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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4-08-14 00:00
 조회 : 5,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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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c="http://www.mariasarang.net/files/pictures/성모님_1.jpg" border=0></P>
<P><FONT color=navy size=3></FONT> </P>
<P><FONT color=navy size=3>오늘은 성모 승천 대축일입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셨듯이 성모님도 그 생애의 종말에
하늘에 올림을 받으셨다는 것을 기념하는 축일입니다. 승천이라는 단어는 하느님이 계시는 하늘이 있고, 우리가 사는 땅이 있으며, 땅
아래에 죽은 이들이 가는 어둠의 나라가 있다고 생각하던 시기에 사용되던 단어입니다. 오늘 우리는 우주가 그렇게 삼 층으로 되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오늘의 축일은 성모님이 그 생애 종말에 하느님에게 가신 사실을 기념하는 날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과 같이 성모님도 하느님에게 가신 것입니다. <BR><BR>신약성서는 성모님에 대해 알려주는 것이 많지 않습니다. 오늘 복음은
성모님이 엘리사벳을 방문하셨다고 말합니다. 가브리엘 천사로부터 예수 탄생에 대한 예고를 받고 즉시 길을 떠나 엘리사벳을 찾아갔습니다.
예수님의 길을 준비하기 위하여 하느님이 세례자 요한을 보내셨다고 믿는 초기 교회입니다. 따라서 복음서는 예수의 탄생 예고를 요한에게
먼저 알리기로 한 것입니다. 마리아를 맞이한 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은 말합니다. “문안의 말씀이 내 귀를 울렸을 때에 내 태중의
아기도 기뻐하며 뛰놀았습니다.” 요한에게 알리기 위한 마리아의 방문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은 마리아와 엘리사벳 두 여인의 만남을 기쁨과
축복과 찬미의 장면으로 묘사하였습니다. 초기 교회가 예수님의 탄생을 생각할 때 느끼던 기쁨이고 축복이며 감탄입니다.
<BR><BR>오늘 복음에 나오는 ‘마리아의 노래’는 예루살렘의 그리스도 공동체가 예배에서 사용하던 것입니다. 그들은 이 노래를
구약성서 표현들을 가져와서 만들었습니다. 루가 복음서를 집필한 사람이 그것을 채집하여 마리아의 노래라고 오늘의 복음에 담았습니다. 그
내용은 하느님이 자비하셔서 사람들의 운명이 바뀐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권세 부리는 이와 부요한 이가 있고 비천한 이와 굶주리는
이가 있지만, 하느님의 자비가 나타나면 사람들의 운명이 달라진다는 뜻입니다. 하느님의 자비는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모든 차별을
철폐하신다는 것입니다. 초기 교회 전례가 하느님의 자비를 찬미하는 노래입니다. <BR><BR>복음서들은 예수님 안에 우리의 구원이
주어졌다는 사실을 말하기 위해 기록되었습니다. 복음서들이 마리아에 대해 언급할 때는 성모님을 찬양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어진 구원이라는 것을 말하려는 의도에서 언급된 성모님의 이야기입니다. 요한복음서는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당신의
어머니와 제자를 보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보십시오.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보시오. 그대의 어머니이시오.” 예수님은 당신의
어머니와 당신이 사랑하시는 제자 사이를 모자 사이로 만드셨다는 말입니다. 어머니는 아들의 운명을 자기 것으로 합니다. 따라서
복음서들은 신앙인이 지녀야 하는 자세와 신앙인의 운명을 말하기 위해 성모님을 이야기 합니다. <BR><BR>루가복음서는 가브리엘
천사가 예수의 탄생을 예고하였다고 말하면서, 마리아가 “보십시오,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 바랍니다”(루가
1,38)라는 말씀으로 영접하였다고 기록하였습니다. 신앙인은 이렇게 하느님의 말씀을 기꺼이 영접한다는 뜻입니다. 요한복음서 2장에는
가나 촌의 혼인 잔치 이야기가 있습니다. 성모님은 이 잔치에서 물을 술로 바꿀 것을 예수님에게 암시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어머니의 청을 받아들여 좋은 술을 공급하여 사람들을 기쁘게 하셨습니다. 이 이야기는 유대교가 술 떨어진 잔치 집과 같이 따분하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성모님은 예수님에게 희망을 둔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청을 들으시어 하느님의 자비와 용서와
사랑에 대한 기쁨을 체험하게 하셨다는 말입니다. <BR><BR>교회도 복음서들의 이런 정신을 이어받아 그리스도 신앙인의 운명을 새롭게
말할 필요가 있을 때, 성모님에 대해 말합니다. 19세기 들어서면서 유럽 지식인 사회를 강타한 철학적 합리주의는 하느님이 이 세상의
일에 초자연적으로 개입하시지 않는다고 가르쳤습니다. 그 합리주의는 하느님은 인류역사 안에 계시하시지도 않고 섭리하시지도 않는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교회는 이런 주장에 맞서서 하느님이 인류역사 안에 초자연적으로 개입하신다고 말해야 했습니다. 교회는 1854년
성모님의 원죄 없으신 잉태를 믿을 교리로 선포하였습니다. 성모님은 예수님의 어머니가 되기 위해 하느님의 특별한 배려로 원죄에 물듦이
없이 출생하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교회가 말하고자 한 것은 하느님이 인류역사 안에 초자연적으로 개입하신다는 것입니다.
<BR><BR>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성모승천 교리도 성모님이 하늘로 올라가셨다는 사실을 긍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축일은 1950년
11월 1일에 선포되었습니다. 20세기 전반부에 인류는 두 번의 세계대전을 치렀습니다. 유럽은 그 전쟁의 폐허와 인간의 잔혹함을
똑똑히 보았습니다. 인류의 미래는 없는 것 같이 보였습니다. 이 두 번의 세계대전은 그리스도 문화권 안에서 일어났습니다. 사랑의
복음이 선포되는 땅에서 서로 미워하고 파괴하고 죽인 것입니다. 독일의 그리스도인들이 힘을 합쳐서 유대인 600만 명을 학살하였습니다.
인간 생명의 존엄성은 사라지고 인류는 쓰레기와 같이 비하되었습니다. <BR><BR>이렇게 인간성이 파멸된 폐허를 딛고 서서 유럽
교회는 인간의 존엄성을 말해야 했습니다. 인간의 미래는 하느님 안에 있다는 사실을 천명해야 했습니다. 성모님의 승천 축일은 우리 인간
운명이 하느님 안에 있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인간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인식은 충분하지 못합니다. 전쟁도 있고 핵의
위협도 있습니다. 현재 지구가 겪고 있는 환경오염은 우리 후손이 살 수 없는 자연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오늘도 인간 생명은
존중받지 못합니다. <BR><BR>오늘 복음에서 들은 ‘마리아의 노래’는 자비의 노래입니다. 하느님의 자비가 우리의 운명을 바꿀
것이라는 노래입니다. 하느님의 자비가 우리 안에 살아 있도록 살자는 노래입니다. 성모님이 하느님 안에서 그 생애의 종말을
맞이하였듯이, 우리도 하느님의 자비 안에서 완성되는 삶을 살겠다는 노래입니다. 하느님이 우리 생애를 완성시키는 분이시면, 우리는
지금부터 그분의 자비를 배워서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자비롭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자비를 배우면 우리도 그 자비를 실천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 (서공석 신부)</FONT>
<BR></P></TD></TR></TBODY></TABL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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