다.
그 당시 회 창립자 성 프란치스꼬에 대하여는 여러 가지 전설은 있지만, 아직 계통적 조직적 전기는 한 권도 없었습니다.
성인은 회원의 위촉을 받아 비로소 편찬에 착수하고 전기를 완성하였습니다.
그것이 성 보나벤투라의 성 프란치스꼬전인데, 전후 700년간에 걸쳐 수백 판을 거듭하였고, 각국어로 번역되어 수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졌다고 합니다.

그 전기의 집필 중의 일입니다.
어떤 날 성 토마스가 2-3명의 제자와 같이 그를 방문하여 문을 두드렸으나 아무 대답이 없었습니다.
어찌된 일인가 하고 문틈으로 들여다보니 성인은 책상 앞에 꿇어 기도하는 자태로 그냥 탈혼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을 본 성 토마스는 “성인이 성인의 행적을 쓰는 데 방해해선 안 된다”하고 사람들을 재촉하여 조용히 그 자리를 떠났다고 합니다.
이것을 보아도 성인이 성 프란치스꼬의 전기를 편찬하는 데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총장이 된 그는 회원들로 하여금 성 프란치스꼬가 제정한 규율을 엄수하도록 하기 위하여 친히 모범을 보이며 필설로써 설유하고 기회 있는 대로 각 수도원을 순방하며 시찰하였습니다.
그러자 부하인 수도자들 중에 종래의 냉담하던 이들까지도 거룩한 열(熱)에 타게 되어 수덕에 더욱 힘쓰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1265년, 교황 끌레멘스 4세는 그를 영국의 요크시 대주교로 임명하려 하였으나 겸손하게 그 직을 사양하고 말았다고 합니다.

보나벤투라만큼 성모 마리아를 공경한 이는 아마 성인들 중에서도 드물 것입니다.
그는 총장이 된 이후 매 토요일마다 수도원 부속성당에서 성모 찬송의 찬미가를 드렸고, 만종(晩鐘)이 울릴 때마다 성모송을 외우며 강생의 현의를 묵상하였으며, 다른 수사들로 하여금 기회 있을 때마다 이것을 신자들에게 장려케 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전 세계에서 신자들이 매일 세 번씩 외우는 삼종경의 시작이었습니다.
보나벤투라는 프란치스꼬회의 총장이면서도 역시 파리에 체류하여 강의와 설교를 하였으며, 특히 프랑스 왕 루도비꼬 9세와 그 왕족들 앞에서도 설교했다고 합니다.

1273년 봄, 그가 53세 된 때, 파리 대학의 교수들과 수도자들을 상대로 천지 창조의 6일간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교황 그레고리오 10세로부터 그를 알바노 지방의 주교인 동시에 추기경으로 임명할 터이니 이번은 사양치 말고 승낙하고 나서 즉시 로마로 귀환하라는 명령의 서한이 도착하였습니다.
즉시 그는 파리를 출발하여 로마로 향하던 도중 무제로라는 곳에 있는 작은 수도원에서 묵었는데, 때마침 추기경 임명칙서를 휴대한 교황사절이 그곳에 도착 하였습니다.
그 때 보나벤투라는 부엌에서 식기를 씻고 있었습니다.
물론 이것은 겸손지덕을 닦기 위해서이지만, 높은 지위에 오를수록 더욱 겸손해지는 이 성인에게서 우리는 참말로 배울 것이 많을 것입니다.

그의 겸손에 대해서는 또 다른 일화가 있습니다.
어느 날 그는 교황 울바노 4세로부터 성 토마스와 더불어 성체찬미가를 작사(作詞)하도록 분부를 받았습니다.
그리하여 두 분은 서로 최선을 다하여 작사를 하였는데, 그 뒤 서로 대조하기 위하여 먼저 성 토마스가 지은 가사를 읽었을 때, 보나벤투라는 “아! 훌륭합니다.”하며 자기가 애써 지은 성시(聖詩)를 즉석에서 찢어버렸다고 합니다.
이는 보통 사람으로서는 어려운 겸손을 드러내는 일인 것입니다.

1274년 리용에서 공의회가 있었을 때 교황 울바노는 보나벤투라를 대동하고 사회를 그에게 명하였습니다.
그 회의의 결과 가톨릭과 그리스 정교는 일시 합동이 잘되었는데, 이는 보나벤투라의 정(情)과 이(理)를 경주한 명토론의 결정이었습니다.

양 교회의 합동을 기념하는 축하는 6월 29일, 성 베드로와 바오로 사도 축일을 기하여 행하여졌습니다.
그 자리에서 성인은 교황을 비롯하여 공의회에 참가한 교회 학자 주교들의 위풍이 당당한 가운데서 일장의 강론을 하였는데, 이는 그에게 마지막 강론이 되었습니다.
쌓이고 쌓인 그의 피로는 그를 병석에 눕게 하였고, 다시 회복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가 교황께 종부성사를 받고 십자가를 우러러 사랑하는 예수의 곁으로 떠난 것은 1274년 7월 14일 밤이고, 향년 54세, 그 장례식은 교황과 다수의 고위 성직자의 참석하에 이루어 졌습니다.

돌아가신지 9년 후 교황 식스또 4세는 그를 성인품에 올리었고, 식스또 5세는 그에게 교회학자라는 명칭을 주었습니다.
성 보나벤투라의 저서는 8권의 대전(大典)으로 편집되었으며, 그의 저서 가운데 그의 심원한 학식과 그의 경건한 심정이 엿보이지 않는 곳은 한 장도 없으므로, 성 토마스와 더불어 교회 신학계의 혜성으로서의 추앙을 받음은 극히 지당한 일이라 하겠습니다.

성 보자벤뚜라는 학식이 깊고 지위가 높았으나 추호도 위세를 부린 적이 없었습니다.
세인은 약간의 지식으로 이를 내세우고 타인을 무시하는 때가 많이 있습니다.
사람의 지식이란 참말로 머리카락 한 가닥에 비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사람들은 성 보나벤투라의 겸손 앞에 얼굴을 붉혀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완덕에 나아가고자 하거든 먼저 겸손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대화후광 신부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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