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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4-08-18 00:00
 조회 : 8,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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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align=center><IMG style="CURSOR: h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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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BR><BR> </P>
<P align=center> </P>
<P><BR><BR>성 비오 사제는 1887년에 이탈리아 피에트렐치나에서 태어나, 카푸친 수도회에 입회한 뒤
1910년에 사제로 서품되었다. <BR>끊임없는 기도와 겸손으로 하느님을 섬겼으며, 1918년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50년 동안 예수님의 오상을 몸에 간직하며 살았다고 한다. <BR>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2002년6월
16일에 그를 성인품에 올렸다. <BR><BR></P>
<P align=center><IMG style="CURSOR: hand"
src="http://home.catholic.or.kr/gnbbs/ncbbs.dll/chinchang/-/b/1379/0923Padre%20Pio.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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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align=center><BR><BR><FONT color=black><BR><STRONG><FONT
color=#0000ff size=3>오상의 비오 신부님</FONT></STRONG> </FONT></P>
<P align=center> </P><FONT color=black>
<P><BR>1. 2002년 6월 16일, 오상의 비오 신부님(1887-1968년)이
시성되셨다. <BR><BR><BR></P>
<P align=center><IMG style="CURSOR: h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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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BR>피에트렐치나(Pietrelcina) 출신의 비오 신부님은 1968년 9월 23일에 81세로,
<BR>이탈리아 동부에 위치한 산조반니 로톤도(S. Giovanni Rotondo)의 수도원에서 돌아가셨다.
<BR>비오 신부님은 카푸친회 수도사제로서 반세기 동안 어떠한 의학적 치료나 과학적 설명을 찾지 못한
오상(五傷)을 지니고 사셨다. <BR>손바닥에 난 작은 동전 크기의 구멍에서, 그리고 발과 가슴에서는 피가
배어나왔다. <BR><BR></P>
<P align=center><IMG style="CURSOR: h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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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BR><BR>수많은 기적적인 병치유가 이 수도사제의 간구를 통해서 이루어졌고, 예언, 신비한 향내, 두
곳에 동시에 존재하는 현상, 공중 부상 등 설명할 수 없는 현상들이 증언되고 있다. <BR>태어날 때부터
눈동자가 없어 볼 수 없었던 소녀 젬마 양이 보게 된 것이라든지, 다이너마이트 폭발로 실명한 오른쪽 눈으로 다시
보게 되었다는 조반니 사비노의 기적적 치유는 과학으로 설명이 불가능한 이야기들이다. <BR><BR></P>
<P align=center><IMG style="CURSOR: h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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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BR><BR>2. 세계 각처에서 수십만의 순례자들이, 어려운 여행에도 아랑곳없이 비오 신부님을 뵙고자
산조반니 로톤도를 찾아온 것은, 단지 기적을 찾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BR>사실 수많은 순례자들은 근본적으로
영성적 동기 때문에 비오 신부님 주변에 모여들었다. <BR>대부분 고해성사를 보고, 영적 지도와 미사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BR><BR></P>
<P align=center><IMG style="CURSOR: h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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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align=center><IMG style="WIDTH: 249px; HEIGHT: 269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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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align=right> </P>
<P align=center><IM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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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align=center> </P>
<P><BR><BR>내 개인적으로도 그분을 찾는 첫번째 이유는 그분의 모습에서 예수님을 더욱 가까이 느끼기
때문이다. 그분의 삶은 그리스도인뿐만 아니라 많은 현대인에게 하느님의 현존을 느끼게 하고, <BR>십자가의
예수님이 단순히 기억 속에서가 아니라 시공을 초월한 현재에 살아계심을 놀랍게 증거하였다. </P>
<P><BR></P>
<P align=center><IMG style="CURSOR: h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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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align=center><IM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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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P>
<P><BR>그러하기에 역대 교황님들도 큰 사랑으로 비오 신부님을 대하셨는데, 1921년 교황 베네딕토
15세께서는 비오 신부님을 "참으로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불렀고, 교황 비오 12세께서는 신부님은 돌아가시기
전부터 성인이셨음을 우리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라고 전한다. <BR>그리고 교황 바오로 6세께서는 비오
신부님을 "우리 주님의 오상을 뚜렷이 잘 나타내신 분"이라고 했는데, 그분의 삶을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들은 같은
증언들을 아끼지 않았다. </P>
<P><BR></P>
<P align=center><IMG style="CURSOR: h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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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P>
<P><BR>3. 반세기 동안, 비오 신부님은 하루의 대부분을 고해소 안에서 보냈다. <BR>선종하기 직전인
1967년에는 만오천 명의 여자와 만 명의 남자에게 고해성사를 주었다고 한다. <BR>사실 신부님에게 고해성사를
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BR>왜냐하면 며칠씩 차례를 기다려야 했고 참다운 회개와 통회가 선행되어야
했기에 적어도 편안하고 친절한 만남은 아니었다. </P>
<P><BR></P>
<P align=center><IMG style="CURSOR: hand"
src="http://home.catholic.or.kr/gnbbs/ncbbs.dll/chinchang/-/b/1379/0923San%20Pio%20da%20Pietrelcina%2019.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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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P>
<P><BR>비오 신부님은 신중하지 않은 이에게는 엄격하여 적지 않은 사람들을 그냥 집으로 돌려보냈다.
<BR>물론 대개는 몇 달 또는 며칠 뒤에 되돌아와 진정으로 뉘우치며 고해성사를 보았고, 그로 인하여 삶 자체에
변화를 가져오게 했다 </P>
<P><BR></P>
<P align=center><IMG style="CURSOR: h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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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P>
<P><BR>이러한 영성 지도에서 그분의 모든 위대함이 드러나는데, 그는 독특한 지도 방법과 영혼들의 고뇌에 그
자신이 함께함으로써 삶을 변화시켰다. <BR>다음의 말씀이 그 일면을 잘 보여준다. <BR>"그리스도인 생활이란
자신과의 끊임없는 투쟁 이외의 아무것도 아닙니다." </P>
<P><BR></P>
<P align=center><IMG style="CURSOR: h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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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P>
<P> </P>
<P>4. 또한 매일 새벽 4시 30분에 시작하여 1시간 반 정도 집전하는 미사는, 희생 제물이신 그리스도와
같아지려는 그의 영성의 절정이었다. <BR>밤 1시부터 사람들은 성당 문이 열릴 때까지 서서 기도하며 기다린다.
<BR>멀리서 온 그들은 하룻밤을 설치는 고통도 마다하지 않고, 비오 신부님이 미사를 봉헌하는 동안 제대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자리를 잡으려는 것이다. <BR>때문에 성당 문이 열리면 성당은 이내 신자들로 꽉 차고,
신부님의 열정 어린 미사는 때론 두 세 시간씩 계속되곤 하였다 </P>
<P><BR></P>
<P align=center><IMG style="CURSOR: h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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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align=center><IM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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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P>
<P><BR>비오 신부님의 눈에는 자주 눈물이 고여있었고, "왜요?"라는 물음에 그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나는
미사 드리기에 합당치 않은 사람이오."라고 대답하시는 것이었다. <BR>미사 때마다 양손의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가 제대포에 떨어지곤 하였는데, 온몸으로 십자가의 제사를 재현하는 미사에 대한 그분의 열정은 다음의 말씀에서
잘 드러난다. </P>
<P><BR></P>
<P align=center><IMG style="CURSOR: h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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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P>
<P><BR>"세상은 태양이 없어도 존재할 수 있지만 미사 성제 없이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BR>제대
건너편에는 자주, 멀리서 온 순례자들이 감동을 억제하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며 <BR>"아, 제가 하느님을 이렇게
늦게서야 알게 되다니." 하며 회개하곤 했다. </P>
<P><BR></P>
<P align=center><IMG style="CURSOR: h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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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P>
<P><BR>5. 비오 신부님의 시복시성을 위한 긴 소송은 1969년에 시작되어 1999년 5월 2일 시복식을
거쳐 2002년 6월 16일로 막을 내렸으나 그분의 사도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BR>아니 이제 시작되었다.
나는 한국 천주교회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들이, 그리고 타종교인과 믿지 않는 이들이 비오 신부님을 통하여
열성을 회복하고 예수님을 이 시대에 새롭게 만나는 일이 확산되리라 믿는다. </P>
<P><BR></P>
<P align=center><IM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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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P>
<P><BR>"나는 이 세상에 있을 때보다 세상을 떠난 뒤에 더 많은 일을 할 것입니다." <BR>하신 비오
신부님이 그 약속을 이 땅에서 이루어가시리라 믿는다. <BR>성인께서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하심으로 영혼들을
하느님께로 인도하셨듯이, 이제 부활하신 예수님과 일치하심으로 이 땅의 더 많은 영혼들을 특히 북녘 땅의 영혼들을
하느님께로 인도하시리라 믿는다. </P>
<P><BR></P>
<P align=center><IMG style="CURSOR: h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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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P>
<P><BR>"나는 고통을 사랑합니다. 고통을 위한 고통이 아닙니다. <BR>나는 하느님께 고통을 받을 수
있기를 간청했고, 그 고통에서 생겨나는 열매 때문에, 또 그것을 통하여 하느님께서 주시는 영광 때문에 고통을
열망합니다. <BR>내 고통을 통하여 우리 형제들이 구원되고, 불쌍한 연옥영혼들의 고통이 단축될 것입니다."
<BR><FONT color=blue><BR>-송열섭 가시미로, 청주 용암동 성당 주임신부, 경향잡지,
2002년 11월호에서- </FONT></P>
<P><FONT color=#0000ff></FONT> </P>
<P><FONT color=blue><FONT color=brown> </P>
<P><BR></P>
<P align=center><IMG style="CURSOR: h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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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P>
<P><BR>♬14.Canto Gregoriano-Verbum Caro Factum Est
<BR><BGSOUND balance=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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