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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4-02-15 00:00
성서는 우리신앙생활의 바탕
 글쓴이 : 가로등
조회 : 8,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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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align=center><BR><FONT color=#ac0404 size=5><STRONG>성서는 우리 신앙생활의
바탕</STRONG></FONT> </P>
<P align=center> <IMG
src="http://www.cbck.or.kr/pds/period/kh/k2003/ky0311/ky0311Image/060.jpg"
border=0>
<P align=justify>    “천주교 신자들은 성서를 잘 읽지 않는다.”는 지적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특히 개신교에 비하여 그 읽는 양이나 관심이 상대적으로 부족하고, 신자라면 이 정도는 읽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기대치에도 못 미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대하여 한국 가톨릭 교회는 성서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성서를 가까이 하려는 여러 가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BR>    “성서를 갖고, 성서를 읽으며, 성서를 공부하고, 성서의 말씀대로 살아가자.”는 성서 사도직의
뜻에 따라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서울대교구 이문주 프란치스코 신부(가회동성당 주임, 성서 100주간 지도신부)와 황성옥 모니카 수녀(까리따스
수녀회, 성서 사도직 담당), 이용결 씨(월간 맛성서와 함께맜 편집부장)가 2003년 10월 7일(화) 오후 4시에 서울대교구 가회동성당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BR><BR><STRONG>    한국교회가 성서를 읽지
않는다</STRONG><BR><B>    이문주</B> 천주교는 아무래도 전례를 중요시하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성서에
대하여는 관심이 덜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성서에 관심을 불러일으킨 계기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라고 볼 수 있어요. 공의회에서는 성서를
적극적으로 읽으라고 하고 있거든요.<BR><B>    황성옥</B> 교회 역사를 볼 때 교회가 너무 호교론적이었다고
볼 수 있어요. 그 흐름 안에서 신자들은 성사 중심, 전례 중심으로 치중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성서에 중점을 두지 못한 게 사실입니다.
신자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성서에서 찾아야 하는데 말이죠.<BR><B>    이용결</B> 사실 한국교회가 성서를 읽지
않는다는 지적은 상대적인 관점의 이야기인데, 특히 개신교에 비해서는 절대적으로 부족한 형편입니다. 신부님의 말씀처럼 가톨릭 교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중 ‘계시헌장’을 통해 성서를 읽으라고 강조하였습니다. 이는 48년밖에 안 된 일입니다. 그리고 신구약성서 전체가 번역된 것이
1977년이니까 이것도 불과 26년 정도입니다. 이런 여건에 비추어볼 때 한국 신자들의 성서에 대한 관심이나 열의는 굉장히 뜨겁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제 본당에서 보면 그 열의가 일부분에 국한되는 면이 있습니다. 특히 오래된 교우들은 성서에 대하여 잘 모르는 경우가
많죠.<BR>    이런 이유는 교회의 정책이나 지향이 성사와 전례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고, 그러다 보니 성서를
알아야 할 중요성에 대하여 강조하지도 않았으며, 읽도록 독려하는 프로그램도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BR><B>    황성옥</B> 아직 한국교회는 미성숙한 면이 많아 신부님들이 끼치는 영향이 대단합니다.
사목자가 성서에 관심이 없으면 신자들도 그대로 따라갑니다. 신부님들이 성서 이외의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게 되면 자연히 성서는 뒤로
밀려납니다.<BR><B>    이문주</B> 그 영향력은 절대적이랄 수
있죠.<BR><B>    황성옥</B> 사목자의 관심에 따라서 신자들이 성서를 접할 수 있고 없고 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사목 자체의 중심에 성서가 있어야 하는데 사목자의 관심에 따라 성서가 좌지우지된다는 것은 거꾸로 된 일이
아니겠습니까?<BR><BR><STRONG>    성서공부 모임은
성장세</STRONG><BR><B>    이문주</B> 다행히 요즈음 성서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성서를 대하는
자세에서 적극성도 많이 보입니다.<BR><B>    황성옥</B> 그래도 아직은 미흡한 점이
많아요.<BR><B>    이용결</B> 그렇습니다. 그 기대에는 못 미치지만 성서에 대한 관심이 움터나고 또 자라고
있다는 사실은 느낄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성서 사도직이 세 갈래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고 봅니다. 먼저 수도회에서 주도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일선 교회에서 상대적으로 부각이 덜 된 것이지만 ‘말씀 전례’ 부분을 강론과 함께 강조하고 있는 모습이 한 갈래입니다. 또
하나의 줄기는 소공동체 운동과 더불어 본당에서 행하고 있는 성서 읽기, 성서 쓰기, 성서 퀴즈 등 다양한 형식으로 성서를 신자들과 가깝게 하려는
노력들입니다.<BR>    다만 신부님마다 그 방법이 달라서 그런지 지속성이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신부님이 새로
오시면 그동안 추진하던 것을 완전히 새로 시작하는 경우들을 보게 됩니다. 지금 성서에 대한 관심은 높아지고 있습니다. 성서가 신자들에게 들어가
녹아들 수 있는 지속적인 시간이 필요한데 일관된 계획이 없으니 혼동을 겪습니다. 그래서 교회 전체의 큰 틀, 그러니까 지속적이고 일관된 틀이
있어야 하지 않나 하는 아쉬움을 갖게 됩니다.<BR><B>    이문주</B> 성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성서를
공부하는 방법도 여러 가지가 나왔고 지금도 계속하여 개발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 서울대교구 시노드에서도 선교 의안의 질문 가운데 “신자
재교육은 어떤 부분이 가장 중요한가?” 했더니 ‘성서 공부’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습니다. 이렇듯 신자들도 성서에 대한 필요성과 중요성을 깊이
느끼고 있습니다.<BR><B>    이용결</B> 최근의 교세통계를 보면 교회 안의 활동단체에 대한 현황이 나옵니다.
그런데 레지오, 꾸르실료, 성령운동 등 거의 모든 단체의 성장세가 둔화되었는데 성서교육, 성서공부 모임만은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습니다.<BR><B>    이문주</B> 지난 7월 초순에 사이공에서 주교님이 오셨어요. 한국을 방문한 목적을
얘기하는 자리에서 한국이 70년대부터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뤘는데 교회도 함께 발전한 사실이 궁금하다고 하시는 겁니다. 북미주나 구라파, 일본
같은 곳은 경제가 성장하면서 신앙생활의 열기가 수그러든 사실을 알고 계셨던 주교님은 한국 상황에 관심이 많으셨던 거예요. 이제 베트남도 경제
제제가 풀리면서 경제성장을 이룰 것이잖아요.<BR>    그런데 한국에 오셔서 잠깐 계시는 동안 신자들이 성서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는 모습을 느끼신 거예요. 짧은 시간 계셨지만 성서공부가 그 답이라고 생각하신 주교님은 앞으로 한국교회와 베트남 교회가 협력을
이뤄가면서 우선적으로 성서 사도직에 관심을 갖고 도와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셨어요. 예를 들면 베트남의 수도자나 지도자를 초청해서 성서
사도직을 교육시키고 거기에 대한 여러 가지 방법을 전수해 달라는 것이죠.<BR><B>    이용결</B> 우리나라처럼
성서공부가 활발한 곳은 세계적으로 드물다고 봅니다. 평신도가 능동적으로 교육현장을 찾아다니며 교육에 참여하고 배운 것을 나누고자 하는 모습은
우리의 놀라운 특성입니다. 다른 나라에는 이런 예가 없습니다.<BR>    80년대부터 이루어진 꾸준한 교세 성장세가
90년대 후반부터는 거의 정체 상태가 아니겠습니까. 이 정체 상태에서 돌파구로 찾는 것이 소공동체 운동이고, 사실 그 핵심은 ‘말씀’이라고
생각하는데 말씀을 중심으로 다시 시작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아닐 수 없습니다.<BR>요즈음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 등 교회 전체가 은연중에
합의한 것처럼 말씀에 대한 열의가 번지고 있습니다. 아직은 미흡하고 체계적인 면이 부족하지만 사목의 중심에 서계신 신부님들이 성서 40주간,
성서 100주간, 성서 못자리, 여정 등 많은 성서공부 프로그램을 잘 익히시면 신자들이 더 깊숙이 성서에 다가갈 수 있도록 이끄실 것입니다.
말씀에 대한 미래는 밝다고 봅니다.<BR><BR>    <STRONG>성서와 전례는 두 날개와도
같다</STRONG><BR><B>    황성옥</B> 어려운 면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체험한 것인데 아직도 교회가
전례 중심의 정적인 생활에 머물러있는 모습을 봅니다. 사목자들이 정말 ‘성서가 우리의 정체다.’ 하는 의식을 갖고 사목을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이 부분이 약하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어요.<BR><B>    이문주</B> 그렇습니다. 성서와 전례가 조화를 잘
이루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성서와 전례는 두 날개와 같습니다. 하나의 날개로는 날 수 없죠. 말씀을
중요시하는 개신교에서는 오히려 전례 쪽으로 힘을 기울이고, 심지어는 가톨릭의 전례를 배우고 수용하는 모습까지 볼 수
있습니다.<BR><B>    황성옥</B> 전례 중심으로 치우치다 보니 신자들이 경건한 모습 속에 관념화되고, 정적인
분위기에서 기복적 신앙으로 흐르게 됩니다. 그런데 성서가 얼마나 혁명적입니까. 성서를 통해 신자들이 깨어날 수 있어야
합니다.<BR><B>    이문주</B> 신자들이 성서를 읽고 생활화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성서의 말씀을
읽고 체험을 쌓아야 합니다.<BR><B>    황성옥</B> 앎이 없이는 체험의 단계가 어렵습니다. 먼저 알게 하려면
성서교육이 먼저 있어야 하고 성서를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쉬운 언어로 설명해야 합니다.<BR><B>   
이용결</B> 성서는 문화적으로나 삶의 자리에서 무척이나 낯선 책입니다. 그것을 제대로 알아들으려면 많은 노력이 있어야 하고, 그만큼 교육의
중요성이 대두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동안 많은 노력으로 성서의 새 번역, 성서주석, 교육 프로그램이
나왔습니다.<BR><B>    황성옥</B> 그 노력들이 신자들에게 다가가려면 성서를 이야기할 때 대중적이고 보편적인
언어를 써야 한다는 것입니다.<BR><B>    이용결</B> 우선은 신자들과 삶의 자리를 함께하고 있는 본당신부님의
강론과 성서 사도직 단체가 노력을 해야 할 부분이고 과제입니다.<BR><B>    이문주</B> 저는 우리 한국
신자들이 아주 현명하다고 봐요. 70년대는 성서 갖기, 80년대는 성서 읽기, 90년대는 성서공부, 그리고 지금은 성서의 영적 측면을
갈망하지요. 그 길을 누가 특별히 가르쳐주지 않았는데도 열심히 따라가고 있습니다.<BR><B>    이용결</B>
이런 모습은 정말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 아닐까 합니다. 그런 면에서 희망적이고 성서에 대하여 더 깊이 공부하게 됩니다. 성서공부를 하는 신자들은
성서공부를 통해 이제 말씀 전례가 귀에 들어온다고 해요. 교리를 알아들을 수 있게 되었다는 사람도
있고요.<BR><B>    황성옥</B> 성서를 알고 나서 맛을 들이고 나면 성서에 끌리는 삶을 살게 됩니다.
신기하고 재미있습니다. 아직 많은 분들이 체험을 못한 것이 아쉽지만요.<BR><BR>    <STRONG>말씀이 너를
흔들어놓을 때까지</STRONG><BR><B>    이용결</B> “성서는 듣는 이 또는 읽는 이와 더불어
성장한다.”는 그레고리오 교황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살아가는 만큼 우리의 믿음이 자라고 온전하게 된다는
것이죠.<BR>    또 “한 입에 마실 수 없는 것을 한 입에 마시려고 욕심을 부리지 말고, 조금씩 마실
수 있는 것을 게으름 때문에 멀리하지 마십시오.”라는 에프렘 부제의 말씀이 있습니다. 성서를 대하는 신자들이 매일 조금씩 목 축이듯이 성서를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일상의 식사처럼 꾸준히 성서를 대하는 것이 끝끝내 하느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힘이 된다고
생각합니다.<BR><B>    황성옥</B> 제가 수녀원에 와서 성서를 공부하고 가르치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내 인생에 가장 잘한 일이 성서 사도직을 하게 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성서를 잡았기에 이만큼이나마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성서의 여정에 발을 들여놓았다는 것이 너무 행복합니다.<BR>    성서를 연구하는 데 어려움은
많지만 모든 사람을 초대하고 싶습니다. 말씀이 처음에는 아무 생명력이 없는 것 같아도 한 번만 도전해 보라고 말입니다. ‘말씀이 너를 흔들어놓을
때까지만 손을 떼지 마라.’ 한 번이라도 흔들린 경험을 하게 되면 말씀과 함께 말씀 속에서 살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BR><B>    이문주</B> 성서에 사람이 빵으로만이 아니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산다고
하셨습니다. 빵과 말씀, 육신의 양식과 영신의 양식이 같이 채워져야 합니다. 조화시키며 살아야 합니다. †
<P align=right><A href="mailto:dongdong@cbck.or.kr"><FONT color=#000000>진행·정리 /
오동춘 기자 </FONT></A></P></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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