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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8-04-20 11:32
신의 실존(선교활동 참고자료 : 해설 및 추가)
 글쓴이 : 이요한
조회 : 6,755  
   신의_실존.hwp (32.0K) [68] DATE : 2008-04-20 11:32:58
                    신의 실존(토마스 아퀴나스: 1225-1274)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을 좇아서, 만물을 형상과 질료의 합성체로 파악한다. 그런데 형상과 질료의 결합 정도에 따라 만물을 하나의 계열 속에서 바라볼 수 있는데, 그 계열 속에는 형상이 질료에 파묻혀 있는 저급한 단계에서부터, 형상이 질료에서 해방된 단계까지가 늘어서 있다. 그는 가장 낮은 단계의 식물에서부터 동물, 인간, 천사의 순으로 배열하는데, 천사는 질료에서 해방된 것이지만 신에서 창조된 것이기 때문에 신의 아래에 위치한다. 그리고 각각의 하위 단계는 보다 상위 단계 속에 자기의 목적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지향하며, 또한 전 체계는 전체로서 神을 지향한다. 아퀴나스는 신의 존재를 증명했다고 하는데, 이것은 위와 같은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그가 제시한 방법은 다섯 가지이다.

1. '신이 실존하다'는 표현은 참되긴 하지만, 명증적(evidens)인 것은 아니다.
  그런데 예컨대 ‘전체는 그 한 부분보다 크다’는 진술은 참되고 명증적이다. 이 나중 진술에
  대해서는 실상 우리는 두 용어 ‘전체’와 ‘부분’의 의미와 가치를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신에   
 대해서는 ‘실존한다(existere)' 것이 무엇인지는 알겠는데 ’신‘이 무엇인지(신의 본질)는 우
  리로서는 알 수 없다. 그러므로 그것에 대해서 ’증명할 필요‘가 있다.
2. 그리고 증명은 신에 대해서 ‘우리에게 더 잘 알려진 것으로부터’ 즉 (원인을 알려주는) ‘결
  과들로부터’ 출발함으로써 전개된다.
3. 증명은 다섯 가지 방식(quinquae viae)으로 할 수 있다.
  a) 이 세상에 ‘계속적인 변화’가 있다는 것은 명증적(evidens)이다. 많은 것들이 운동 상태
    에 있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움직여지지 않고서는 운동 상태에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어떤 것도 스스로 가능상태에서 존재 현실로 건너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달구어 질 수 있는)
    차거운 쇳덩이는 스스로 열을 내지 못한다. 누군가가 열을 가해야지만 달궈지게 된다. 그
    러므로 운동 상태에 있는 모든 것은 움직여진 것이다. 그렇다고 무한히 원인을 소급해 올
    라갈 수는 없다. 이것은 실제로 설명함이 없이 자꾸만 설명을 미루는 셈이 될 것이다. 그
    러므로 ‘제일 원동자(第一原動者, primum movens)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해석: 세계에는 운동이 있다. 운동하는 것은 모두 다른 것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이렇게 영향     
    을 주는 것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결국에는 다른 것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는 최초의     
  근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다름 아닌 신이다.
  b) 우리는 일련의 능동인(causa efficiens)들의 끝에 있는 결과들을 보고 있다. 그런데 그 어
    떤 것도 스스로 자기 자신의 원인일 수는 없다. 만일 그렇다면 실존할 수 있기 위해서는
    먼저 실존하지 않았어야하고 실존을 주기 위해서는 실존하고 있어야 할 터인데 (이것은
    명백히 모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차적 원인들을 추적하며 무한히 소급해 올라가는
    것은 제일 원인을 부정하는 셈이 되고, 그 결과 제이 원인들도 부정하는 셈이 된다. 왜냐
    하면 제이 원인들은 ‘제일 원인(causa prima)' 없이는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해석: 이 세계 내에는 어떤 일을 현실적으로 일으키게 하는 원인이 있다. 그런데 모든 일의 원     
  인을 궁극적으로 캐들어 가면 결국 최초의 원인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것은 다음 아닌
    신이다.
  c) 생성되고 소멸되는 것은 하나의 우연유(偶然有, contingentia)이다. 그것은 실존할 수도
    있고 없어질 수도 있다. 그러므로 그것은 그전에 실존하지 않았거나, 언젠가는 사라질 것
    이다. 우리가 보는 모든 존재자(有, ens) 들은 우연유 들이다. 그러므로 과거 언젠가는
    아무것도 실존하지 않았던 적이 있었으며, 지금이라도, 만일 실존하지 않을 수 없는 ‘필
    연유(必然有, ens neces-sarium)‘가 없었더라면 아무것도 실존하지 못할 것이다.
해석: 자연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은 그저 우연히 존재한다고 생각해 보자. 모든 것들은 발생했
    다가 소멸하므로 우연히 존재한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존재하는 것은 그것
    이 존재하기 위해 어떤 것이 있어야 한다. 이렇게 추론해 볼 때 궁극적으로는 다른 존재
    없이 스스로 존재하는 필연적인 것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것은 다름 아닌 신이다.
  d) 사물들 속에는 선(善)이 있다. 그러나 선의 원천에 참여하는 정도에 따라 ‘더’와 ‘덜‘이 있다.
    그러므로 ’그 자체 선‘인 자가 있다.
해석: 사물에 대해 善하다고 할 때 선한 것에도 정도가 있다. 그 정도를 판별하기 위해서는
    가장 선한 것이 있어서, 이것을 기준으로 얼마나 더 닮았고 덜 닮았나를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선하다는 것을 판별할 수 있는 기준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신이다.
  e) 이성이 없는 피조물들은 놀라 만큼 정밀한 규칙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그것들을
    그렇게 형상화한 자, 즉 ‘최고 지성’이 있음에 틀림이 없다.
해석: 모든 사물은 목적을 향해 활동한다. 자연적인 물체가 그 목적을 스스로 모른다 할지라도
    그것은 어떤 목적의 의도에 다라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마치 날아가는 화살은 그것이
    어떤 목표를 향해 가고 있는지를 모른다 해도 활을 쏜 사람의 의도대로 날아가고 있는
    것과 같다. 이렇듯 모든 자연의 사물이 일정한 표적을 향해 진행하도록 하는 어떤 지적인
    존재가 있어야 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신이다.
      -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 ‘신의 존재와 본성’ 중에서 -

  신의 존재 증명(데카르트: 1596-1650)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존재한다’는 명제는 궁극적으로 신의 존재를 증명
하기 위한 하나의 전제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데카르트에게 중요한 것은 ‘생각하는 존재로서
내가 있다’는 사실이다. 이 사실을 통하여 신을 증명하는 것이 그의 목적이었다.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있는가? 그는 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서 먼저 ‘유한한 존재는
무한한 존재에 의해서만 존재할 수 있다’는 명제를 세운다. 이 명제를 세우기 위한 그의 논리는
삼단논법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o 이 세계는 유한한 존재와 무한한 존재로 이루어져 있다.
 o 어떤 존재자든지 반드시 다른 존재에 의해 존재할 수밖에 없다.
 o 따라서 유한자에서 무한자가 나올 수 없으므로 무한자에서 유한자가 나와야 한다.
이런 논리로 자신의 명제를 증명한 다음 그는 다름 단계로 돌입한다. 즉, 인간은 유한자이므로
반드시 무한자로부터 유래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명제를 세우게 되는 것이다. 그는 이 무한자를
모든 존재를 존재하게 하는 실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실체를 두 가지로 분리했다. 영원히
존재하지만 인간 속에 한정되어있는 실체와 무한한 실체가 그것이다. 인간 속에 한정된 실체는
정신이고, 무한한 실체는 신이다. 그리고 정신은 결국 무한 실체인 신으로부터 온다.
이로써 그는 인간이 신에 의해 창조되었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증명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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