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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4-06-07 00:00
 조회 : 5,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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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 class=title2 align=middle>한국 가톨리시즘의 현재(9) / 다원문화</TD></T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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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MG src="http://www.catholictimes.org/file/BBS-9/upload/2400110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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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한국 종교문화 , 포괄적 유일신론·범신론적 무신론·배타주의적 신앙 공존 <BR><BR>하느님 부정하는 질문에 포괄적인 반박논지
펼쳐 <BR><BR>도올과 추기경 <BR>수년전 김수환 추기경은 KBS에서 도올 김용옥이 맡고 있는 논어 강의 프로에 초대 손님으로
출연하셨다. 그 때 「가톨릭신문」은 이를 이렇게 보도했다. <BR>『김수환 추기경이 그리스도교의 인간관과 공자의 인간관에 대해 2시간
동안 국민들에게 강연했다. 김 추기경은 4월 24일 오후 4시 서울 여의도 KBS 본관에서 공개 녹화로 진행된 「도올의 논어
이야기」에 특별 출연해 「공자는 하느님이 계시고 그 하느님의 뜻인 천명을 알 때에 비로소 이상적 인간인 군자가 될 수 있다고
보았다」고 지적하고 「공자는 하느님을 떠난 인간은 있을 수 없고 하느님을 부정한 인간관도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 점에서
그리스도교의 인간관과 공자의 인간관은 충분히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가톨릭신문」, 2001년 5월 6일).
<BR>여기서 인용된 추기경의 말씀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전후 맥락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위 내용은 도올 김용옥의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도올은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추기경의 답변을 유도했다. <BR>『나도 신(神)을 믿습니다. 그러나 그 신이
인격신(人格神)이라는 점에서는 회의적입니다. 추기경님께서는 이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BR>짧은
질문이었지만 숨은 의도가 깔린 질문이었다. 인격신에 대해 회의한다는 것은 유일신, 나아가 삼위일체 하느님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며,
따라서 창조주 하느님을 부정한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결국 도올은 이 말을 통해 이 세상은 창조된 것이 아니라 그냥 있는 것이며,
신(神)은 따로 존재하는 분이 아니라 우주 안에 편만하게 존재하는 신성(神性)일 따름이라고 주장한 셈이다. <BR>추기경께서는 이
물음에 우회적으로 답하셨다. 추기경께서는 그리스도교에서 인간의 최종 목표는 하느님과 하나가 되는 것이며 이런 점에서 공자의 천인합일
사상과 연결된다고 말씀하셨다. 또 그 일치에 이르는 길이 그리스도교에서는 「사랑」이라 하고 유교에서는 「인」(仁)으로 보기 때문에
서로 통하는 점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BR>이러한 답변은 얼핏 들으면 도올의 질문에서 비껴간 듯이 들리지만, 실제로는 도올이 평소
주장하던 바를 포괄적으로 반박하는 논지였다. 그 까닭은 이렇다. 평소 도올은 논어(論語) 속에 분명히 형이상학적(形而上學的) 진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이들을 거부하거나 외면하여 왔다. 그래서 천명(天命)이나 천인합일(天人合一)을 위한 군자(君子)의 노력, 그
일환으로서의 인(仁)의 형이상학적 의미에 대해서는 아예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으로 폄훼하였다. 자기 마음에 드는 내용만 과장되게
부각하면서 논어 전체의 틀을 왜곡한 것이다. 그런데 김추기경께서는 도올이 의도적으로 회피하던 천(天), 천명(天命), 인간 존엄의
천부성(天賦性) 등에 대하여 명백하게 언급하셨던 것이다. 이는 결국 도올의 사상에 대한 포괄적인 비판인 동시에 인격천(人格天)에 대한
설파인 셈이었다. <BR>요컨대, 추기경께서는 서슬 퍼런 범신론적 무신론의 칼을 들고 빈틈을 노리던 저 논객(論客)을 매정하게 되받아
치지 않고 포용하시면서 논박하셨다. 그리고 하느님의 대자대비하신 구원섭리에 대한 확신에서 『인간으로서 참되게 사는 사람은
「하느님」께서 다 구원해 주신다!』는 맺음말을 하셨다. 필자가 이해하기로 이 마지막 진술에는 분명 칼 라너의 「익명의 그리스도인」
사상이 깔려있었다. 즉, 표면상으로는 예수를 믿지 않더라도 내용적으로 곧 삶으로 예수를 믿는 이는 누구든지 「익명의 그리스도인」이라
불릴 수 있으며, 이런 사람은 구원에서 제외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상이 바닥에 흐르고 있었다. 이에 대하여 앞으로 자세히 언급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BR><BR>추기경과 개신교 <BR>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추기경의 이 발언에 대하여 개신교계에서 두 가지
극단적으로 상반된 반응이 일었다는 사실이다. 성균관 대학에서 유학을 전공한 배요한 목사(당시 예장통합 군목)는 100분간의 토론에서
추기경께서 원숙하게 도올을 상대하셨던 점을 높이 평가하였다. <BR>『79세의 노령임에도 불구하고 동양고전에 대한 나름대로의 구성적인
이해와 이 사회의 문제, 신앙의 문제를 연관해서 말하는 그의 태도는 사회의 어른으로서의 원숙함과 진지함이 담겨 있었다고 평가하고
싶다』(국민일보 2001-04-28) <BR>배목사는 도올은 「이 사회에서 존경받는 어른 중의 한 사람인 김추기경을 내세워」 자신의
이미지 관리를 하려 했던 반면에, 김추기경께서는 「차분하고 조리있게 그리고 때로는 유머도 섞어가면서」 도올의 저의를 「참담한 실패」로
돌렸다고 결론지었다. <BR>이에 반하여 일부(제발 그러기를!) 개신교신자들은 도올과 추기경의 전체 대화에 관심 갖기 보다는 추기경의
마지막 발언만 뚝 떼어 내어 이를 종교다원주의(religious pluralism)로 매도하였다. 이런 관점은 의학박사 차한의
「성경으로 세상보기」(도서출판 건생)에 잘 소개되어 있다. 추기경의 발언에 대한 비판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차한은 한걸음 더
나아가 알렉산더 히스롭의 저술 「두 개의 바빌론」(The Two Babylons)를 인용하며 추기경의 종교다원주의적 발언이 단지
바빌론 신비종교와 혼합하여 사탄의 하수인이 된 가톨릭교회의 공식입장을 재확인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못 박는다. <BR>여기서 우리는
오늘날 한국 종교문화의 한 단면을 만난다. 곧 세 가지 다른 입장이 팽팽한 긴장 속에서 공존하고 있음을 본다. 도올의 범신론적
무신론, 김추기경 및 배요한 목사의 포괄주의적 유일신 신앙(분명히 추기경의 진술은 이 입장이다! 그리고 개신교에도 이 입장을 취하는
신학자들이 많이 있다!), 추기경의 관점을 종교다원주의로 매도하는 일부 개신교인의 배타주의적 신앙이 그것이다. <BR>이로써 우리는
다원문화의 지대에 들어선 셈이다. 앞으로 우리는 이 지대에서 얼마간 머무를 것이다. <BR><BR><BR><BR>사진설명 <BR>한국
종교문화에는 세 가지 다른 입장이 팽팽한 긴장 속에서 공존하고 있다. 사진은 2001년 4월 24일 오후 4시 서울 여의도 KBS
본관에서 공개 녹화로 진행된 「도올의 논어 이야기」에 특별 출연한 김수환 추기경.
<BR></P></TD></TR></TBODY></TABL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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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 class=title2 align=middle>한국 가톨리시즘의 현재(10) / 다원문화 - 도올 사상에 대한 가톨릭적
비판(1)</TD></T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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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 class=n2>마음에 상처주는 엉터리 사상 <BR>그리스도교 죽이기 선동적 언사 난무 <BR>반박할 ‘언어’ 바로 볼 ‘눈’
제공할터 <BR><BR>도올 김용옥의 칼춤 <BR><BR>다시 도올 김용옥 이야기이다. 요즈음 MBC TV의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제목의 특강에서 도올은 19세기말 최한기라는 인물의 기(氣) 사상에 기대어 자신의 기철학을 강의하고 있다. 그는 「기」가 우주만물의
운행의 원리이며 모든 존재의 궁극적 근거라고 주장한다. 한마디로 그에게 「기」는 신(神)이다. 기가 신이기 때문에, 창조주(創造主)
하느님을 믿는 그리스도교의 신앙은 「엉터리」에 지나지 않는다. <BR>바로 몇 주 전 도올은 자신의 강의에서 『그리스도교가 믿는 신은
관념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망발을 해댔다. 당시 강의의 분위기를 잠깐 재연해보면 이렇다. 신존재를 부정하는
대목에 이르자 도올은 칠판에 우주의 경계선을 긋고 핏대를 올리고 침을 튀기면서 말한다. <BR>『어떻게 이 우주 밖에 「창조주」
하느님이 따로 존재할 수 있느냐 이 말야! 도대체 어디…?』 <BR>이어서 도올은 마치 그리스도교를 깨부수려고 작정을 한 듯이 유일신
신앙을 나름대로는 조목조목 부정해간다. 그러면서 방청객을 향해 그의 범신론적 무신론을 설파한다. 화면에 비친 방청객의 반응은 이미
비판력을 상실한 추종자의 모습들일 뿐이다. <BR>이 정도는 약과이다. 그 이후의 강의에서 그리스도교를 제물로 삼은 도올의 칼춤은
극에 달했다. 도올은 자신의 무신론을 강변하기 위하여 니체(Nitzsche)를 끌어들였다. 그는 철학사에서 전후맥락과 니체가 차지하는
위상에 대한 객관적인 진술은 생략한 채(이런 식이 늘상 그의 방식이었다!) 그의 「신은 죽었다」는 말만 뚝 떼어 인용하면서 또 다시
그리스도교를 공격하였다. 그는 니체의 「땅에 충실하라(Bleibt der Erde!)는 말에 기대어 내세(천국), 초월, 은총,
믿음, 희망 따위를 말하는 자는 저주받아 마땅하다는 논지의 열변을 토했다. 어느새 니체의 초인(超人)사상은 요즈음 젊은층이 집착하고
있는 몸가꾸기, 수행, 수련에 대한 두둔에 원용되고 있었다. 방청석의 분위기로 보아 하느님, 영혼, 신앙 따위는 이미 설자리를 잃고
있었다. <BR>이렇듯이 도올이 하도 막무가내로 그리스도교를 비판하고 나서니까 몇 년 전 한 네티즌이 인터넷상에 다음과 같은 「도올의
출사표」를 올리기도 하였다. <BR>『지금이요! 천하 13종교 가운데 기독교는 이미 3대를 거쳐 국민종교로 자리매김 하였소! 지금
이를 치지 못하면 우리 유교는 자멸하고 말 것이요! 나는 이걸 치기 위해서는 유교의 재해석에 달려 있다 생각하고 82년 귀국 이래
고전번역 작업에 몰두하였소! 이는 내 필생의 과업이며 내가 동양철학에 들어갈 때부터의 계획이었소! 이 사태를 바꾸지 못하면 내가
태어난 보람은 없는 것이오!』 <BR>도올이 이렇게 자신의 의도를 공개적으로 말했다는 것이다. 인터넷상에 오른 글이기에 이 말의 표현
자체의 진위(眞僞)여부는 논란의 여지가 있겠으나 필자에게는 그의 그간의 행태로 보아 내용은 사실과 능히 부합하는 것이라고 보인다.
<BR>그가 저렇게 명백하게 밝힌 바와 같이 도올의 공격 표적이 그리스도교인 것은 틀림이 없다. 이점에서 도올의 생각은 요즈음 알게
모르게 확산되고 있는 신흥영성 계열의 사상과 같은 맥락에 있다. 어떤 이름을 내걸었든지 이들 신흥영성가들은 유일신, 창조신, 인격신을
거부한다. <BR>문제는 도올의 강의가 대단히 선동적이라는 사실이다. 그의 선동적인 강의는 결국 그러지 않아도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
하에서 죄책감 없이 속 편하게 살기 위하여 「신」의 존재를 부정할 핑계거리를 찾고 있던 20~30대 젊은이(물론 나이 들은 팬들도
포함됨)들에게 구원의 「기쁜 소식」이 되고 있다. 도올은 당연히 메시아가 되는 셈이다. <BR><BR>도올 비판에 부쳐
<BR><BR>안타까운 것은 가톨릭 신자들 가운데 도올의 팬이 제법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정작 도올이 무엇을 주장하고 있는지
이해하지도 못하고서, 그의 파격적인 언사에 홀려 박수를 보낸다. 그가 그리스도교를 근본에서부터 부정하고, 중세철학의 흐름을 논하는
중에 가톨릭 철학을 언급하면서 당시 가톨릭 사제들을 싸잡아 「서양 신부새끼들」이라는 육두문자를 불사하고, 예수가 「창녀의
소생」(노자와 21세기(3), 65쪽)이라는 막말까지 해가면서 예수 그리스도고 성모 마리아고 간에 닥치는 대로 폄하하는 악취미를
가지고 있는 궤변론자인 것을 알지도 못하면서 말이다. <BR>도올의 안하무인격인 「그리스도교 죽이기」 언사에 대하여 그동안
개신교계에서는 다양한 반론의 목소리가 있어왔다. 그러나 가톨릭교회 측에서는 거의 공적인 반응이 없었다. 아마도 『그러다가 제풀에
꺽이겠지』하는 식의 방관이었지 않나 싶다. <BR>그런데 요즈음 필자는 「침묵」이 최선의 방안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피해상이 여기저기서 감지되고 있기 때문이었다. 필자는 성균관대 유교학과 학장 이기동 교수가 「도올 논어 바로보기」라는 비판서의 서문에
밝힌 논지에 크게 공감한다. 이기동 교수는 도올의 강의를 「돌팔이 약장수」가 「엉터리」 약을 시중에 유포시키는 것에 비유한다.
『엉터리 약은 몸을 상하게 한다. 그러나 엉터리 사상은 마음을 상하게 한다. 마음이 상하는 것은 몸이 상하는 것에 비해 그 해로움이
더욱 심하다』(7쪽) <BR>이에 필자는 앞으로 몇 번에 걸쳐 도올의 사상에 대한 가톨릭교회 사목자로서의 소견을 밝히고자 한다.
대체로 필자는 총론적으로 도올을 비판해 볼 것이다. 각론 즉 서양철학, 신학, 동양철학(그중에서도 노자, 유교, 불교) 등의 영역을
넘나들며 「럭비공」 튀듯이 그가 한 발언들에 대한 평가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BR>다만 필자와 같이 책을
읽다가 「이건 안닌데」하는 생각이 들고, TV 강의를 듣다가 「저건 아닌데」하는 마음은 들지만 통쾌하게 반론을 제기하지 못하는 가톨릭
신자들을 위해 할 수 있을 만큼만 식별을 위한 「정보」를 드리고자 한다. 그의 쾌도난마식 그리스도교 죽이기 작태에 대해 통분하고 있는
가톨릭 신자들에게 반박할 「언어」와 문제를 직시할 「눈」을 제공하는데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BR><BR></TD></TR></TBODY></T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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