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재상서(上宰相書)
저자: 성 정하상 바오로
1839년 정하상(丁夏祥)이 지은 한국 최초의 천주교 호교론서(護敎論書). 상재상서란, ‘재상에게 올리는 글’이라는 뜻으로, 당시 천주교 박해의 주동자였던 우의정(右議政) 이지연(李止淵)에게 보낸 서신이다.
엎드려 아뢰옵건대 맹자(孟子)가 양자(楊子)와 묵자(墨子)를 사설(邪說)이라 하여 배척한 것은 그 사상이 유교학계를 해칠까 두려워하였기 때문이요, 한유(韓愈)가 석가(釋迦)와 노자(老子)를 쳐서 물리친 것은 그 사상이 일반을 미혹(迷惑)하여 혼란케 할까 해서였습니다. 옛 군자(君子)가 법을 세워 금령(禁令)을 펼 때 반드시 그 뜻과 이치가 어떠하고 해됨이 있는가를 알아보았습니다. 무릇 의리(義理)에 맞는 것이라면 비록 나무꾼의 말이라도 성인이 반드시 받아들여 내버리면 안 되는 말로 되어 있거늘, 우리나라의 천주성교(天主聖敎)를 금(禁)하시는 것은 그 뜻이 어디 있습니까.
위에선 그 뜻과 이치(理致)가 어떠한지 물어보지도 않고 몹시 원통스러운 말로 사교(邪敎)로 몰아 큰 법을 세워놓고 신유년(辛酉年)을 전후 많은 인명을 없애면서도 한 사람도 그 기원과 전통을 알아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오! 이 도(道)를 배우면 유교에 해(害)를 끼치겠습니까? 일반 백성을 혼란케 하겠습니까? 이 도인즉 천자(天子)로부터 서민(庶民)에 이르기까지 날마다 사용하고 늘 실행해야 할 도이오니, 해가 된다던가 혼란이 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제 감히 그 도리가 그릇되지 아니함을 간단하게 말하겠습니다.
대개 하늘과 땅에는 본래부터 다스리는 분이 계시는데, 여기 세 가지의 증거를 들 수 있습니다.
첫째는 만물(萬物)이요, 둘째는 양지(良知)요, 셋째는 성경(聖經)입니다.
천하에 종교없는 나라가 없건만, 참되지 못한 것을 가르치는 일이 많습니다.
노자와 장자는 허무함을 가르쳐서 잘못이고, 신선과 부처는 황당함으로 해서 잘못되었으며, 이외에 제자백가들의 술수는 족히 입에 올릴 것도 못됩니다.
그러나 천주교의 도리는 진실되고 거짓이 없어 전혀 어긋나지 않았으니, 지극히 참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어째서 지극히 완전하다고 하는 것일까요?
초목(草木)에 비유하건대, 다른 종교들은 혹 갈래는 있으나 가지가 없으며, 혹 잎은 있는데 꽃이 없으며, 혹 꽃은 있으나 열매가 없어 머리와 꼬리가 서로 연결되지 못하고, 처음과 끝이 서로 이어지질 않습니다.
오직 천주교는 갈래도 있고 가지도 있고 잎도 있고 꽃도 있고 열매도 있으며, 천지(天地), 귀신(鬼神), 인사(人事)의 전말과 과거, 현재, 미래의 앞뒤가 가득히 모두 갖추어져 있으니, 지극히 완전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애통하게도 금과 옥을 가리켜 억지로 기와조각이라 하고 맛난 음식을 찌꺼기라고 하니, 이 무슨 말입니까?
또한 애비도 없고 임금도 모르는 것들이라고 헐뜯는데, 이것은 천주성교의 뜻을 모르는 것입니다.
십계 중 네 번째에 “부모를 효성으로 공경하라” 했으니, 충효(忠孝) 두 글자는 만세대 동안 변하지 않는 도리입니다.
부모의 뜻과 몸을 봉양하는 것은 자식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것이요, 교를 믿는 사람으로서는 더욱 힘써야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부모께 예의를 다해 섬기고 힘을 다해 봉양하는 것이 임금에 대해선 충성이 되어 목숨을 바치며 불길 속에 뛰어드는 것도 감히 피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계명을 어기는 것이니, 과연 애비도 없고 임금도 모르는 것이라고 하겠습니까?
다만 임금이 금지했는데도 백성들이 행하고, 아비가 금지했는데도 자식이 행했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한 것입니까?
이 또한 해명할 것이 있습니다.
지위에는 높고 낮은 것이 있고, 일에는 가볍고 중한 것이 있으니, 한 집안에서 아버지가 가장 중하지만, 아버지보다 높은 사람은 임금입니다.
또 한 나라에서 임금이 가장 중하지만, 임금보다 높은 것은 천지대군입니다.
아버지의 명을 따르면서 임금의 명을 따르지 않는다면 그 죄가 무거울 것이요, 임금의 명을 따르되 천지대군의 명을 따르지 않는다면 그 죄가 비길 바 없이 클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주를 받들어 섬기자는 것이지, 일부러 임금의 명을 어기고자 한 것이 아닌 부득이한 것이었느니, 이 한 가지 일을 가지고 애비도 없고 임금도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 옳겠습니까?
또 재화(財貨)를 유통(流通)하고 색정(色情)을 나눈다고 말하는데, 재화를 유통시키는 것은 자고로 국가에서는 하루라도 없을 수 없는 것입니다.
있는 물건과 없는 물건을 서로 유통해야 백성들이 서로 도움받아 살아갈 텐데, 만약 재화를 유통시키는 일이 없다면 온 나라 안에 살아있는 자가 몇이나 되겠습니까?
천주께서는 만물의 대부모(大父母)요 대주재(大主宰)입니다.
옛날의 성현들도 열심으로 섬기고 제사를 드렸었거늘, 어째서 오늘날 이 사람들만이 이런 능욕을 당한단 말입니까?
굶주리고 메말라 나라가 어려운 때가 되면, 우리 임금께서는 밤낮으로 애쓰고 인정(仁政)을 일으키시어 생명을 아끼는 사랑이 민심에까지 젖어드는데, 아니 저 성교를 믿는 사람들은 우리 임금의 자식이 아니란 말입니까?
애석하게도 저 사람들이 이런 지경에 이르러도 조금도 불쌍치 않단 말입니까?
옥중에서 죽어가고 성문 바깥에서 처형되는 것이 끊이질 않아 피눈물은 도랑을 이루었고, 통곡이 하늘에 울리고 있습니다.
아비는 자식을 부르짖고, 형은 아우를 부르짖으니, 마치 궁핍하여 돌아갈 곳 없는 사람처럼 되고 말았습니다.
맑고 좋은 세상에 이 무슨 광경입니까?
목숨을 바쳐 주님의 참 가르침을 증거하고,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은 우리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지요.
이 몸 또한 죽고 말 것이지만, 외람되나마 말씀을 올릴 수 있는 이 때에 한 번 고개를 들어 길게 외쳐보지도 못하고 그냥 묵묵히 죽어버린다면, 산더미 같은 이 생각들을 백세 뒤에까지 밝힐 길이 없을 것입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각별히 불을 밝혀 읽어보시고 도리가 참되고 바른지 거짓되고 나쁜 것인지를 자세히 분별하신 뒤에, 위로는 조정에 아뢰고 아래로는 백성들에게 펼쳐야 할 것입니다.
또한 최선의 방법으로 일변하여 금령을 늦추고 체포령을 거두며 옥에 갇힌 이들을 놓아 주시어, 온 백성들과 함께 편안하고 즐겁게 태평을 누릴 수 있도록 해주시기를 천 번 만 번 바라고 또 바랍니다.
또 아룁니다.
죽은 사람 발 앞에 술과 음식을 바쳐 올리는 것은 천주교에서 금하는 것입니다.
살아있을 적에도 영혼을 술과 음식으로 모실 수 없는 것인데, 하물며 죽은 뒤의 영혼이야 어떠하겠습니까?
음식은 육신과 입을 공양(供養)하는 것이요, 도덕은 영혼의 양식입니다.
아무리 효성(孝誠)이 지극한 자식이라 할지라도 맛있는 음식으로 주무시는 부모 앞에서 공양을 할 수 없는 법이니, 잠잘 적엔 먹고 마실 수가 없기 때문이지요.
잠을 잘 적에도 그러한데, 하물며 아주 잠든 때에는 어떠하겠습니까?
그러므로 그 쌀밥, 기장이며 푸짐한 과일들은 헛된 것이 아니면 거짓된 것이니, 자식된 자가 헛되고 거짓된 예절로 돌아가신 부모를 섬길 수 있는 것일까요?
이른바 사대부(士大夫)들의 위패(位牌)도 천주교에서 금하는 것입니다.
이미 위패는 부모님의 기맥(氣脈)이나 육신과는 아무 연관도 없으며, 낳아 길러주신 은혜와도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부모라는 이름이 얼마나 중대한 것인데, 장인이 깎아 만든 것에 물감과 먹으로 칠하여 놓고는 진짜 아버지고 진짜 어머니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까?
이치에 맞지 않고 양심이 허락치 않는 것이니, 차라리 사대부들에게 죄를 지을지언정 천주교에 죄를 짓고 싶지는 않습니다. -- 상재상서 중에서~-