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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3-10-24 00:00
 조회 : 5,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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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 vAlign=bottom width=377 height=26><FONT color=#0000a0
size=2><B>부활호(2003)</B></FONT></TD></T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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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FONT color=#800040 size=2><B>사랑의
하느님</B></FONT></DIV></TD></T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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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right><FONT face=굴림체 size=2>글/임경업 마태오/인자하신 모후 Cu.
부단장(분당요한성당)</FONT></DIV></TD></TR></TBODY></T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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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 style="TEXT-INDENT: 0px; LINE-HEIGHT: 17pt" colSpan=2 height=45>
<BLOCKQUOTE><FONT face=굴림체 size=2>요한1서 4장에 <BR>“사랑은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하느님께로부터 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BR>했으며, 이어서 5장에는 <BR>“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하고 또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면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를
사랑하고 있다 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곧 하느님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그리 고 하느님의 계명은
무거운 짐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자녀는 누구나 다 세상을 이겨냅니다. 그 리고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길은 곧 우리의
믿음입니다."<BR>라고 나와 있습니다. 제가 이 성서 말씀을 마음 속 깊이 받아들인 것은 15년 전, 제 나이 마흔 살
때였습니다.<BR>저는 19세에 처음 성당을 찾았습니다. 집안이 어려워 중학교만 겨우 졸업하고 노동일을 해가며 검정고시를 통해
고교과정을 마친 뒤 대학시험을 준비하던 때라 외롭기도 하고 의지할 대상을 찾다 보니 그곳이 바로 성당이었습니다. 두 번의 찰고
면담 끝에 영세를 했을 때는 잠시 기쁨에 들떴으나 이후 20여 년의 신앙생활은 지금 생각하면 겉만 있고 속이 없는 믿음의
연속이었습니다. 이 기간 내내 하느님은 부담스러운 대상으로, 제게 고난과 무거운 짐만 지워주시는 존재로 인식되었습니다. 차라리
하느님을 몰랐다면 주변 동료들처럼 죄의식 하나 없이 뇌물도 받고 유흥도 즐기고 함께 어울렸을 것입니다. 주일 미사에 빠지지 않고
계명을 꼬박꼬박 지킨다는 것은 제게 큰 부담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러다 하느님에 대한 인식은, 제게 두 가지 사건이 연달아 일어난
후부터 갑자기 바뀌었습니다.<BR>당시 저는 집안 누님의 간청으로 대기업 핵심 간부직을 그만두고 주류도매회사를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누님이 그 회사에 사채를 빌려주고 집 두 채를 담보로 넣고도 돌려받지 못하자 대신 지분 50%를 받고 제가 대표직을
맡게 되었던 것입니다. 주류회사는 한 마디로 부실덩어리 그 자체였습니다. 상품외상대금, 밀린 세금과 공과금에 종업원 인건비 등
모든 게 빚뿐이었고 그 와중에도 기존 주주들은 서로 싸우고 회사공금을 빼돌리는 아수라장이었습니다. 제가 회사 회생을 위해 6개월
이상을 바둥거리다 보니 몸과 마음이 함께 지쳤습니다. 이때 누님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BR>“용한 점쟁이를 찾았는데 우리집에
액운이 끼었으니 굿을 해야 풀린단다”<BR>는 것입니다. 몇 번을 거절하다가 결국 승낙을 했습니다. 이를 기화로 저는 더 이상
성당에 나가지 않으려고 마음을 먹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장 무당한테서 연락이 왔습니다. 내일이 길일이라 오늘 저녁에 굿 준비를
해야 한다고 해서 6돈짜리 금팔찌를 선불로 누님편에 보냈습니다. 그날 밤은 거의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습니다. 다음 날 새벽같이
누님한테서 연락이 왔는데 간밤에 굿을 준비하던 무당이 급사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렇게도 건강했다는데 하룻밤 새 운명을 달리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날 굿은 못했지만 이미 하느님을 저버린 저는 한동안 허탈한 상태로 보냈습니다. 죽은 무당의 넋이 떠올라 꿈자리도
뒤숭숭했습니다.<BR>그때 이후 답답한 마음을 떨치려고 산을 자주 찾았습니다. 한해가 저물 무렵, 그날도 도봉산에 갔습니다.
버스로 도봉산 입구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2시경이었습니다. 평일 오후이고 영하의 쌀쌀한 날씨인지라 등산객은 거의 보이지
않았습니다. 평상복 차림에 시간도 늦고 해서 산중턱만 올라갔다 내려오리라 생각하고 올라갔는데 저도 모르게 정상 가까이
도달했습니다. 이제 내려가야지 하면서도 무언가 홀린 사람처럼 계속 올라가니 정상이었습니다. 해는 저물고 어둑해지는데 누군가 계속
소리를 치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니 건너편 봉우리에서 웬 젊은이가 살려달라고 계속 소리를 지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곳은 등산장비를 갖춘 전문가나 올라가는 곳인데 젊은이는 객기로 올라가기는 했으나 내려오는 길을 찾지 못하고 겁에 질린
채 한시간 이상을 서성대고 있었답니다. 저는 그에게 큰 소리로 구조대를 불러올 테니 기다리라고 몇 번이나 다짐해두고 구조본부가
있는 곳까지 뛰다시피 내려왔습니다. 구조대 두 명과 다시 산에 오를 때는 기진맥진했습니다. 젊은이가 있는 산봉우리가 보이자 저는
그만 지쳐서 털썩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얼마 후 구조대가 젊은이를 구조하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구조대가 내려오기 전에 저는
조용히 산을 내려왔습니다.<BR>집에 오는 버스를 탔을 때는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오고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무당사건 이후 계속 저를 짓눌렀던 죄책감이 일순간 거짓말같이 사라졌습니다. 이제까지 멍에로 느껴온 하느님이 ‘사랑의 하느님’으로
다시 나타나셨습니다.<BR>이후 레지오 마리애 단원이 되고 기도와 활동을 하는 중에 저도 모르게 소극적인 성격이 적극적으로 변했고
매사를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혼자만 다니던 성당에 어느새 아내와 아이들, 어머니와 형제들이 다니게 되었습니다.
성당에 나가는 저희 삼형제는 모두 레지오 마리애에 입단해서 쁘레시디움 단장직을 맡고 있습니다. 모두다 하느님 사업에
열심입니다.<BR>이제 인도 철학자 스리바가본 구루의 말을 들려드립니다.<BR>“모든 인간은 보이지 않는 밧줄로 스스로를 묶고
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자유를 찾는다. 그대 를 구속하고 있는 건 다른 누구도 아닌 그대 자신이다. 그대만이 그대를 구속할 수
있고 또 그대만이 그대를 자유롭게 할 수 있다."<BR></FONT><FONT
face=굴림체></FONT></BLOCKQUOTE></TD></TR></TBODY></TABL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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