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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3-11-29 00:00
5 명의 사형수
 글쓴이 : 솔내음
조회 : 10,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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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style="MARGIN-TOP: 0px; MARGIN-BOTTOM: 0px">5명의 사형수 <BR><BR>이 글을 쓰신 분은 나원균
바오로 몬시뇰입니다.
<BR><BR>+++++++++++++++++++++++++++++++++++++++++++++++++++++++++++++
<BR><BR>사제서품후 잊혀지지 않는 일이 있다면 사제서품을 받고 <BR><BR>첫 보좌신부로 있었던 혜화동 성당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BR><BR>26년전 혜화동 본당 보좌신부로 있을 때 <BR><BR>어느날 교도소로 부터 다급한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BR><BR>신부님이십니까? 저는 서대문 교도소의 신자 교도관인데 <BR><BR>지금 즉시 교도소로 와 줄 수 있겠느냐” 고 물었습니다?
<BR><BR>그때 제가 무얼 잘못해서 교도소로 오라는 거요? 하고 물었더니 <BR><BR>그게 아니고 전화로는 극비이므로 말할 수는 없고
오시면 알려 드리겠습니다. <BR><BR>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BR><BR>그때가 1972년도 5월 어느날 오전 10시경으로 기억됩니다.
<BR><BR>제가 교도소 정문에 도착하자 전화를 건 신자 교도관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BR><BR>“마음을 단단히 잡수시고 저의 말을
들어 주십시오” 하고 교도관이 말했습니다. <BR><BR>저는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제소자들 중에 환자가 있어 <BR><BR>병자성사나 병자
영성체를 요청하는 줄로만 생각했습니다. <BR><BR>그런데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BR><BR>“오늘 5명의 사형수가 집행되는데 그 중에
2명이 천주교 신자가 있어 <BR><BR>신부님을 부른 것 입니다” 라는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BR><BR>지금도 사형집행 말을 들으면
놀라겠지만, <BR><BR>그 때에는 병아리 신부로서 교도소 가는 것도 부담스러울 때 인데, <BR><BR>더구나 사형 집행을 참관한다는 것은
큰 부담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BR><BR>곧 이어 안내를 받아서 들어간 곳은 사형실이었습니다. <BR><BR>저의 기억으로는 약50여 평
남짓한 작은 방에 <BR><BR>30여명의 교도관들이 경호를 하고 있었고 단상위에는 8명의 참관인이 있었고, <BR><BR>한쪽 끝에는 목사님도
있었습니다. <BR><BR>제가 늦게 참석하였기에 10시부터 시작된 사형 집행은 <BR><BR>이미 첫번째 사형수가 심문절차를 밟고 있었을 때
였습니다. <BR><BR>저는 제자리에 앉자 마자 첫번째 사형수를 보고 <BR><BR>얼마후에는 이세상 사람이 아니겠구나 생각하면서
<BR><BR>그의 얼굴을 보니 창백하다 못해 경련을 일으키면서 살려 달라고 <BR><BR>소동을 피우는 것이었습니다. <BR>그러나 인정
사정없이 절차가 끝난 후 교수형에 처해 졌습니다. <BR><BR>교수형은 목을 메달아 죽이는 것이었습니다. <BR><BR>이어서 두번째 사형수도
들어와서 절차를 밟고 나서 교수형 처하기 직전에 <BR><BR>갑자기 벌떡 일어서서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만세” 하고 외쳤습니다.
<BR><BR>무슨 말인지 아십니까? 김일성을 찬양하고 공산주의 찬양하는 말입니다. <BR><BR>그날 공교롭게도 5명이 모두 다
간첩이었습니다. <BR><BR>그때 저는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만세라는 말을 처음 들었습니다. <BR><BR>그것을 외치면서 죽는 사형수를 볼
때 공산주의가 무엇이 좋아서 저렇게 까지 할까? <BR><BR>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것은 그의 신조로서 그렇게 했을 것으로 봅니다.
<BR><BR>세번째의 사형수의 차례가 되었을 때 똑 같은 절차가 끝나자 앞에 <BR><BR>두 사람이 너무 힘겨워 하면서 마지막 죽음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BR><BR>집행장은 느닷없이 “당신 뭐 할말이 없느냐? <BR><BR>여기 목사님도 계시고 저기 신부님도 계신데
<BR><BR>하느님이라도 믿어 볼 마음이 없느냐?” 하고 제안을 하더군요. <BR><BR>저는 그 소리에 감짝 놀랐습니다. 또한 기분이 몹시
안 좋았습니다. <BR><BR>너가 죽는 마당에 천당이 있다던데 혹시 아냐 <BR><BR>하느님이라도 믿어서 천당이라도 갈지. 지옥이 있다 던데
<BR><BR>혹시 하느님이라도 믿어서 천당이라도 가고 싶지 않느냐?는 식의 말로 <BR><BR>하는 말이었습니다. <BR><BR>저는 혹시라도
그 세번째 사형수가 대세라도 달라고 하면 내려가서 주려고 <BR><BR>준비를 하였습니다. 그런 후 사형수는 그런 권고를 한 집행장을 빤히
쳐다보면서 <BR><BR>“뭐라고! 하느님을 믿으라고! 나를 죽게 하는 하느님을! 그런 존재는 필요없다 <BR><BR>하면서 소리소리 지르면서
하느님을 저주하였습니다. <BR><BR>그도 결국 살려달라고 아우성을 치고 자기의 죽음을 저주하고 죽었습니다. <BR><BR>그러한 그 사형수의
죽는 모습에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BR><BR>저는 참으로 울적한 마음으로 세 사람의 죽음을 지켜 보았고 <BR><BR>곧 이어서 네번째
사형수 집행 안내방송이 나왔고 <BR><BR>네번째 사형수 차례가 되자 신자 교도관이 저에게 <BR><BR>“이번 네번째 사형집행은 천주교
신자입니다. 영세한지 3개월 됩니다. <BR><BR>제가 대부입니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BR><BR>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교도관은 아주
열심히 <BR><BR>제소자들을 위해서 복음을 전파하고 있었으며 대자도 수백명 두었다고 합니다. <BR><BR>“신부님 사람들 죽는 것
보셨지요. <BR><BR>저의 대자도 저렇게 죽음을 맞이 하지 않아야 되는데. 기도해주십시오….” <BR><BR>네번째 죄수가 들어왔습니다.
절차를 다 끝내고 똑같이 “마지막 할 말이 없느냐” <BR><BR>하는 집행장의질문에 ? 聆紈測?고개를 들고 단상 위를 치켜보다가
<BR><BR>사제복을 입은 저를 보더니 저 신부님을 제 앞으로 오게 해주십시오. 했습니다. <BR><BR>그래서 제가 그 앞으로 내려
갔습니다. <BR><BR>신부님, 마지막으로 고백성사를 보겠습니다. <BR><BR>1분이 지나 2분이 지나도록 그 네번째 죄수는 말을 훌求醮?그
후 떨리는 목소리로 <BR><BR>“신부님 고백성사를 볼 수가 없습니다.” “떨려서 안되겠습니다.” <BR><BR>영세 받은지 3달밖에
안되었고, 의향으로 불렀으니 고백을 않해도 되겠습니다. <BR><BR>정말로 회개하시고, 이 마지막 순간에 하느님께서도 용서하시리라 믿습니다.
<BR><BR>그리고 그에게 성체를 나누어 주었습니다 성체를 모시고 난후 <BR><BR>그 사람은 저의 손을 꼭 잡고 놓치를 않았습니다.
1-2분이 또 지났습니다. <BR><BR>집행장이 몇 분을 더 기다려 주더니, 신부님 그 사람의 손을 놓아주세요. <BR><BR>시간이 없어
빨리 진행해야 됩니다. 그 후 한 3분이 지나 제가 손을 놓았고 <BR><BR>죽음직전에는 “신부님, 대부님 안녕히 계십시오” 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었습니다. <BR><BR>다행히 그는 조선인민민주주의 만세도 부르지 않았고 <BR><BR>살려 달라고 발버둥 치지도 하지 않았습니다.
<BR><BR>고백성사와 성체를 영한 그가 숨을 거두자 진중하게 지켜보았던 <BR><BR>교도관 대부가 저한테 와서 신부님 잘 되었습니다.
<BR><BR>대자가 저렇게 마지막 으로 잘 가길 기도해 왔는데 하느님이 도와 주셨습니다. <BR><BR>3-4시가 되었을 때
<BR><BR>마지막 다섯번째 사형수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BR><BR>이 다섯번째 사형수에 촛점을 맞추고 싶습니다. <BR><BR>작은
창문을 통하여 보여지는 감옥으로부터 사형 집행실까지는 <BR><BR>불과 20여 미터 밖에 안되었지만 줄을 맞추어 2-30명의 교도관들의
<BR><BR>상엄한 경계를 하고 있었습니다. <BR><BR>먼저 4명의 사형수들은 감옥으로부터 나오는 순간부터 소리소리 지르면서
<BR><BR>“난 안돼요” 그랬는데 다섯번째 사형수 차례가 되자 <BR><BR>다시 신자 교도관이 다가 오더니 “신부님, 저 사람은 걱정을
않하셔도 됩니다. <BR><BR>그 사람은 교도소 생활 10년을 했으며 이미 3년 전에 영세를 받아 <BR><BR>신자로서 참으로 열심히
살았습니다. <BR><BR><BR>수도자처럼 살았습니다. 그 사형수 때문에 많은 제소자들이 영세를 받게 되었고 <BR><BR>사형수들중 2/3가
카톨릭 신앙으로 귀화하 했습니다.” <BR><BR>라는 말을 저에게 해주었습니다. <BR><BR>밖에 그 사람이 나타 났습니다. 감옥문이
열리면서 그가 나오자 마자 <BR><BR>자기를 호위한 30여명의 교도관들과 일일히 악수를 나누었습니다. <BR><BR>앞의 네사람하고는 감히
비교 조차도 할 수 없었습니다. <BR><BR>? 났뎔患?안녕히 계십시오. 그 동안 제가 여기 있는 동안 신세를 많이 졌습니다.
<BR><BR>저는 지금 떠나지만 후에 뵙게 될 날이 있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BR><BR>나는 정말 저 사람이 사형 집행수
인지? <BR><BR>김포공항에서 외국에 나가는 사람으로 착각할 정도 였습니다. <BR><BR>이윽고 그가 사형실로 들어왔습니다.
<BR><BR>그는 정말로 기도하고 묵상하면서 절차를 끝내고 있었습니다. <BR><BR>역시 그에게도 마지막으로 할말이 없느냐고 물을 때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BR><BR>"저는 언젠가는 오늘이 있을 것으로 생각이 되어 준비해 놓은 <BR><BR>유서를 읽어도 되겠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BR><BR>그분의 유서, 유언이 너무 감동적이였기에 아마 모르긴 해도 <BR><BR>그의 말 가운데 단어하나 토씨하나 빼놓지
않고 <BR><BR>지금 그대로 이 자리에 전해 드릴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BR><BR><BR>저는 죄인입니다. <BR><BR>그러나 저는
행복한 죄인입니다. <BR><BR>왜냐하면 이 교도소에 와서 하느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BR><BR>(우리가 하느님을 믿는다고 표현하는데 이
사람은 하느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라고 표현했습니다.) <BR><BR>이제 저는 조금 후에 교수형에 처해 집니다. 저는 저의 죄과로 죽어
마땅합니다. <BR><BR>저를 하느님이 용서하시고 저를 하느님 나라로 불러 주시리라 믿습니다. <BR><BR>이제 저는 죽어갑니다. 이제 제가
죽는 순간 그러나 제가 죽는 순간 <BR><BR>하느님 瑛막?갑니다. <BR><BR>주님 저를 용서하시고 제가 잘못한 모든 죄를 모든 이에게
사죄 드립니다 <BR><BR>끝으로 사형수의 주제 넘는 말 같지만 저의 죽음을 지켜보시는 여러분께서도 <BR><BR>인생의 진정한 행복을
찾으시려거든 천주교 신자가 되십시오. <BR><BR>그리고 지난 3년 동안 제가 하느님을 만난 후부터 가장 소중하게 가졌던 <BR><BR>이
기도서를 저의 중3 딸에게 유산으로 물려 주십시요. <BR><BR>그리고 제가 잠시 후에 운명하거든 저의 두 눈을 빼어서 <BR><BR>실명한
사람에게 전해 주십시오. <BR><BR>이상 입니다. <BR><BR><BR>그분은 유언을 마치고 저를 불러서 지난 날의 죄를 고백성사로부터
보았고 <BR><BR>제가 성체성사를 영하여 주었을 때에는 그가 법으로 입증된 사형수가 아니라 <BR><BR>하느님 나라에 이미 가있었던 천사의
얼굴이었던 것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BR><BR>그가 성체를 영하고 나서 마지막 형을 집행하기 직전에 그를 묶게 되었습니다.
<BR><BR>손과 다리, 발목을 묶어 들어서 형틀로 옮기는 도중에 잠깐 기다려 달라고 하더니 <BR><BR>포승줄로 묶여 있는 내가 손으로
주머니에서 무얼 꺼낼 수 없으니까 <BR><BR>꺼내 달라고 하였습니다. <BR><BR>교도 관이 주머니에 넣어 꺼내 보니 묵주였습니다.
<BR><BR>손을 합장을 하더니 묵주를 손에 감아 달라고 하였습니다. <BR><BR>교도관이 손에 묵주를 감아주었습니다. 됐습니다.
<BR><BR>집행하십시오 <BR><BR>죽기 전에 그는 <BR><BR>“예수 마리아여! 저를 도와주십시오” <BR>“예수 마리아여! 저를
도와주십시오” <BR>“예수 마리아여! 저를 도와주십시오” <BR><BR>하고 3번 큰소리로 외치면서 조용히 운명을 했습니다.
<BR><BR>그가 숨지자 사방도 조용해 졌고 <BR><BR>그의 죽음을 지켜보던 참관인들, 교도관들이 모두 고개를 숙여 <BR><BR>그의
명복을 빌었습니다. <BR><BR>하느님이 누구이시기에 카톨릭 신앙이 무엇이기에 생명의 죽음까지도 <BR><BR>저렇게 극복할 수 있는 참
모습을 우리는 보았습니다.
<BR><BR>++++++++++++++++++++++++++++++++++++++++++++++++++++++++++ <BR><BR>우리
모두도 언젠가는 <BR><BR>한번은 꼭 지나가야할 문, <BR><BR>다시금 이 위령성월의 마지막즈음에 <BR><BR>나, 너, 모두의 죽음에
묵상해봅니다 <BR><BR>당해보지 않았으니 <BR><BR>그때의 행동에 자신할수 없음을 <BR><BR>그래 더더욱 죽음의 다리를 건넌 이들의
기도에, <BR><BR>또한 그곳을향해 쉬임없이 가는 우리 서로를위해 <BR><BR>마지막 사형수의 귀한 말처럼 <BR><BR>행복한 죄인임을
고백하며 <BR><BR>순간의 삶에도 소중함을 지니시기 빕니다... <BR><BR><BR>천진암 梨花 <BR></P>
</BO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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