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눔터 > 나눔방
|
 |
 |
|
작성일 : 04-03-21 00:00
 조회 : 5,588
|
<HTML>
<HEAD>
<STYLE>
BODY, TR, TH, TD { FONT-SIZE:9pt; FONT-FAMILY:굴림; }
P { MARGIN-TOP: 0px; MARGIN-BOTTOM: 0px; FONT-SIZE:9pt; FONT-FAMILY:
굴림; }
</STYLE>
<BODY leftMargin=8 topMargin=4><FONT color=red>
<CENTER>
<TABLE
style="BORDER-RIGHT: #df2020 11px ridge; BORDER-TOP: #df2020 11px ridge; BORDER-LEFT: #df2020 11px ridge; BORDER-BOTTOM: #df2020 11px ridge; BACKGROUND-COLOR: #cccc99"
border=0>
<TBODY>
<TR>
<TD><PRE></PRE>
<TR>
<TD>
<TD width=347 height=560 table>
<TABLE bgColor=blue background=http://and8536.cafe24.com/photo/tangja1.jpg
border=1>
<TBODY>
<TR>
<TD borderColor=white width=347 height=560><PRE><SPAN style="FONT-SIZE: 13pt; FILTER: shadow(color=blue); WIDTH: 520px; HEIGHT: 50px">
<H3><B><CENTER><MARQUEE scrollAmount=1 direction=up height=480 xxxxxxon-MouseOver="stop();" xxxxxxon-MouseOut="start();"><BR><PRE><P aline="left"><FONT face=돋음체 color=white size=2> <UL><UL><UL><UL>
<BR>
♡ 사랑이신 아버지 하느님 ♡
지난 한 주간도 잘 지내셨죠?
오늘은 사순 제4주일입니다.
교회에서는 오늘을 기쁨의 주일
혹은 환희의 주일이라고 합니다.
오늘 우리가 전례에서 듣는 독서들도
한결같이 기쁨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기쁨에로 초대하고 있습니다.
제1독서는 에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이나 광야에서 떠돌이 생활을 하다가
가나안 땅을 차지하고 가나안 땅을 점령한 후
그 땅에서 첫 소출을 거두고 기뻐하는 내용입니다.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느님께 무죄 선언을 받았음을 일깨우면서
기뻐하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복음으로
성서 안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리고 기쁨이 넘쳐흐르는
이야기 중의 하나를 들었습니다.
흔히 ‘탕자의 비유’라고 알려진,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용에 대해서는
얘기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내가 이 이야기에 등장한다면
“나는 큰아들일까? 작은아들일까?”하고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 보십시오.
어떤 답을 얻었습니까?
우리는 쉽게
“나는 작은아들과 같지 않으니까 괜찮다.”
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우리가 괜찮다고 여기는
큰아들은 어떤 사람입니까?
자신의 말대로 큰아들은
여러 해 동안 아버지를 위해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말대로
아버지를 아버지가 아니라 무서운 주인으로 생각하고
그래서 아버지의 부탁을 주인의 명령으로 생각하고
그 명령을 어기지 않기 위해서 종처럼 일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는
아버지의 사랑에 대한 이해가 모자랐던 것입니다.
아버지는 자식을 사랑으로 대하지만
주인은 종을 명령으로 다스리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러니 큰아들은 동생이 돌아왔을 때
아버지가 취한 태도가 못마땅한 것입니다.
그가 생각하는 아버지라면 작은아들이 돌아왔을 때,
“너는 내 뜻을 어겼으니까
내 집에 들어올 필요가 없다.
이제 넌 내 자식이 아니다.
그러니 썩 나가라!”라고
꾸짖으며 내쫓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부모는 자식이
아무리 큰 잘못을 저질렀다 하더라도
자식을 내쫓지 못합니다.
더군다나 잘못했다고 용서를 청하는 자식은
더욱 내쫓을 수가 없습니다.
그것이 부모의 사랑입니다.
큰아들은 2 가지 크게 잘못된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먼저 아버지를 아버지가 아니라
무서운 주인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자신이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기 때문에
잘못한 동생을 용서할 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비유의 아버지는 어떤 사람입니까?
그는 아들의 자유를 최대한 존중합니다.
그리고 집나간 작은아들을 잊어버리지 않고
계속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멀리서도 아들을 알아보고
달려가서 아들을 끌어안았습니다.
그리고 그 아들을 아무런 조건도 없이
모두 용서하십니다.
그리고 이해하지 못하고 토라진
큰아들도 달래십니다.
두 아들을 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아버지이십니다.
비유에 나오는 아버지는 바로 우리 모두를
끔찍이도 사랑하시는 하느님 아버지이십니다.
사도 바오로의 말씀처럼
‘하느님께서는 나의 죄를 묻지 않으시고
그리스도를 내세워 나와 화해하셨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느님께로부터 무상으로
우리의 모든 잘못을 용서받았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랑이신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당신의 아들 딸로 삼아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또한 용서를 베풀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도 쉽게
큰아들과 같이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알게 모르게 지금도
그런 태도로 생활하고 있을 지도 모릅니다.
“내가 지금 같이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잘못을
얼마나 너그럽게 용서하고 있는가?”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이 나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는 말을 했을 때,
혹은 기분을 몹시 상하게 하는 행동을 했을 때,
내가 용서하고 사랑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면
참으로 다행입니다.
그러나 만에 하나라도 내가
그들의 잘못을 쉽게 용서하지 못하고 있다면
우리는 자신과 하느님과의 관계를
다시 살펴봐야 합니다.
우리는 이 복음 말씀을 읽고 묵상하면서,
'나는 큰아들인가 작은아들인가?'
하는 생각에 사로잡혀
자신을 반성하는 데만 시간을 보낸다면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됩니다.
우리는 작은아들이 되어서도 안 되고
큰아들이 되어서도 안 됩니다.
우리는 아버지의 사랑에로 나아가야 하고
사랑이신 아버지를 닮아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도 참된 하느님의 자녀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이신 아버지 하느님께서는
지금도 얼굴 가득 사랑의 미소를 머금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작은아들인 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십니다.
나에게 잘못한 사람을 쉽게 용서하지 못하는
큰아들인 내가 당신의 사랑을 체험할 수 있도록
지금도 팔을 벌리고 기다리십니다.
내가 당신께 나아가기만 하면
꼭 안아주시기 위해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작은아들의 뉘우치는 마음과
아버지의 사랑을 닮을 수 있는 은총을 청하면서
오늘 우리의 미사를 봉헌합시다.
우리가 사순절을 통해서 이러한 기쁨을 누린다면
우리가 맞이할 그리스도 부활 대축일은
곧 우리 자신들의 부활이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기쁨을 누리기 위해,
우리 자신들의 부활을 누리기 위해
한 주간 동안 사랑이신 아버지를 닮아
모두를 용서하고 사랑하도록 노력합시다.
아 멘 !
*^&^* 한티 영성관에서 안드레아 신부 드림 ^t*
</UL></UL></UL></UL></FONT><CENTER></CENTER></PRE><CENTER></CENTER></B><H3></H3></SPAN><PRE></PRE><CENTER></CENTER></B><H3></H3></SPAN><PRE></PRE><CENTER></CENTER></B><H3></H3></SPAN><PRE></PRE></CENTER></B></H3></SPAN></PRE></TD></TR></TBODY></TABLE></TD></TR></TBODY></TABLE><EMBED
src=http://www2.mariasarang.net/files/m_music/wish_1.mp3 hidden=true
type=audio/mpeg loop="-1" autostart="true">
<CENTER><BR></CENTER></CENTER></FONT>
</BODY>
</HTML>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