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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4-03-21 00:00
오늘의 복음
 글쓴이 : 春雨
조회 : 5,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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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style="MARGIN-TOP: 0px; MARGIN-BOTTOM: 0px"><FONT size=3><FONT face=돋움><네
동생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 왔다.><BR>† 루가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5,1-3.11-32<BR><BR>그때에 세리들과 죄인들이
모두 예수의 말씀을 들으려고 모여들었다. 이것을 본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은 "저 사람은 죄인들을 환영하고 그들과 함께 음식까지 나누고
있구나!" 하며 못마땅해하였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셨다.<BR>"어떤 사람이 두 아들을 두었는데 작은아들이 아버지에게 제
몫으로 돌아올 재산을 달라고 청하였다. 그래서 아버지는 재산을 갈라 두 아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며칠 뒤에 작은아들은 자기 재산을 다 거두어
가지고 먼 고장으로 떠나갔다. 거기서 재산을 마구 뿌리며 방탕한 생활을 하였다.<BR>그러다가 돈이 떨어졌는데 마침 그 고장에 심한 흉년까지
들어서 그는 알거지가 되고 말았다. 하는 수 없이 그는 그 고장에 사는 어떤 사람의 집에 가서 더부살이를 하게 되었는데 주인은 그를 농장으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다. 그는 하도 배가 고파서 돼지가 먹는 쥐엄나무 열매로라도 배를 채워 보려고 했으나 그에게 먹을 것을 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BR>그제야 제정신이 든 그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아버지 집에는 양식이 많아서 그 많은 일꾼들이 먹고도 남는데 나는 여기서 굶어 죽게
되었구나! 어서 아버지께 돌아가,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이제 저는 감히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할 자격이 없으니 저를
품꾼으로라도 써 주십시오 하고 사정해 보리라.' 마침내 그는 거기를 떠나 자기 아버지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BR>집으로 돌아오는 아들을 멀리서
본 아버지는 측은한 생각이 들어 달려가 아들의 목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었다. 그러자 아들은 '아버지, 저는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이제 저는 감히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할 자격이 없습니다.' 하고 말하였다.<BR>그렇지만 아버지는 하인들을 불러 '어서 제일 좋은 옷을 꺼내어
입히고 가락지를 끼우고 신을 신겨 주어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아라. 먹고 즐기자! 죽었던 내 아들이 다시 살아 왔다. 잃었던
아들을 다시 찾았다.' 하고 말했다. 그래서 성대한 잔치가 벌어졌다.<BR>밭에 나가 있던 큰아들이 돌아오다가 집 가까이에서 음악 소리와 춤추며
떠드는 소리를 듣고 하인 하나를 불러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다. 하인이 '아우님이 돌아왔습니다. 그분이 무사히 돌아오셨다고 주인께서 살진
송아지를 잡게 하셨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큰아들은 화가 나서 집에 들어가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버지가 나와서 달랬으나 그는 아버지에게
'아버지, 저는 이렇게 여러 해 동안 아버지를 위해서 종이나 다름없이 일을 하며 아버지의 명령을 어긴 일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저에게는 친구들과 즐기라고 염소 새끼 한 마리 주지 않으시더니 창녀들한테 빠져서 아버지의 재산을 다 날려 버린 동생이 돌아오니까 그 아이를
위해서는 살진 송아지까지 잡아 주시다니요!' 하고 투덜거렸다.<BR>이 말을 듣고 아버지는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모두 네
것이 아니냐? 그런데 네 동생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 왔으니 잃었던 사람을 되찾은 셈이다. 그러니 이 기쁜 날을 어떻게 즐기지 않겠느냐?' 하고
말하였다."</FONT><BR></FONT></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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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style="MARGIN-TOP: 0px; MARGIN-BOTTOM: 0px"><FONT color=blue><FONT face=돋움
size=3>어떤 동기에서 '잃었던 아들의 비유'가 언제나 우리 안에서 깊은 반향을 불러일으키는가? 이 비유는 우리에게 자비로우신 아버지, 당신
자녀들 가운데 하나라도 단념할 수 없으실 정도록 모든 죄인을 염려하시는 하느님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하느님께서는 영원히 개방된 인내심을 지니신
분 이외의 다른 분으로는 축소될 수 없는 온 마음으로 인간을 걱정하시는 분이시다. 이 비유에 나오는 아버지는 돌아오는 탕자를 맞으러 멀리서부터
달려가는 아버지이며, 잃었던 품위를 다시 찾게 하고는 기뻐하는 아버지이다.</FONT></FONT></P>
<P style="MARGIN-TOP: 0px; MARGIN-BOTTOM: 0px"><FONT color=blue><FONT
face=돋움><BR><FONT size=3>우리는 이 비유에서 큰아들의 태도에 주목하여야 한다. 큰아들은 돌아온 동생을 아버지처럼 환영하지
않는다. 그의 태도는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하는 우리 모두의 태도일 수 있다. 우리 중에는 용서받은 죄인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큰아들은 죄인들에 대한 멸시의 감정에서 사랑의 마음으로 넘어갈 수 있어야 한다. 또한 하느님께서는 정확히 셈을 바치게 하시는 분이시라는 생각을
고집하기보다, 구원하기를 바라실 만큼 사랑하시는 아버지시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FONT></FONT><BR><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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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yle="FONT-SIZE: 19px; COLOR: #000000; LINE-HEIGHT: 30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FONT
face=돋움 color=red><STRONG>오늘의 복음 - 오늘미사 주임신부님 강론 중</STRONG></FONT></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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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or=fuchsia><SPAN
style="FONT-SIZE: 19px; COLOR: #000000; LINE-HEIGHT: 30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FONT
color=fuchsia>어느 날 둘째 아들은 자기에게 아버지의 존재가 더 이상 아무 의미가 없다고 생각을 하였다. 홀로서기를 할 수 있고
그래서 나름대로 자신의 삶의 방식에 따라 살고 싶은데 아버지가 방해가 된다고 생각을 한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의 사랑과 보호해주심을 거부하고
자신의 삶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아들은 흥청망청 살다가 돈이 다 떨어지게 되었고 동시에 먹을 것을 제대로 먹지 못해 허기지고,
목마르고, 춥고, 외로운데다 버림까지 받았다. 그러면서 둘째 아들은 자신의 주위에 아무도 없는 홀로되었음을 느끼고 깨닫게 된다. 둘째 아들은
자신이 홀로되었음을 알았고 그래서 아버지 발아래 몸을 던져 자비, 사랑, 보호를 구하기로 마음먹고 아버지의 집을 향하여 몸을 돌렸다. 그런데
그가 발길을 돌린 것은 집과 따뜻한 방, 좋은 옷, 음식이 가득차려 진 밥상 생각 때문만은 아니었다. 둘째 아들에게 있어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그래서 아버지께 되돌아옴은 인생의 온갖 좋은 것은 바로 아버지의 사랑에서 흘러나왔음을 알았고, 느끼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둘째 아들이 아버지께
되돌아와 한 첫마디 고백은 “용서해 주십시오.”가 아니라 “아버지”였다. 이 ‘아버지’라는 칭호는 둘째 아들로 하여금 희망을 가지고 집으로
발길을 돌리게 만든 것이었다. 그 ‘아버지’ 속에서 참된 사랑, 보호, 자비를 발견하였기 때문에 발길을 돌릴 수 있었던 것이었다. 여기에서 둘째
아들은 회개의 삶이 시작되었다. 아버지와의 관계를 회복하고자 마음을 먹었던 것이다. 자신의 이기심 때문에 신앙이 흔들리고, 마음이 흔들려
아버지를 멀리 하였던 이탈에서부터 다시 삶을 정립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버지가 계속 자신을 사랑하고 계심을 알았던
것이다.</FONT></SPAN> </FONT></P>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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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yle="FONT-SIZE: 19px; COLOR: #000000; LINE-HEIGHT: 30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FONT
color=fuchsia>따라서 회개한다는 것 누구나 자신의 고향을 그리워하고, 부모를 그리워하듯 하느님의 사랑과 보호하심을 믿고, 인정하면서
하느님께 대한 그리움을 갖는 것이다. </FONT></SPAN></P>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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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yle="FONT-SIZE: 19px; COLOR: #000000; LINE-HEIGHT: 30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FONT
color=fuchsia><FONT color=fuchsia>우리는 우리 자신이 가장 처절한 고통의 삶을 살았다고 느낄 때 삶, 신앙에 새로운
눈을 뜨게 되기도 하고, 아니면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질 수도 있다. 그런데 가장 처절한 밑바닥의 인생을 맛볼 수 있을 때 생의 어려움을 지혜롭게
극복할 수 있고, 고통을 참아낼 수 있는 인내가 생기는 것이다. 그렇듯이 하느님과 더불어 산다는 것은 고통과 십자가를 통해야 만이 마음의 영토가
넓어진다. 우리가 하느님을 떠나서는 죽음, 고통, 시련, 좌절감</FONT>, 조그마한 일, 시간 앞에서 무력해지고 참혹해질 뿐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회개는 하느님으로부터 멀어감으로 인해 상심하고, 허물어진 마음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FONT></SPAN></P>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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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or=red><SPAN
style="FONT-SIZE: 19px; COLOR: #000000; LINE-HEIGHT: 30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TRONG><FONT
face=돋움 color=blue>“과실을 부끄러워하여라. 그러나 과실을 회개하는 일은 부끄러워하지 말라”(J. J.
루소).</FONT></STRONG></SPAN> </FONT></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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