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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3-07-29 00:00
 조회 : 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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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9일 성녀 마르타 기념일>>
오늘 복음에 나오는 이야기에서 보면 마르타의 성격이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동생 마리아가 조용히 앉아 있는 성격이라면, 언니 마르타는 활동적이고 자기 마음속에 있는 생각을 묻어두지 못하고 있는 그대로 말해 버리는 성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마르타는 예수님께서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가만히 앉아서 예수님께서 오실 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마을 밖에까지 뛰어나가 예수님께서 달려가는 열성을 가졌지만, 반 투정을 하는 말투로 “주님, 주님께서 저희 소식을 듣고 지체하지 않으시고 여기로 빨리 오셨더라면, 제 오빠는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였습니다.
이 말마디는 성서 전체에서 볼 때 참으로 인간미가 있는 말투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마르타는 예수님께 그런 투정 섞인 말만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이어서 믿음 가득찬 말을 합니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 당신은 하실 수 있으십니다.”
예수님은 그의 말에 “네 오빠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하십니다.
그러자 마르타는 “마지막 날 부활 때에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 라고 대답합니다.
여기서 문제 삼아 주목 해야 할 것은 “마지막 날 부활 때에 다시 살아나리라”는 내용입니다.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느냐?”하는 문제에 그들의 생각은 고대로부터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바와 같이 뚜렷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사상은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선하던 악하던 모두가 스올이라는 어두운 음부(陰府)로 내려가는데, 그곳은 귀신이나 망령처럼 몽롱하고 허무하며, 무력하고 기쁨이 없이 사는 곳이라고 여겨 왔습니다.
그래서 시편에서 보면 “죽은 자 중에서는 주를 기억함이 없사오니 스올(음부)에서 주께 감사할 자 누구오리까?”(시편 6,5), “내가 무덤에 내려갈 때에 나의 피가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어찌 진토가 주를 찬송하며, 주의 진리를 선포하리이까?”(시편 30,9), “죽은 자가 야훼를 찬미하지 못하나니, 적막한 곳에 내려가면 아무도 못하리이다.”(시편 115,7)라고 하는 이러한 사상이 차츰 일깨워져서 “내가 항상 주와 함께 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대접하시리니…”(시편 73,23), 또 욥기에는 “내가 알기에는 투사가 살아 계셔서, 후일에 그가 내 주검 위에 서실 것이다. 더욱이 다른 자가 나의 증인으로서 일어날 것이며, 후계자로서 나는 하느님을 보리라. 내가 보는 자는 외인처럼 낯선 자가 아니로다.”(19,25) 라고 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의 역사는 비극의 역사, 즉 억압당하고, 노예생활, 패배가 거듭 되풀이 되어 온 역사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점에 있어서는 전혀 흔들림이 없는 확신을 가지고 살아온 백성이기에 하느님의 계획이 충분히 실현되고 하느님의 정의가 완전히 성취되면, 하느님의 사랑이 충만한 다른 세계, 다른 삶이 있다는 것을 믿어왔던 것입니다.
예수님 시대에도 사두가이파 사람들은 죽은 후의 생명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께 한 여자가 7형제와 결혼해서 죽은 후에 누구의 부인이 되겠느냐고 도전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바리사이파들과 대다수의 유대인들을 죽은 자가 하느님을 만나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믿어왔습니다.
그런 의미로 볼 때 오늘 복음의 마르타가 “… 세상 마칠 때 내 오빠가 다시 살아나리라 …”고 한 말은 당시 유대 신앙에 대표적인 발언이었습니다.
마르타가 그렇게 말했을 때, 성자이신 예수님은 새로운 진리를 그에게 말씀해 주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겠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라는 우리 삶의 운명에 대해서 밝혀주신 것입니다.
즉 우리는 죽음을 모두가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죽음을 통하여 우리의 생명을 하느님과 새로운 관계로 들어감을 분명히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리고 하늘에 오르시어 당신을 따르는 자에게 그러한 죽음을 통한 새로운 삶을 보여 주시고, 그러한 생명을 우리에게 주시겠다고 약속 하셨고, 그러한 당신 생명에 우리를 초대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영원히 있다는 기쁜 소식이며, 복음이며, 믿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세의 이해관계에만 집착하여 처신할 것이 아니라, 영원을 내다보며, 현세를 의미 있게 살아갈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대화후광 신부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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