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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3-07-22 00:00
 조회 : 5,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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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2일 화요일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기념일
성서에 보면, 예수님의 공생활을 통해서 수많은 이들이 예수님의 수많은 천상 신비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수많은 기적들도 보았습니다.
장님, 문둥병, 마귀들린 이, 열병 등 수많은 병의 완쾌의 은혜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어려움에 처했을 때, 즉 십자가에 처형될 때, 은혜 받았던 그들의 보답은 과연 무엇으로 표현했습니까?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의 고통을 같이한 이들은 누구들이었습니까?
그렇지만 오늘 축일을 지내는 막달레나처럼 주 예수께 대한 사랑에 열렬하거나 몰두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녀는 로마 군대의 창과 칼 앞에서 예수님의 추종자라는 죄목으로 죽을지도 모르는 두려움도 아랑곳없이 사랑과 용기를 가지고 예수님의 십자가 밑에 서 있었고 그분의 비참한 죽음을 지켜봤습니다.
막달레나의 주 예수께 대한 사랑의 모습은 성서 여러 곳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복음서의 인물 가운데 죄 많은 여자의 대명사처럼 막달레나를 볼 수 있지만, 예수님께서는 또 복음서를 쓴 저자들은 왜 그러한 행실의 여인을 그다지도 예수님 가까이 놓고 있겠습니까?
우리 같으면, 사실 그렇다 해도 창피하다고 해서 멀리 하거나, 기록으로 남기지 않으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서는 그녀의 죄스러운 면과 회심하여 주 예수님께 바친 사랑과 열의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진정 우리는 막달레나의 모습에서 어느 면을 얼마만큼이나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우리는 막달레나보다 죄를 덜 지었기에, 예수님이 그렇게까지는 나에게 필요치 아니하고, 막달레나처럼은 안 살아 왔기에 그만한 열성과 사랑이 없어도 부활하신 주 예수님과 기쁨을 같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하느님은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부활하신 예수”를 제일 먼저 만나게 하는 영예와 기쁨을 주셨습니다.
그녀는 예수님을 십자가의 죽음에게 빼앗긴 뒤 무덤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주님의 시체는 없었습니다.
막달레나는 그곳에서 스승을 잃은 슬픔에 잠겨 울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표현이지만, 사랑하는 이를 잃고 슬퍼하는 마음을 찌르는 애절한 표현입니다.
그녀는 자기 앞에 서 있는 이가 동산지기인줄 알고 “당신이 그분을 옮겨 가셨거든 어디 두었는지 가르쳐 달라”고 합니다.
그것이 그녀이 단 한 가지 소원이었습니다.
주 예수님만을 찾는 그의 사랑의 고백이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마리아!”하고 부르십니다. 마리아는 “선생님!”하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뵙는 더 할 수 없는 기쁨을 누리는 장면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복음을 들을 때, 신?구약 성서와 교회의 가르침을 통해 하느님 말씀을 그렇게 많이 듣고, 체험한 우리는 주 예수님을 얼마나 사랑하며 찾고 있는가?
생각 해 봄이 좋겠습니다.
찾고 애태우는 정이 없으면 만나는 기쁨도 없을 것이고, 애태우며 찾는 사랑의 정이 크면 클수록 만나는 기쁨도 더 클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도 기억하는 신앙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대화후광 신부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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